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2학년이었던가. 아버지에 반항하여 집을 나갔다. 진주 친구 자취방에서 이틀 자고 진해 작은형 자취방으로 숨어들었다. 아버지께 말하면 난 죽어버리겠다고 겁박했다. 두 살 위 작은형은 진해 어느 전업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좁은 방에 전축이 있었다. 조용필 양판(LP)이 있었는데 <못 찾겠다 꾀꼬리>라는 노래와 민요 연곡(메들리)이 들어 있었다. 민요가 참 좋았다. 요즘 가끔 부르는 민요는 조용필에게 배운 것이다. 진해는 춥고 습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무엇을 해 먹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두 밤 자고 진주로 왔다. 진주로 오던 날 작은형은 종이돈 몇 장을 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2003년 9월 30일 경남일보를 그만두자 창원에 있는 뉴시스에서 연락이 왔다. 일단 한번 만나자고 하여 갔다. 그 길로 뉴시스 경남본부 기자가 되었다. 창원에 있는 경남도교육청과 진해시가 내 담당이었다. 아침 5시 30분쯤 일어나 물 한 잔 마시고 진해경찰서로 갔다.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고 다시 창원 평화상가로 와서 1층 시락국집에서 해장을 하곤 했다. 멀쩡하던 회사가 어려워져 입사 첫 달부터 월급이 나오지 않았다. 진주 떠나 창원 사람 되겠다고 이사도 했는데 말이다. 가족 뵐 낯이 없었다. 어느 주말 안민터널 지나 진해로 갔다. 바닷가 횟집에서 점심과 낮술을 먹으며 속으로 울었다. 바다는 고요했지만 머릿속은 복잡했다. 술 마신 저녁엔 집에 들어가지 않고 평화상가 8층 사무실 소파에 기대어 잤다. 어찌 알았는지 작은형이 10만 원을 주었다.
2014년 4월 아름다운 봄날이었다. 선남선녀가 백년가약을 맺는 자리에 갔다. 주례를 봐야 했다. 마흔일곱 살밖에 못 산 놈이 주례라니! 처음엔 한사코 사양하다가 결국은 할 수밖에 없었다. 건강하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정직하게 돈 많이 벌라고 말해 주었다. 민주사회의 시민이 되라고도 했다. 진해에서 처음 먹는 뷔페 음식은 맛있었다. 우황청심환 대신 함께 간 아내 덕분에 좀 덜 떨었다. 하지만 다시는 주례를 하지 않으리라 다짐한 날이기도 했다.
지지난해 아내와 함께 진해에 갔다. 외삼촌의 큰딸 결혼식이 진해에서 열렸다. 문산, 진성, 반성 지나는 국도를 이용했다. 거리는 아주 가까워져 있었다. 길 찾기도 쉬웠다. 이모들과 인사 나누고 외사촌 동생을 축하했다. 더 돌아보고 더 놀다 오고 싶었으나 거기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진해를 조금은 아름답게 기억할 수 있을 듯했다.
11월 17일 토요일 진해 간다. 아내와 아들이 동행해 줄까. 진해군항제 벚꽃 구경하기 위해 온 세상 사람이 다 모여도 안 가던 곳이다. 하지만 이번엔 결혼식이 없어도 간다. 진해가 고향인 후배 직원에게 맛집도 소개 받았다. 이 집 저 집 소개한 끝에 ‘진해루’ 가서 쉬다 와도 좋다고 안내한다. 나는 말했다. ‘진해루’에서 큰들 마당극이 열리는 덕분에 가는 것이라고. <오작교 아리랑>은 열두 번째 본다. 이제 진해를 더욱 아름다운 도시로 추억할 수 있겠지. 내년 봄엔 대학생 된 아들 앞장 세워 벚꽃 구경도 갈 수 있을까.
2018. 11. 16.
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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