술이 좀 덜 깼지만 출발했다. 미적거리던 아내가 따라 나서 주어서 고마웠다. 전민규 큰들 예술감독님도 동승했다. 하동 가는 국도에는 차가 많았다. 길가에 아기자기 꽃이 많은 건 늘 한결같다. 정답다. 예쁘다.
아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아씨국수'로 갔다. 3.1절에 신동식 기자가 간 곳이다. 꼭 가고 싶었다. 가는 차 안에서 이 집에 가기로 다짐했다. 해물부추전 안주로 악양 막걸리 ‘정감’ 두 병을 먹었다. 비빔국수도 먹었다. 배가 터지는 줄 알았다. 다음엔 잔치국수를 먹을 것이다.
안산에서 50명 가까운 분들이 오로지 마당극을 보기 위해 왔다고 했다. 오늘 일찍 내려와 공연 보고 오늘 올라가는 일정이라고 했다. 대단하다. 안산은 장인, 장모님 사시는 도시, 즉 처갓댁이 있는 곳이다.
아내는 할매들 가까이 가서 이런저런 인사를 했다. 처갓댁이 있는 고잔동 주변 분들이시다. 나는 그분들을 모시고 온 가수와 악수를 나누었다. 이 가수가 진정 큰들의 왕팬이다. 참말 고마운 분이다. 나는 앞으로 '왕팬'이라는 말을 좀 자제해야겠다. '자랑스러운 큰들 후원회원'이라고 해야겠다.
오늘은 최참판댁 안채에서 공연을 펼쳤다. 아내는 안채에서 하는 공연은 처음 보았다. 훨씬 좋다고 했다. 안산에서 오신 할매들은 1부 공연을 보지 않고 최참판댁 안채 가장 좋은 앞자리를 줄지어 앉아 계셨다. 1부부터 봐야 제맛인데 거동이 쉽지 않으니 할 수 없었다. 내용 이해하는 데는 문제 없다.
이런저런 단체에서 많이 온 모양이다. 고맙다. 앞으로 점점 내 앉을 자리가 비좁아지겠다. 기쁘다. 나는 이제 한구석에 앉아서 봐도 되고 뒤돌아서서 눈으로 보지 않아도 된다. 훤히 다 아니까. 훤히 다 알아서 시시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감칠맛 나는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심하게 몰입해 있곤 한다. 그래서 임이가 끌려가는 장면 앞뒤로는 심한 두통이 온다. “울 밑에 선 봉선화야.” 음악이 나오면 눈물을 참을 수 없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안산에서 할매들을 모시고 온 가수분이 '등등 동지'가 되었다. 이분이 등등 동지가 되는 바람에 그 할매들이 더 크고 환하게 웃느라 난리가 났다. 이런 재미가 있다. 할매들 지금쯤 댁에 잘들 도착하셨기를 빈다.
돌아와서 10분 정도 잤다. 개운하다. 어머니 댁으로 갔다. 시장에서 봄멸치를 좀 샀다. 도토리묵도 샀다. 가지도 샀다. 아내는 압력밥솥 밥이 될 동안 멸치조림과 가지나물과 도토리묵장을 뚝딱 장만했다. 고마운 일이다. 어머니는 소주 두 잔 마셨고 나는 입에 대지 않았다.
내일 일요일 아침 일찍 일하러 나간다. 글이 잘 써지면 얼른 마치고 하동으로 내달려갈 것이고, 글이 잘 안 써지면 아예 포기하고 하동으로 곧장 가버릴 것이다. 그렇게 되기를 빈다. 애매하게 나를 붙드는 그 무엇이 있으면 걷어차버릴 것이다.
앞으로 일주일을 살아 나가게 할 힘, 힘들어도 괜스레 웃음지며 힘을 내도록 도와줄 원기, 짜증나도 빙그레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 그런 것을 얻으러 갈 것이다. 행복하다. 고맙다.
2019. 5. 25.
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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