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0일 금요일.
설렘이 겹친 날이다. 4년 동안 쓰던 휴대전화가 목숨을 거의 다하여 새로운 것으로 바꾸기로 하였다. 마침 물건이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1시간 조퇴를 했다. 휴대전화 가게에서 미적거리다간 다음 일정을 놓칠 수 있겠기 때문이다. 중간에 한군데 더 들러야 해서 더욱 안달이 났다. 4시 30분 휴대전화 가게에 가서 1시간 10분 동안 헌 휴대전화와 이별하고 새 휴대전화와 상봉했다. 다음엔 차명지 씨가 운영하는 ‘시스터즈 테이블’에 가서 단술 3병을 받았다. 오늘을 위하여, 오늘의 두 번째 설렘을 위하여 미리 주문해 놓은 것이다. 단술은 됫병에 담겨 내장고에서 알맞게 얼어 있었다. 큰들 배우들 드릴 것이라 하니 좀 깎아준다. 입추 지나고 간간이 소나기가 내린 덕분에 냉동 단술이 어떨지 조금 걱정은 되었다.
저녁 7시 산청군 동의보감촌 잔디마당에서 열리는 <오작교 아리랑> 보러 가는 날이다. 차 안에서도 설레는 마음 감출 길 없어서 애써 정신을 가다듬었다. 주머니에 든 빨강 휴대전화를 생각다가 <오작교 아리랑>을 생각다가, 그러다 보니 어느새 마당에 도착했다. 바람은 시원하고 하늘은 어두웠다. 듣자 하니 오후에 한줄기 시원하게 쏟아부어 주고 간 모양이다. 공연하고 관람하기엔 더없이 좋은 날씨라고 여긴다. 그래도 뛰고 구르고 소리지르는 배우들에겐 습하고 더울 것이다. 들고 간 단술이 아주 조금이라도 열을 내려 주고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기대해 본다. 내가 본 공연 가운데 가장 적은 수의 관객이 모였다. 왜 내 마음이 아플까.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 관광객들이 모여들어 어느새 마당은 꽉 찼다. 왜 내 마음이 들뜰까.
8월 11일 토요일.
오후 4시 30분 이웃사촌 부부와 함께 산청으로 향했다. 내가 마당극에 푹 빠져 있다는 것을 아내가 저쪽 부인에게 소문 내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두 부부가 산청 동의보감촌으로 달려간다. 기천문을 통과하여 귀감석을 찾았다. 커다란 바위에 몸을 바짝 붙여 왕산 기를 좀 받았다. 석경을 찾아 올라가 소원을 빌었다. 각자 무슨 소원을 빈 것일까.
다시 잔디마당 근처에 차를 세웠다. 근사한 데 가서 밥을 먹을 차례다. 약초와 한방의 고장 산청답게 버섯전골, 산나물비빔밥 들을 파는 가게가 줄섰다. 그중 한 군데 들어갔다. 소고기전골을 시켰다. 일하는 아주머니가 다가와 노루궁뎅이버섯을 하나 넣어 먹으면 더 맛있다고 귀띔한다. 3000원이란다. 그걸 마다할 까닭이 있나. 그렇게 넷이서 사이 좋게 밥을 먹었다. 산청막걸리 한병쯤 비우는 건 당연지사. 그러고서도 기바위빵을 후식으로 사 들고 마당 근처로 발을 옮겼다.
하늘은 왕산보다 낮았고 필봉보다 낮았다. 다행히 하늘은, 큰들 마당극 공연장에 세워 놓은 무대보다는 높았다. 공연이 끝날 때까지는 비가 오지 않을 것으로 점쳤다. 미적거리다간 좋은 자리를 놓칠세라 얼른 달려가 두 번째 줄에 앉았다. 앞줄엔 귀여운 꼬마들이 나란히 앉았다. 기바위빵으로 입가심을 하면서 공연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아, 그런데 맨 앞줄 앞 바닥에다 돗자리를 깔아 준다. 그걸 놓칠 리 있나. 우리 넷은 재빨리 자리를 옮겼다. 역시 마당극은 맨 앞에 앉아서 봐야 해!
<이웃사촌 부부와 함께 오작교 아리랑을 보러 갔다. '왕하오'가 남돌이로 뽑혀 큰 웃음을 선사했다. 즐거운 추억이다.>
극이 시작되고 이윽고, 관객 중에서 남돌이를 불러낼 차례가 다가온다. 저녁에 먹은 막걸리가 어느새 방광을 지나고 있음을 느낀다. 급히 다녀왔다. 그런데 글쎄, 그새 내 옆에 있는 ‘왕하오’(그의 별명이다)가 남돌이로 점찍혀 마당에 나가 있다. 이걸 놓치면 안되지. 새로 산 아이폰으로 동영상을 찍었다. 나는 이미 <오작교 아리랑>을 대여섯 번 보아온 터라 배우들 움직이는 동선을 좀 안다. 따라서 촬영도 제법 그럴듯하게 했다, 고 생각한다. 그의 부인도 벌린 입을 다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열심히 찍는다. 왕하오가 보여준 남돌이는, 웃겨도 너무 웃기는 바람에 배가 아플 지경이었다. “신랑이 잘하는 것 보니까 처음이 아닌가베?”라는 대사 끝에 주례 할배가 “남돌이 너 처음 맞제?”라고 묻는데 객석에 앉은 부인의 눈치를 보는지 머뭇머뭇 말을 못하는 왕하오. 나만 웃었겠나. 관객들 모두 죽어라 웃어제쳤다. 그런 밤이었다. 그런 추억의 밤이었다. 그렇게 극단 큰들 마당극이 무르익은 밤이었다. 유난히 어린이 관객이 많았고 그들의 호응도가 높은 공연이었다.
