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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큰들 마당극 보러 가기

큰들, <남명>을 깨우다

by 이우기, yiwoogi 2018. 10. 20.



어깨 통증은 가라앉지 않았다. 벌써 며칠째인가. 어제 치료한 뒤 좀 잦아들던 아픔은 지금 이 시간 극에 달하고 있다. 주무르고 파스 바르고 약 먹고 했지만 별 소용이 없다. 월요일까지 제출해야 할 원고(방송국 대담 프로그램 답변 자료)를 어찌 하려는지 모르겠다. 내일은 여러 가족 낚시 가는데 따라간다 약속까지 해 놨는데…. 그래도 오늘 하루 가운데 한 시간은 아프지 않았고, 그 뒤 두어 시간도 덜 아팠다. 

 

극단 큰들의 새 마당극 <남명>을 보았다. 남명 조식이라는 역사 속 인물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궁금했다. 믿고 보는 큰들 마당극이므로 걱정하진 않았다. 남명의 사상을 풀어나가면서도 깨알같은 재미와 풍자를 어떻게 조화롭게 버무릴 것인지 궁금했던 것이다.

 

큰들 마당극이 열리는 곳은, 늘 그렇듯, 만남의 광장이다. 수많은 지인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객석이 꽉 찼다. 나이도 다르고 고향도 다르고 지식도 다르고 생각도 다른 이런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고 깨닫도록 하려면 도대체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야 할까, 하는 건 궁금함이었다.

 

공연이 끝났다.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함성이 솟아올랐다. 천왕봉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던 남명 선생이 깜짝 놀랐을 것이다. 450여 년 전의 행적과 사상을 재미있으면서도 뜻깊게 풀어내었으므로 만족하였을 것이다.

 




규모가 꽤 큰 무대 설치와 아기자기하면서도 의미 있는 소품들이 쉴새 없이 시선을 끌었다. 배우들의 연기는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도 믿는 대로였다. 작가의 역량이 돋보였다. 음악은 천왕봉만큼 웅장하다가 덕천강물 재잘거림같이 잔잔하기도 했다. 새로 차려 입은 무대옷 들도 주제와 내용과 배역에 잘 어울렸다. 

 

남명은 무게 있고 점잖았다. 선비다웠다. 마을 사람들은 순박하였다. 사또들은 포악하였다. 아전 나부랭이들은 비열했다. 고아인 임금과 과부인 그 어미는 나빴다. <임꺽정>의 시대 배경이 되고도 남을 만했다. 남명 제자들은 의연했다. 하인들은 유쾌했다. 그런 주인공들이 이야기를 끌어나가고 밀어주었다. 조선시대인가 싶다가 21세기였다가 왔다 갔다 하는 재주도 그만이었다.

 

웃길 때는 웃겼다. ‘아재개그는 빠질 수 없는 단골이다. 관객을 무대로 불러올리는 건 언제나 감초이자 큰 웃음거리다. 스마트폰이나 몰래카메라가 등장하는 건 놓칠 수 없는 재미다. 울릴 때는 울렸다. 단성소를 읽는 남명 목소리는 하늘을 울렸다. 나는 울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수많은 남명 제자들이 칼을 들고 분연히 일어서는 장면에서는 눈물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나만 그런 건 아닌 듯했다. 처음부터 이야기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감정이 북받쳐 오르게 된다. 나라가 백척간두 위기에 빠졌을 때 임금이란 자는 도망을 갔지만 남명 제자들은 의병이 되어 나라를 구하겠다고 나서는 장면, 그것만으로도 남명 선생을 모두 설명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아쉬움과 허전함을 합한 감정이랄 수 있는 섭섭함그런 것도 있다.^^ 기왕 시작한 것이면, 선비문화축제 기간에 한번 더 하지 않고 말이다. 그렇게 공들여 세운 무대 세트를 한번만 공연하고 무너뜨릴 줄이야. 1111() 오후 1시 산청 동의보감촌에서 두 번째 공연을 한다 하니 섭섭함을 조금 감춰두어야겠다.

 

첫 공연이라며 사진을 찍지 말라고 한 것도 좀 섭섭했다. 찍지 말라고 하니 안 찍었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그러거나 말거나 열심히 찍을걸하는 생각을 했다. 다른 사람들은 제법 찍었던데. 하지만 나는 아무도 생각지 못한 걸 해냈다. 사진이나 동영상은 찍지 않았지만, 소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녹음했다. 집에 돌아와서 한번 들었다. 듣고 있으니 장면 장면이 떠오른다. 참 신기하고 고마운 일이다. 요건 몰랐을 거다.ㅎㅎㅎ 섭섭함이 많이 줄었다.

 

좋은 가을날 함께 나들이해 준 벗들께 고마운 마음 전한다. 현장에서 만난 더 많은 벗들과 선배들께 또한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제대로 인사 못 드리고 떠나온 것 사죄드린다. 무엇보다 이렇게 훌륭한 작품을 준비하느라 더운 여름날 땀흘려준 큰들 단원들에게 감사드린다. 큰들을 믿고 밀어준 경남문화예술진흥원과 산청군도 참 고맙다.

 

본격적인 후기는 두 번째 공연 본 뒤에 써볼 생각이다. (오늘 한 것을 첫 공연이라고들 알고 있지만 사실은(이건 비밀인데) 큰들의 마지막 예행연습(리허설)이었으므로. 이걸 아는 사람 몇 안 될 것이다.) 그때까진, 설마, 어깨 통증이 나아지겠지…. 그나저나 월요일 휴가를 내고 병원 가야 하나…. , 그것참….

 

2018. 10. 20.

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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