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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큰들 마당극 보러 가기

어머니와 마당극을

by 이우기, yiwoogi 2019. 5. 20.


 

비는 내렸다어머니와 친구 네 분을 모시고 마당극 보러 갔다. 11시에 출발하여 1140분에 동의보감촌에 도착했다. 그중 가장 연세 많으신 분이 차에서 내려서는 움직이지 않는다. “오늘 밥값은 내가 낸다.”라고 선언하신다. “아이고, 그건 안됩니더. 그것 얼마 된다꼬예?”라며 내가 말을 자르자 그라모 나는 한 발짝도 안 움직일 끼다! 밥 안 먹을 끼다.라고 억살을 피웠다. 결국 내가 졌다. 우산을 각자 하나씩 들고 근처 식당으로 갔다. 육고기를 못 드시는 어머니를 배려하여 노루궁뎅이버섯전골을 시켰다. 다섯이서 밥 세 그릇을 겨우 비웠다. 너무 이른 점심이라서였을까. 소주 한 병을 비웠다. 어른들에겐 이게 기본이다. 비는 내렸다. 다섯이서 우산 하나씩 들고 동의보감촌대장간에 갔다. 호미도 사고 낫도 샀다. 어머니는 돼지고기 뼈다귀를 한방에 잘라줄 작은 도끼를 샀다. 나중에 돼지고기뼈다귀 해장국 제법 얻어먹게 생겼다



비는 내렸다. 어슬렁어슬렁 잔디광장을 돌았다. 이윽고 마당극 <오작교 아리랑> 공연이 펼쳐질 주제관으로 들어갔다. 입장료를 받지 않았다. 공연 때문에 아예 안 받는 것인지도 몰랐다. 공연을 하려면 한 시간은 족히 남았다. 1층을 돌아보았다. 접은 우산을 지팡이 삼아 천천히 돌았다. 계단으로 2층을 올라갔다가 승강기로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그래도 입장하려면 10분 이상은 더 기다려야 했다. 구석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시간을 죽였다. 전시해 놓은 공예작품을 둘러보고 있노라니 극단 큰들 가족들이 어른들께 인사를 건넨다. 428일 생초 국제조각공원에서 <효자전> 볼 때 안면을 튼 사이였다. 그때는 커피를 한잔 주시더니 이번에는 사탕을 건네준다. , 착한 단원들이다. 늘 그렇게 느끼고 본다



드디어 130분이다. 가장 좋은 자리에서 마당극을 관람하기 위해 1등으로 입장했다. 소극장 분위기가 물씬 난다. 아담하고 아늑했다. 배우들 숨소리 하나까지 모두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세 번째 줄에 걸터앉았다. 배우들이 왔다갔다 하고 연출 담당들도 준비를 서둘렀다


<오작교 아리랑>은 완전 무결한 작품이다. 웃기고 울리고 또 웃긴다. 관객들의 참여도도 높다. 어린아이에서부터 나이 드신 어른들까지 모두 함께할 만한 작품이다. 마당극을 보는 중간 중간 어머니네들을 돌아보았다. 완전히 몰입한 듯했다. 성공이다 싶었다. 재미없다고 하품하고 졸기나 하면 어쩔까 걱정했었다. 뭐 이딴 걸 보러 왔나 하는 표정이면 뭐라고 말씀드려야 하나 걱정했었다. 어머니네들은 흡족해 했다. 박수도 크게 쳤고 웃음소리도 컸다



함진애비 장면도 공감하는 듯했다. 싱싱한 물고기가 단숨에 회로 바뀌자 깜짝 놀란 듯 웃었다. 남돌이 아버지, 어머니가 등장할 때 깊은 공감의 박수를 쳤다. 꽃분이 어머니가 등장할 땐 입을 가려가며 웃었다. 그 허리 구부러진 노인네가 땅재주를 넘자 놀란 눈을 더 크게 떴다. 그들의 사이를 알아채고는 사돈간인가베?”라고들 했다. 버나를 가지고 서로 경쟁을 할 때는 이름난 서커스를 보는 듯 집중했다. 관객이 갑자기 불려나와 발바닥을 맞는 장면에서도 혼이 빠질 정도로 웃었다. 나 이어달리기를 할 때도 신나게 응원했다. ‘아리랑 목동’ 노래는 잘 모르는 듯했으나 아빠의 청춘은 알아듣는 표정이었다그러다 보니 남돌이 하객이었으면서도 꽃분이를 더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마당극 공연이 끝났다. 배우들과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안 찍을 거라던 분도 분위기에 이끌려 산청~ 조옷타!를 따라했다. 한 어머니는 꽃분이 어머니를 보고 아요, 우찌 그리 잘 떠요?”라고 물었다. 꽃분이 어머니가 동작을 할 때마다 실제 중풍 걸린 노인처럼 손과 다리를 가늘게 떠는 걸 유심히 본 것이다. “허리 안 아프요?”라고도 물었다. 허리 구부러진 노인 연기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 정도 노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비는 내렸다. 차로 돌아왔다. 차 안에서는, 아침부터 갖고 간 쑥떡, 미나리즙, 바카스 들을 꺼내놓고 잠시 회식을 했다. 역시 어머니들의 준비성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나는 기념품 가게로 달려가서 블루베리 따위 젤리를 네 봉지 샀다. 한 봉지씩 드리며 댁에 돌아가서 심심할 때 드시라.”라고 했다. 남돌이 엄마가 참 연기를 잘하더라고 누군가 말을 꺼냈다. “남잔지 여잔지 몰라도 목소리가 카랑카랑한 기 제법이더라.”라고도 했다. “그 남돌이 엄마가 실제 남자입니더라고 알려줬더니 모두 깜짝 놀랐다. “머시라?!”라면서 나를 의심했다. 재미있더냐고 살짝 여쭈니 정말 공연 잘 봤다”, “이렇게 연극 공연 보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너머 아들 덕분에 이런 구경도 다 하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비는 내렸다. 길은 젖었다. 자동차 바퀴 소리는 길바닥에 깔렸다. 진주까지 40분 걸렸다. 본가 동네에 내려드렸다. 먹다 남은 떡과 먹다 남은 바카스는 내 몫이 되었다. “다음주엔 하동에서 소설 토지로 만든 마당극을 또 합니더. 같이 갈랍니꺼?”라고 물으니 다음주엔 미나리 뜯으러 가야 된다.”라고 잘라 말했다. 어머니들에게 마당극보다 더 중요한 그 무엇이 있다는 게 참 다행스러웠다



동의보감촌 잔디마당에서 공연하는 마당극이다. 비가 오면 공연을 할 수 없었다. 이번주 토, 일요일에는 실내에서 공연했다. 처음이라고 한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254명이 들어갈 수 있는 공연장에 250명은 모인 듯했다. 배우와 관객은 훨씬 가까워졌다. 배우들에게 마이크는 필요없었다. 버나 이어달리기 할 때 응원소리에 공연장은 터져나갈 듯했다. 마당극의 묘미를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마당극은 어디까지나 마당에서 해야 제맛이다. 토요일 직장 동료와 함께 마당극을 본 큰형님께 어떻더냐 물으니 다른 친구들이 또 보러 가자고 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래저래 퍽 다행이다.

 

2019. 5. 20.

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