동의보감촌에서 하는 마당극 상설공연 중 <오작교 아리랑>은 끝났다. 이제 다음주 주말(18일 토요일 저녁 7시, 19일 일요일 오전 11시)에 하는 <효자전> 두 번밖에 남지 않았다. 다음주를 열심히 기다려야지. 아참, 그리고 제18회 산청한방약초축제(9월 29일~10월 9일(화)) 기간에도 동의보감촌 일원에서 상설공연한단다. 얼마나 다행인지.
<오작교 아리랑>에서 말뚝이 역할뿐만 아니라 일인다역을 마다하지 않은 명배우 ‘오골계’ 이명기 씨가 8월 21일 군대를 간다고 한다. 세상에! <오작교 아리랑>은 오늘이 마지막이었고, 다음주 <효자전>을 마지막으로 공연하고 장도에 오른단다. 아, 마지막이라고 하면 안되겠구나. 2년도 되지 않아 돌아와 “꼬꼬댁~!”하고 날아다닐 것인데 마지막은 무슨…. 하지만 아쉽다. 한창 물오른 배우가 2년가량의 공백을 갖는다는 게 아쉽다. 그를 떠나보낼 큰들 가족들의 짠한 마음이 전해져 와서 괜스레 나도 좀 그렇다. 마주 앉아 술잔 한번 나눈 기억이 없지만, 5월부터 오늘까지 여남은 번 큰들 마당극을 본 나로서는 배우 한 명 한 명이 오랜 친구 같다. 동생 같고 조카 같다. 한동네 사는 이웃사촌 같고 십년지기 같다. 그래서 이명기 씨의 입대가 마치 나의 일 같다. 부디 건강히 잘 다녀오시라.
이 이야긴 <효자전> 마지막 공연을 한 뒤 써야 하는데 미리 서두를 꺼내놓는다. 혹시 이명기 씨의 빛나는 연기를 보고 싶으면, 앞으로 2년 이상 기다릴 만큼 너그럽지 않은 분이라면, 이번주 주말을 놓치지 마시라. <효자전>에서도 그는 많은 역할을 소화하지만, 특히 무시무시한 저승사자로 나온다. 맨뒤에 상모를 아주 멋지고 훌륭하게 돌려대는 배우도 이명기 씨다. 이런 것 정도는 좀 알려줘도 괜찮겠지.
<군대 가는 이명기 씨, 부디 건강하게 잘 다녀오시라고 미리미리 빌어드린다.>
이제 본격적인 오늘 이야기로 들어간다.
큰들 마당극 <오작교 아리랑>은 이미 널리 알려진 대로 분단문제, 남북통일문제를 다룬다. 아랫마을은 대한민국을, 윗마을은 조선을 가리킨다(편의상 남한, 북한으로 한다). 배우들 말투에서도 드러난다. 70년 이상 분단돼 있는 남한과 북한이 자주 만나고 대화하면 천년 만년 오래도록 행복하게 잘살 수 있음을 이야기하는 극이다. 그렇지만 1시간짜리 마당극 안에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을 드러내는 대사들이 적잖이 섞여 있다. 무심코 지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자세히,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랬구나’, ‘그래선 안되겠구나’ 하는 대사들이 제법 많다. 이번에 공연을 보면서 그런 대사들을 적어 보았다. 순전히 나 혼자만의 개똥철학을 썰로 풀어본다.
• “하늘나라 청원게시판에 댓글이 20만을 넘어 도로공사에서 다리를 놓아 줬어.”
일년에 한번씩 견우와 직녀를 만나게 해주는 까치와 까마귀들의 걸작 ‘오작교’. 애닯은 사연의 주인공을 만나게 해주는 것은 까치와 까마귀의 즐거움이겠지만 그 때문에 머리가 까지고 허리가 아픈 걸 어쩌겠나. 하여 까치와 까마귀들이 하늘나라 청원게시판에 제발 대책을 좀 세워 달라고 청원을 한 모양이다. 그랬더니 하늘나라 도로공사에서 서쪽 하늘과 동쪽 하늘을 이어주는 다리를 놓아준 것이다. 그러니 이제부터 까치와 까마귀는 해마다 견우, 직녀를 만나게 하느라 다리를 놓을 필요가 없어졌다. 머리도 안 까지고 허리도 안 아프게 생겼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이 생겼다. 현대판 신문고라 하겠다. 여기에 누군가 청원글을 올리고 댓글이 20만을 넘어가면 해당 정부 부서에서 반드시 대답을 하게 돼 있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씩 청원이 올라온다. 그중 일부는 청원이 받아들여져서 우리 사회를 더 밝고 좋은 세상으로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다. 그중 대부분은 댓글이 20만을 넘지 못할 것이다. 20만을 넘었다고 해도 여러 가지 여건상 해결해 주지 못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20만이라는 기준이 어떻게 나왔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정도의 국민이 요구하면 반드시 대답을 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소통의지가 엿보인다.
