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아귀의 변신

by 이우기, yiwoogi 2018. 12. 22.

적어도 6, 많으면 10명쯤 모이지 않을까 하여 아귀찜 전문점에 술상 겸 밥상 2개를 예약했더랬다. 7시는 대부분 배가 고파질 시간이어서 미리 수육 작은 것 2개를 주문해뒀다. 앉자마자 젓가락을 들 수 있으면 좋다. 오랜 기간 계모임 비슷한 조직의 총무를 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준비요 배려요 예측이었다.

 

아귀 수육 2개가 동시에 나왔다. 3명 모였다. 예측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수육은 맛있었지만 양이 너무 많았다. 하나는 잘 먹었고 하나는 싸 달라고 했다. 머릿속으로 거미줄이 꼬였다. 어떡하면 맛있게 먹을까 싶던 것이다. 집에 오자마자 냉동실에 넣었다. 이날이 목요일이었는데 토요일에나 일요일에 먹을 수 있겠다 싶어서였다.

 

드디어 토요일 오늘 아침 냉동 아귀 수육을 꺼냈다. 전골 냄비에 대가리째 먹을 수 있는 멸치 쉰마리쯤 넣어 국물을 내다가 냉동 아귀수육을 통째 넣었다. 한소끔 잘 끓어오를 때까지 기다렸다. 제멋대로 뒤엉겨 있는 각종 내용물들이 허물어졌다. 액젓으로 간을 맞췄다. 고춧가루로 채색했다. 아귀수육이 아귀전골로 환골탈태했다. 혼자 먹었다. 엊저녁 먹은 술이 비로소 풀어졌다. 당초 아귀수육에 들었던 콩나물을 비롯한 각종 야채들이 국물을 쏟아낸 덕분이렸다.


 

점심 때는 아들과 함께 먹었다. 아들은 아귀 살코기 부위와 국물을 조금 먹었다. 처가에서 공수해온 국화주를 한 잔 따른 뒤 얼음 띄워 딱 한잔했다. 아귀전골은 반찬이기도 하지만 안주이기도 하니까. 가장 맛있는 애를 베어 먹었다. 여럿이 먹었다면 눈치를 보았을지 모르는데. 이처럼 맛있는 걸 독차지하기란 쉽지 않다.

 

저녁에도 아귀라면전골을 먹을 참이다. 거의 8시 다 되어 들어온 아들과 또 마주 앉았다. 아침, 점심으로 먹고 남은 아귀전골에다 라면 1개반을 넣어 맞춤하게 끓였다. 냉장고에 있던 쌀뜨물을 듬뿍 부어 물을 맞췄다. 라면 스프도 절반 넣었다. 스프의 마력에 조금 기댔다. 처가에서 가져온 뽕나무뿌리술을 한 잔 따른 뒤 얼음을 띄웠다. 아귀라면전골도 안주에 가깝다. 다 비웠다.



밥상 겸 술상 2개를 채 채워주지 못한 분들이 좀 야속했더랬는데, 하루 삼시세끼를 아귀로 때우고 보니 오히려 고맙게 느껴진다. 덕분에 아귀요리 변신술을 스스로 터득했다. 웃음이 난다. 배는 부르고 기분은 좋다. 내친 김에 설거지까지 살뜰히 끝낸 뒤 이렇게 소감 몇 자 적어 놓는다.

 

2018. 12. 22.

시윤

 

 

'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올해 나에게 일어난 중요한 일 5가지  (0) 2018.12.30
눈과 머리가 아픈 영화-더 벙커  (0) 2018.12.27
생일  (0) 2018.12.06
낚시  (0) 2018.10.22
척척 착착  (0) 2018.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