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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큰들 마당극 보러 가기

마당극 가는 곳이 잔치마당

by 이우기, yiwoogi 2018. 11. 4.


 

11월 첫 토요일 아침 된장찌개를 끓였다. 감자와 두부를 넣겠다는 것 말고는 아무 계획이 없었다. 나에게 조리법(보통 레시피라고 하지)은 따로 필요하지 않다. 냉장고 안에 든 것 가운데 눈에 띄는 것 아무것이나 넣는 게 나만의 요리법이다. ‘냉장고 파 먹기의 달인이다. 그러다 보니 감자, 두부 말고도 멸치, 대파, 버섯, 호박, 양파를 넣게 되었다. 보통 때엔 넣지 않던 무가 보이기에 얇게 썰어 잘 익도록 했다. 무가 들어가면 좀더 시원해질 것처럼 보였다. 밥 한 그릇 든든하게 먹은 뒤 아내와 함께 남해로 갔다.

 

남해 이순신 순국 공원에 갔다. 2회 이순신 순국 제전 행사의 하나로 극단 큰들이 마당극 <오작교 아리랑>을 공연하였다. 아내와 함께 맨 앞자리에 앉아 열심히 손뼉 치고 고함 지르며 즐겼다. 열 번 넘게 본 작품인데도 늘 새롭다. 신기할 따름이다. 이날 공연 때는 간간이 맑고 푸르고 깨끗한 하늘을 여러 번 올려다보았다. 이순신 장군이 적탄에 맞아 쓰러지는 장면과 장례를 재연하는 것도 보았다. 앞부분엔 큰들 배우 여럿이 출연했다. “장군-!”이라고 외치며 울부짖는 장면에서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뒤이어 남해군민들만으로 진행된 장례 행렬은, 미안하지만, 좀 시시했다.

 



돌아오는 길이다. 잠시 화장실 간 사이 차 시동을 걸던 아내에게서 문자가 왔다.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변속장치(보통 기어라고 하지)를 중립(N)이나 주차(P)에 두지 않으면 걸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게 아니라고 하여, 급히 주차장으로 달려갔더니 축전지(보통 배터리라고 하지)가 방전된 모양이다. 시동을 끄고 열쇠(보통 라고 하지)를 뽑은 뒤 운전석 문을 열면 자동차의 모든 등은 꺼진다. 실수로 등을 켜 놓았다가 방전된 일은 한번도 없었다. 이날은 열쇠를 꽂아둔 채 내가 먼저 내렸고 나중에 아내가 열쇠를 뽑아 조수석 쪽으로 내렸다. 가는 길에 굴(보통 터널이라고 하지) 몇 개 지나며 미등 켠 것을 깜빡한 것이다.

 

보험회사에 신고하는 절차는 아주 간단했다. 전화번호만으로도 내 이름과 차 번호를 확인했고 나는 가만히 있는데도 현재 내 위치를 알아내었다. 이렇게 급할 때는 하염없이 고마웠지만 어떤 경우에는 위험하기도 하겠다 싶을 정도였다. 20분도 되지 않아 긴급 구난차(보통 렉카라고 하지)가 와서 시동을 걸어 주었다. 큰 고장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급하게 달려와 준 구난차량 기사가 고맙다. 가는 길에 사천휴게소 지난 어디에서 사고가 있었던지 차가 좀 막히던데, 그건 이런 작은 고장의 전조는 아니었을지...

 


11월 첫 일요일 아침 시래깃국을 끓였다. 어릴 적 어머니께서 끓여주던 그 구수한 맛이 그리웠던 것이다. 냉동실엔 어머니께서 된장에 치대어 주신 시래기가 얼어 있다. 시래기는 저들끼리 들러붙어 덩어리째 얼지 않는다. 쉽게 부서지므로 끓이는 데 어려움이 없다. 무를 썰어 넣고 멸치를 넣었다. 좀 있다 생각하니 이거나 그거나 싶어 대파와 표고버섯을 맞춤한 크기로 썰었다. 간을 보니 좀 싱거운 듯하여 멸치액젓 몇 방울 떨어뜨렸다. 늦은 아침을 든든하게 먹었으니 쉬고 싶다.

 

오후엔 김해 진영으로 떠나볼 참이다. 어쩌면 내가 볼 수 있는 올해 마지막이 될 극단 큰들의 <효자전>을 보기 위해서다. 나를 큰들 마당극에 푹 빠지게 한 명작 가운데 명작이 <효자전>이다. 진영공설운동장에서는 아마 단감축제를 하는 모양이다. 덕분에 단감 맛도 보거나 감으로 만드는 여러 가지 먹거리들을 구경하고 맛보게 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아내와 동행하기로 했다. 아들은 꾀어 보긴 하겠지만 쉽지 않을 듯하다. 같이 가든지, 내가 녹화해둔 동영상을 보고 감상문을 쓰든지 둘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고 할 참이다.

 

오늘은 가는 길, 오는 길 사고 없고 고장 없이 그저 평안했으면 좋겠다. 하늘은 높고 푸르게, 바람은 포근하고 시원하게, 햇살은 따사롭고 은혜롭게, 사람들은 즐겁고 행복하고 인정스럽게 그런 하루가 되었으면 싶다. 어디에서 무엇을 먹을지 모르지만 아내도 나도 만족했으면 더 좋겠다. 김해 진영은 고 노무현 대통령 뵈러 한번 간 적 있는 곳이다. 상가에 조문 가느라 가본 곳이기도 하다. 좀 색다르고 좋은 인연으로 다가가는 진영에서 멋진 추억 한 자락 만들고 오고 싶다.

 

극단 큰들이 공연하러 가는 곳은 그 지역에서 무슨 축제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죄다 따라다녀 본 게 아니라서 장담할 수는 없다. 61일 오후 휴가 내고 남해 스포츠파크에 갔더니 남해 보물섬 마늘 축제 & 한우 축제를 하고 있었다. 714일 사천 삼천포대교 아래에 갔더니 사천시가 주최하고 사천문화재단이 주관하는 ‘2018 토요 상설무대 프러포즈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최참판댁은 유명 관광지이다. 산청군 금서면 동의보감촌도 일상이 축제인 관광지이다. 9월 말~10월 초에 열린 산청한방약초축제 때도 날마다 마당극 공연이 이어졌다.

 

충북 영동, 경남 창녕, 전남 화순, 강원도 남이섬 등 큰들은 전국 축제를 찾아가서 잔치 분위기를 한껏 돋우는 것은 물론 국민들에게 마당극이라는 전통 공연 양식을 전파하고 있다. 어떤 이는 축제 구경 갔다가 큰들을 만나는 횡재를 하고, 나 같은 사람은 큰들 따라 갔다가 그 지역 유명 축제를 함께하고 온다. 이리 보든 저리 보든 일석이조, 꿩 먹고 알 먹고,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격이다. 그러하니 어디에서 무슨 축제를 하는지 애써 검색하고 찾아볼 필요가 없다. 큰들만 따라다니면 최고의 축제와 함께할 수 있다. 그러니 많이 고맙지.

 

2018. 11. 4.

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