마당극에서는 이런 것을 살짝 갖고 온 것이다. 하늘나라 게시판에 까마귀와 까치들이 다리를 놓아달라는 청원글을 올렸더니 동의하는 댓글이 20만을 넘어섰고 마침내 도로공사에서 다리를 놓았다지 않은가. 마당극을 처음 만들었을 때는 이런 국민청원게시판이 없었을 터인데 그때는 뭐라고 했을까. 아무튼 ‘청원게시판 20만’ 이 말은 <오작교 아리랑>이, 한번 만들어지면 영원히 같은 대사로만 판박이로 공연하는 게 아니라 수시로 우리 사회와 호흡하고 관객과 소통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 “훔쳤어? 도둑이네!”
견우와 직녀가 사랑에 빠졌다. 이를 두고 직녀가 견우의 마음을 훔쳤다고 한다. 훔쳤으니 도둑이라고 할 수밖에. 물론 정말 도둑으로, 범죄인으로 보는 건 아니다. 아무튼.
뭐라고 할까. 누가 먼저 손을 내밀었을까. 누가 먼저 눈길을 주었을까. 누가 먼저 말을 걸었을까. 누가 먼저 마음을 주었을까.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하게 되었을 때, 누가 먼저 반했는지 묻는다. 남자가 먼저 ‘대시’했을 수도 있고 반대로 여자가 먼저 ‘윙크’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만나고 대화하고 밥 같이 먹고 하다 보니 정이 들고, 그게 그냥 우정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사랑의 감정인 경우가 많지 않나. 누가 누구의 마음을 훔쳤다는 말은 좀 이상하게 보인다.
그런데도 우리는 대개 ‘남자의 마음을 여자가 훔쳤다’고들 말한다. 반대로 남자가 여자의 마음을 훔쳤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남자 중심으로 보는 것이다. 여자가 남자 마음을 훔쳤다라고 표현하는 게 일반적이다. 반대로 여자가 먼저 남자에게 반한 경우에는, 남자가 여자의 마음을 훔쳤다고 하지 않고 여자가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겼다’고 말한다. 대개 그렇다. 이런 말에서 나는 우리 사회의 남성 중심의 문화, 사고, 정서를 엿본다. 아담과 이브의 전설이 이런 이야기의 원형이 되었는지 연구해 볼 일이다.
• “초장에 쉽게 들어가면 평생 남자가 기를 못 펴는 기라.”
신랑 친구들로 구성되는 함진애비 패가 신부댁에 함을 지고 온다. 함에 뭐가 들었는지는 다음에 이야기하고. 함진애비는 신부집에 곧장 들어가는 게 아니고 대문 앞에서 신부집 부모나 형제, 친척들과 한참 실랑이를 벌인다. 신부집에서 주안상을 차리고 노잣돈을 제시하며 함진애비를 집 안으로 끌어들인다. 재미있는 혼례 풍속이다. 밀고 당기는 장면이 아주 흥미진진하다. <오작교 아리랑>에서도 이 장면을 잘 표현한다. 관객들이 본격적으로 무장해제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아주 어린 아이들은 좀 어리둥절해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왜 이런 대사를 하는가. 신랑쪽은 함이 너무 쉽게 신부집에 들어가면 신랑이 결혼 후 기를 펴지 못하고 산다고 생각한다. 그럼, 집 안에서 기다리는 신부쪽은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함을 냉큼 집 안으로 들이지 못하면 신부가 결혼 후 신랑에게 쥐어 살게 된다고 여기지 않겠는가. 상대적인 것이므로. 왜 이렇게들 생각하게 됐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선남선녀가 만나 사랑하고 마침내 결혼하는데, 초장에 기를 잡아야 한다, 기선을 제압해야 한다고 하는 풍습은 왜 생겼을까. 결혼이 축구인가 권투인가.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고 화합하여 알콩달콩 오순도순 잘 살도록 곁에서 도와주고 응원해줘도 모자랄 판에. 처음부터 기싸움을 벌이고 상대방을 제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무래도 문제다. 요즘도 이러고들 사는지. 재미있는 웃음을 자아내는 명장면이 수두룩하지만 우리들의 비뚤어지고 뒤틀어진 인생관, 가치관, 풍속을 보는 듯한 장면이기도 하다.
• “저 영감탱이는 평생 뒤에 오는 사람 챙기는 법이 없어.”
우리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생각한다. 어쩐 일인지 아버지들은 허리가 꼿꼿한데 어머니들은 꼬부랑이다. 아버지는 농사만 열심히 지으면 되었지만 어머니는 농사일 외에도 끝도 없고 셀 수도 없는 집안일을 하기 때문이리라. 아이 낳아 기르는 일도 주로 어머니 몫이었다. 아버지는 농사만 잘 건사하면 나머지 시간은 술집이나 노름판에서 묵새기며 고단한 허리를 펴기도 했을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처럼 대처에 나간다. 버스 타러 가는 도중에 아버지는 저만치 앞서 가고 어머니는 저 뒤에서 따라온다. 무거운 보따리도 대개 어머니가 들었다. <오작교 아리랑>에서도 아버지는 담뱃대처럼 생긴 지팡이를 짚고 앞장서서 걸어가고 어머니는 손가방(버나가 들어 있는)을 들고 종종종종 뒤따른다. 남돌이 부모도 그렇고 꽃분이 부모도 그렇다. 버스에 타서도 그렇고 내려서도 그렇고 식당에 가서도 그렇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잘 돌아보지 않는다. 어디 예쁘장한 다방 마담이 있을까 찾는 것인지….
어머니는 평생 그렇게 살아왔다. 요즘 어머니들은 그렇게 살지 않겠지. 아니 요즘 아버지들부터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했다간…. 아무튼 이 한마디엔 우리 부모 세대의 남녀관, 부부관 같은 게 녹아 있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불과 한 세대 전의 모습이다. 그런 부모들이 요즘 세대 부부를 보면 뭐라고 할까.
• “할망구가 애새끼 교육을 어떻게 시켰어?”
• “나 보고 잘못 키웠단다. 지는 한 게 뭐 있노? 맨날 술이나 쳐 묵고. 담배만 뻑뻑 피워대고. 담뱃값 올린다고 담배가 끊어지나!”
전형적인 우리 부모 세대의 대화이다. 자식 교육은 어머니가 도맡아 왔다. 아버지는 농사 짓고 나면 늘 술타령이었을 터이니 자식이 공부는 하는지 어쩐지 도통 몰랐을 것이다. 그래놓고는 자식이 잘못하기라도 하면 애매한 어머니를 닦달했다. 자식 교육은 부모가 함께 관심을 가져야지 어느 한쪽이 감당할 수 있는 무게가 아니다. 하긴 요즘은 할아버지의 재력과 어머니의 정보력과 아버지의 무관심이 대입 성공의 필수요소라고 하더라만.
아버지에게 지청구를 한 방 먹은 어머니는 면전에 대고 댓거리를 하지 못한 채 뒤돌아 앉아 궁시렁궁시렁거리며 화풀이를 한다. “지가 한 게 뭐 있노?”라는 말 속에 모든 게 다 들었다. 그래놓고는 자식이 잘되어 입신양명을 하면 모두 아버지 자기 공으로 돌릴 것이란 말도 들어 있다. 어머니가 미처 내뱉지 못한 말들은 가슴에 모이고 쌓여 울화통이 되고 홧병이 되고 한이 된다. 그것을 뱉어낼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담뱃값 올린다고 담배가 끊어지나!”라는 악발은 그래서 나온 대사이다. 어느 정부에서건 국민 건강 위한답시고 담뱃값을 천정부지로 끌어올리는데 그래봤자 금연에는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결국 국민 건강 핑계로 세금만 더 거둬들이는 꼴 아닌가.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끌어부어야 할 화풀이를 엉뚱한 정부에다 하는 것이다(전혀 엉뚱한 건 아니다). 그러면서 관객들의 동의를 얻어낸다. 나는 적극 동의한다.
• “오늘같이 좋은날 신부 노래 한번 들어봐야지 않겠습니까?”
청춘남녀가 만나 결혼을 한다. 하나의 가문과 다른 하나의 가문이 만나는 날이다. 전혀 다른 가풍을 이어온 집안이 두 사람을 매개로 하나로 모아지는 날이다. 하나의 우주와 다른 우주가 만나는 날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어찌 기쁘지 않은가. 어찌 즐겁지 아니할까. 이런 날 술과 안주, 노래와 춤이 없을 수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결혼은 잔치다. 큰 잔치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치르는 여러 가지 통과의례 중 가장 큰 의례이다. 그래서 대례(大禮)라고 한다.
그러면 이런 날은 신랑, 신부도 노래하고 춤추고, 신랑, 신부 부모도 노래하고 춤추고, 신랑, 신부 친구들도 춤추고 노래할 만하지 않은가. 그런데 “이렇게 좋은 날 신부 노래 한 번 들어봅시다”라는 말이 맨 먼저 나온다. 신부가 가수인가? 신부가 노래방집 사장 딸인가? 노래를 못해 죽은 귀신이 신부에게 씌었는가? 신랑이 먼저 노래하면 안 되는가? 신랑은 음치박치인가?
신부가 먼저 노래해도 되고 신랑이 먼저 해도 되고 양가 부모가 먼저 노래해도 된다. 하객들 중에서 누군가 선창을 해도 된다. 그런데 어딜 가나 신부 노래 듣는 걸 가장 반긴다. 그만큼 신부는 베일에 가려져 있는 신비로운 존재로 비치기 때문일 것이다. 그 가면을 살짝 벗어던져 보라는 신호일 것이다. 그럼으로써 조금은 엄격하고 진지하게 진행된 결혼식을 진짜 잔치로 바꿔보려는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이런 것에서도 우리는 알게 모르게 모든 것을 남자들 위주로, 신랑 위주로 해왔음을 잠시라도 느낄 만하지 않은가.
<공연 보면서 그때그때 받아적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열심히 넉 장이나 적었다. 덕분에 이런 글도 쓴다.>
• “이 결혼 반대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있다. 자식을 낳아 키워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자식이 고집을 피우면 이겨낼 재간이 없다. 자식이 잘못된 길을 가는 데도 두고볼 사람은 없겠지만. 특히 이 말은 자식이 결혼할 배우자를 데리고 오고 나서 그 뒷이야기에서 주로 등장한다. 부모들은 덮어놓고 반대부터 한다. 마땅한 혼처를 정해 놓은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아랫마을 남돌이와 윗마을 꽃분이가 한창 결혼식을 하고 있는데(그것도 분위기가 무르익어 신랑, 신부가 춤추며 노래하고 있는데) 양가 부모들이 동시에 들이닥친다. “이 결혼 반대다!” 이 한마디는 분위기를 삽시간에 바꿔놓는다. 관객들은 양가 부모들이 결혼식을 뜯어말릴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결국엔 행복한 마무리(해피엔딩)로 끝날 것임도 짐작하고 있다.
부모들은 반대부터 한다. 왜 그럴까. 자식이 못 미더워서 그럴까. 자식이 선택한 사람이 보나마나 눈에 차지 않을 것임을 알아서일까. 이 부모의 반대에 부닥쳐 뜻을 이루지 못한 어떤 청춘은 이별을 하고, 어떤 남녀는 해외로 도피하고, 어떤 가련한 인생은 이 세상을 하직하기도 한다. 지혜로운 어떤 이들은 몰래 야반도주하여 사랑을 이룬 뒤 아이 하나둘 데리고 나타나기도 했다. 얼마나 현명한지. 자식으로서는 뛰어넘기 어려운 부모의 반대라는 벽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으면 어떡하겠는가. 더구나 양쪽 부모 모두 한사코 반대하고 결단코 반대한다면 어쩌겠는가.
부모들이 마치 입사 면접 보듯이 일단 한 번 데려와 보라고 하든지, 상대방 부모와 한번 만나보자고 하든지, 지금부터 사귀어 3년이나 5년 뒤에 결혼하도록 하든지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 그랬다. 3~5년쯤 지나면 대부분 헤어지더라고. 그래도 헤어지지 않으면 그만큼 천생연분도 없다고. 그런데도 덮어놓고 반대부터 한다. 우리 부모들은 왜 그랬을까. 요즘은 이러지 않을 것이다. 이러는 부모는 정말 없을 것이다.
• “저 걸뱅이 같은 윗마을 여자랑 결혼을 해?”
• “돈만 밝혀대는 아랫마을 남자랑 결혼을 한다고?”
남한이 북한을 어떻게 보는지, 북한이 남한을 어떻게 보는지, 이 대사 두 마디에 모든 게 담겼다. 아마 극작가는 한두 마디 말로 상대방을 표현해 내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을 것이다.
남한은 북한을 가난뱅이로 본다. 실제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북한 주민들의 실상이 언론에 보도된 적이 많고, 탈북한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북한식 사회주의를 70년 가량 유지해 온 결과 일부 권력층은 호의호식 개기름이 좔좔 흐르지만 대다수 인민들은 굶주림과 헐벗음에 허덕이고 있다, 고 생각하고 있다. 그 정도가 얼마만큼 심한지 나는 객관적으로 말할 수 없다. 그렇다고 치자. 그러한 윗마을 여자와 결혼한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말라는 호령이다.
반대로 보면 어떤가. 북한은 남한을 돈만 밝혀대는 족속으로 본다. 천민 자본주의 국가라는 것을 꿰뚫는 표현이다. 상위 1%가 부의 99%를 가져가는 나라. 극심한 빈부의 격차로 인하여 갈등과 불신이 끊이지 않는 나라. 자살률 세계 1위 나라. 남한 자본주의의 풍요로움 속에 감춰진 이기주의와 배금주의를 비판하는 것이다. 그런 남한에 딸을 못 주겠다는 단호한 선언이다.
단 두 마디 말에 남한과 북한의 실상이 오롯이 담겼다고는 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말 속에 남한과 북한이 처한 왜곡된 현상은 드러난다. 두쪽 다 사람 중심으로, 모두가 행복한 방향으로, 우리 겨레 전통의 기반 위에서 미래를 향하는 것으로 정치를 해 나갈 수는 없었을까. 이 대사 두 마디는 슬프게 한다. 이렇게 70년 동안 등을 돌리고 살아왔구나 하는 것을 절절하게 느끼게 해 준다.
• “내가 니 애비다, 나는 니 에미다.”
<스타워즈> 시리즈를 즐겨 본 사람은 안다. 악의 화신 다스베이더는 사실 제다이 루크 스카이워크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시리즈 끝부분에 가면 아들의 광선검에 목숨을 잃을 처지에 놓인 다스베이더가 말한다. “내가 네 아버지다!”라고. 루크 스카이워크는 혼란에 빠진다. 자기 정체성에 극심한 혼란이 온다. 그토록 증오하고 미워한 악당의 우두머리가 아버지라니. 이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인가. 이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인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놓고 벌어지는 신화와 전설은 아주 많다. 처음엔 부모인지, 자식인지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생부더라는, 친자식이더라는. 이런 건 요즘도 영화나 소설, 드라마로 변주되어 등장하곤 한다. 우리 인간 존재에서 드러나는 사건과 갈등의 원형이라고 할까.
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혀 8일 만에 죽고 만다. 사도세자의 아버지 영조는 비정하다. 정치적 술수에 속은 것일 것이다.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는 세손으로 사는 동안 몇 번 죽을 위기를 넘긴다. 도처에 적들이 득실거린다. 정조는 마침내 왕위에 오른다. 보위에 오른 정조는 외친다. “오호라!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이 말을 들은 자들 가운데 등골이 오싹하고 오금이 저린 자들이 많을 것이다. 그들이 세손시절의 정조를 죽이려던 놈들 아닌가. 정조가 사도세자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을 선언하는 순간 모든 것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내가 니 애비다.”라는 대사 한 마디는 여러 가지를 떠올리게 한다. 극 중에는 관객들의 웃음을 불러모으는 구실을 톡톡히 한다. 나는 똑같지는 않지만 얼핏 비슷하기도 하고 설핏 정반대 같은 장면들을 동시에 떠올린다. 그만큼 나에게는 귀를 번쩍 뜨이게 하는 대사이다. 어떤 때는 이 대사를 받아야 할 상대방의 앞지른 행동이나 말 때문에 “내가 니 애비다.” 대신 “너 내가 누군지 알고 있구나!”라고 말할 때도 있다. 그래서 재미있다.
• “우리 남돌이가 인사성 하나는 밝아!”
사람이 갖춰야 할 성품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예의 발라야 한다. 겸손해야 한다. 착해야 한다. 인사 잘해야 한다. 말도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해야 한다. 부모님 잘 모셔야 한다. 형제들과 우애 있어야 한다. 친구들 간에 우정도 중요하다. 웃어른 공경해야 한다. 그중에 ‘인사를 잘하는 것’은 얼마다 중요할까.
요즘 길가다 후배들을 만나면 고개를 까딱(정말 약간 까딱)하며 인사를 한다. 나이가 젊을수록 인사는 가볍고 짧고 성의 없다. 나무라고자 하는 건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받아들이는 쪽은 성의 없다고 여기겠지만 그들에겐 최대한의 예의일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받아들일 일이다.
그런데 간혹 고개를 많이 숙이거나 허리를 굽신하며 인사하는 사람도 만난다.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서거나 뭘 먹다가 황급히 감추며 인사하는 사람도 만난다. 이런 말 하면 구닥다리 취급 받을 줄 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으면 꼰대라는 소리를 듣는 걸 안다. 하지만 인사 하나라도 예의 바르게 하는 사람을 만나면, 솔직히 한번 더 바라본다. 특히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면 그런 첫인상이 이후의 만남에서 많은 것을 좌우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인사성 하나는 밝아’라는 말을 들을수록 좋다고 본다. 나도 되도록 인사는 예의바르게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인사성 하나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다 밝고 좋으면 금상첨화일 테지.
• “하고 많은 남자들 중에서 왜 하필 저 사람이야?”
애지중지 키운 딸 녀석이 평생 배필이라며 웬 못생긴 남자를 데리고 왔다. 앞서 말한 것처럼 부모는 덮어놓고 반대할 것이다. 그때 하는 말이 “하고 많은 남자 중에서”이다.(여기서 ‘하고’는 ‘무엇을 하다’가 아니라 ‘많다’는 뜻이다) 세상의 절반은 남자요, 절반은 여자인데 그 절반 중에서 하필이면 저 남자를 데려 왔느냐는 말씀이다. 마음에 들지 않긴 한데 딱히 흠잡을 데가 없으니 넘겨짚어 하는 말씀일 것이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시집 보내지 않아.”(극중 꽃분이 아버지의 말)라는 대사도 이런 심중의 표현이다.
그럼 반대로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겠나. 하고 많은 남자 중에 하필 저 남자를 데려온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을까. 수없이 스쳐 지나가는 인연들 가운데 꼭 한 사람과 인연을 맺어 그 사랑의 열매를 맺으려고 하는데 그것을 인정하고 축복해 줄 수는 없을까. “너희들 정말 귀한 인연으로 만났구나. 이제부터 우리 집안끼리도 인연을 맺어보자.”라고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 “우리 집안은 뼛속 깊이 예술인의 피가 흐르는 민족 예술인 집안이야!”
• “원조 사골 예술인 집안 말이지예.”
• “원조, 원조 하는 집 중에 진짜 제대로 된 집은 못봤소.”
우리는 언제부터 ‘원조’를 좋아했을까. 서울 장충동에 가면 모든 가게에 ‘원조’라는 간판을 붙여 놓았다고 한다. 하동에 가면 모든 가게가 원조 재첩국집이다. 어느 도시 어느 골목이 특정 물건으로 유명해지면 서로 원조라는 간판을 내걸고 장사를 한다. 평범한 재료를 아주 맛있고 영양가 높게 만드는 비법을 개발하였노라 자랑한다. 그런데 원조는 원래 하나여야 한다. 그 하나의 원조에서 배우고 베끼고 훔쳐서 제2, 제3의 원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서로 원조라고 다투다가 주먹다짐을 하고 소송까지 건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원조가 뭐기에? 거기엔 아마 자존심과 긍지가 담겨 있을 것이다. 거기엔 그 집안의 전통과 가풍과 유훈,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비법 같은 게 스며들어 있을 것이다. 아주 보잘것없어 보이는 양념 하나에도 혼이 들어 있고 무심코 보아 넘기는 반찬 하나에도 정신이 깃들어 있을 것이다. 원조는 위대하다. 원조는 그 분야에서는 새 역사를 창조했다고 할 만하다. 그래서 원조, 원조 하는 것이다.
반대로도 생각해 본다. 원조는 오래되었다는 말이다. 원조는 고집으로 이어져 왔다는 말이다. 원조는 변화를 싫어한다는 느낌도 담고 있다. 이건 좋은 일인가. 아닐 것이다. 가령 원조 식당이라고 하더라도 변화하는 손님의 입맛을 좇아가지 못하면 망하고 만다. 시대도 변하고 사회도 변하고, 식재료는 더욱 자주 바뀌는데 원조타령만 하고 있다가는 낙오자가 되고 말 것이다. 극단 큰들이 아주 멋들어진 작품 하나 만들어 성공했다고 하여 100회 넘도록 똑같은 배우가 똑같은 대사를 되풀이하지 않는 것은 이런 이치를 이미 깨달았다는 뜻 아니겠나. 그러니 훌륭한 극단이지.
• “느림의 미학이라고 모르요?”
언제부턴가 우리는 빨리빨리에 익숙해져 왔다. 1960~70년대 개발독재 시대를 넘어가면서 우리 사회는 빠르게 산업화해 왔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가 뚫리고 공항과 항만 인프라가 구축되면서 교통에 혁명이 일어났다. 노동자는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일터에서 땀흘려야 했다. 식당에 가면 “빨리 달라.”는 말을 주문보다 먼저 했고, 밥 먹은 뒤에는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달려가야 했다. 서양의 패스트푸드가 밀려들어오면서 빨리빨리는 문화로 굳어져 갔다. 무엇이든 빨리 하는 게 미덕인 세상이 온 것이다. 그렇게 1980년대를 건너 1990년대가 되었다.
우리는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 생각없이 곁을 바라보았다. 거기엔 우리가 앞을 향해 허겁지겁 달려오느라 미처 챙기지 못한 것들이 늘려 있었다. 가족, 사랑, 우애, 친구, 믿음, 효, 양보, 협동, 공동, 소통, 배려 이런 게 아니었을까. 빨리빨리라는 수레바퀴 아래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의 넋을 본 것일까. 그들의 통곡을 들은 것일까. 느림의 미학이 탄생한 것이다.
도처에서 느림의 미학을 이야기한다. 빨리 하는 것보다 천천히 하면서도 정확한 게 더 중요하다. 정확하게 하면서도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함께 하면서도 다시 천천히 하는 게 중요하다. 이런 이야기들이 많다. 고속도로를 달려가는 것보다 국도를 여행하며 산과 들을 완상하고 싶어한다. 초고속 인터넷으로 살면서도 아날로그의 감수성을 느끼려고 일부러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그런 아날로그적 감수성 속에서 우리가 잊고 살았던 인간의 본성, 동료의 중요성, 가족이라는 울타리의 포근함, 회사라는 조직의 든든함 따위를 찾고자 하는 것은 아닐지.
• “우리 민족의 굴곡진 삶을 표현한 ‘예술 버나’ 몰라?”
• “자고로 인생이나 예술이나 대나무처럼 쪽 곧아야 하는 것이야!”
어떤 사람의 삶이 굴곡진 게 좋을까, 한번의 휘어짐 없이 쭉 뻗은 게 좋을까. 굴곡진 삶이란 어떤 것일까. 조실부모하고 혈혈단신 온갖 역경을 이겨내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간 사람을 이를 것이다. 쭉 뻗은 인생은 어떤 것일까. 금수저로 태어나 호의호식하며 탄탄대로를 걸어간 삶을 이를 것이다. 둘 중에 어떤 게 더 나을까. 어떤 게 더 행복할까. 굴곡진 삶을 산 사람은 그렇게 일그러진 형태로 죽어갈 수도 있을 것이고, 기나긴 인생의 끝에서 마침내 어떤 성취를 이뤄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기쁨과 행복은 형언할 수 없을 것이다. 쭉 뻗은 삶을 살던 사람도 말년에 이런저런 사건에 얽혀 교도소를 드나들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삶이 더 행복할까.
사람은 누구나 굴곡진 삶을 원하지 않는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금수저를 입에 물고 부모님 덕분에, 때로는 스스로 능력에 의하여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주위 친구로부터 부러움을 사며 그렇게 살고 싶을 것이다. 완벽에 가까운 부와 명예와 건강과 사회적 신망을 거머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그런 삶이 과연 있을까. 있다면 몇 명이나 될까. 굴곡진 삶을 살고 싶어 사는 건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나에게 그런 삶이 주어졌다 하더라도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운명과 승부를 거는 태도가 더 중요할 것이다. 그렇게 운명과 맞장뜨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행복과 삶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것 아닐까. 사람마다 바라보는 관점은 다를 것이다.
한 나라라면 어떨까. 한 겨레라면 어떨까. 어떤 나라의 위상이나 역사가 굴곡진 것이라면 그 나라 국민들의 삶은 얼마나 피폐해질까. 그 민족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우리나라는 수백 번의 외침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이겨냈다고 자랑하지만, 결코 자랑일 수만은 없을 것이다. 외침을 막아내느라 죽어간 수많은 백성들의 혼령을 생각하면 결코 자랑거리가 아닐 것이다. 단 한번도 외적의 침입을 받지 않는 겨레는 없겠지만, 우리 나라는 너무 심했다. 그만큼 당시 위정자들이 잘못했다는 것이고 그만큼 당시 백성들은 죽어났다는 뜻이다. 슬픈 역사이다. 아픈 역사이다. 굴곡진 역사는 불가피한 것이었지만, 슬프고 아픈 역사이다.
• “우리 동네에서는 다 그리 한다.”
신랑쪽, 신부쪽 하객들이 편을 갈라 버나 이어달리기를 했다. 첫 번째 판은 신부쪽이 이겼다. 이긴 쪽은 만세를 부르고 진 쪽은 땅을 치고 통곡한다. 그때 상쇠가 말한다. “이번은 연습 경기.” 당연히 이긴 쪽에서 항의할 수밖에. 그때 신랑쪽에서 말한다. “우리 동네에서는 다 그리 한다.” 로마 가면 로마 법을 따르라고 했듯이 우리 동네에서 다 그리 하니 따르라는 이야기다. 생각해 보면 어릴적 자치기에서도 동네마다 규칙이 조금씩 달랐고, 당구나 화투놀이에서도 동네마다 조금씩 다른 규칙을 갖고 있었다. 이때 “우리 동네에서는 다 그리 한다.”고 말하면 대부분 통한다. 길게 실랑이할 것도 없고 누구에게 물어볼 것도 없다.
그런데 말이다, 나는 이 대사에서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됐다. 들으면 들을수록 신묘한 힘을 발휘하는 힘이면서도 들으면 들을수록 무서운 말이기 때문이다. 왜 무서운가. 우리 동네에서는 다 그리 하므로 무조건 따르라는 말은 하나의 폭력일 수도 있겠다. 사안을 좀 키워서, 남북통일이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일반 국민들이나 사업하는 사람들이 통일 전에는 꿈도 꾸지 못하던 남쪽과 북쪽을 스스럼없이 오고갈 것이다. 그러다 보면 크고 작은 소동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우리 동네는 다 그리 한다며 법에도 없고 상식에도 맞지 않은 사태가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겠다. 비약이 너무 심했다. 아무튼 그런 무서운 생각도 좀 해 봤다.
• “왜 몰랐을까?”
• “왜기는, 그동안 만나지도 않고 소통을 안해서 그렇지!”
• “막상 만나니 이렇게 좋은 걸 말이외다”
만나고 대화하다 보면 모든 게 통하게 마련이다. 안 만나니까 서로의 속마음을 모르는 것이고 그러다 보니 평생 원수처럼 지내는 것이다. 막상 만나면 무진장 좋다. 만나면 웃을 일이 생기고 즐거운 일이 생긴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서로 닮은 점이 보이고 장점이 보이게 된다. 아랫마을과 윗마을 사람들이 한바탕 버나놀이를 하면서 버나가 왔다 갔다 하고, 마음이 오락가락하고, 생각이 건너갔다 건너왔다 하고, 그래서 정이 새록새록 싹트는 장면이다.
남한과 북한도 그러해야 할 것이다. 진정 그러해야 할 것이다. 서로 의심을 내려놓고 믿음의 탑을 쌓을 일이다. 서로 불신의 벽을 허물고 신뢰의 다리를 놓을 일이다. 그렇게 남북의 정상이 오고가고, 고위급 회담도 열어야 할 것이다. 이산가족도 무시로 만나고 사업가들도 장벽 없이 만나고 일반 국민들도 수시로 만나야 한다. 만나다 보면 이해하게 되고 정이 들게 되어 있다. <오작교 아리랑>이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이 몇 마디에 담겨 있다. 굳어 있던 경계심을 단숨에 허물어뜨리는 마법의 대사요, 남과 북 정치인에게, 이념 대립으로 각을 세우고 있는 남과 북 국민 모두에게 충심으로 드리는 말이다.
• “잡은 손 놓지 말고 천년 만년 잘 살아라!”
남돌이와 꽃분이가 마침내 결혼한다. 양가 부모들은 “아랫마을 남돌이와 윗마을 꽃분이는 잡은 손 놓지 말고 천년 만년 잘 살아라~!”고 외친다. 박수가 쏟아진다. 이 한마디 말을 제대로 성립시키기 위해 마당극 한 시간을 끌어온 것이다.
잡은 손을 놓는 게 문제다. 남과 북도 그렇고 부부 사이도 그렇고 친구 사이도 그렇다. 뭔가 해 보려던 기업 사이도 그렇고 뭔가 잘해 보려던 나라 사이도 그렇다. 정치인들은 더 그렇다. 한번 잡은 손을 정말 천년 만년 동안 잘 잡고 있기는 어렵겠지만, 요즘은 모두들 너무 쉽사리 놓아 버린다. 죽고 못 살겠다며 결혼을 해놓고 너무 쉽사리 이혼한다. 기업끼리 잘해보자고 계약을 맺었다가 한쪽이 배신한다. 나라끼리 동맹을 맺었다가 한쪽이 딴나라와 붙어먹는다. 정당끼리 연합전선을 펴다가 상황이 달라지면 하루아침에 오리발을 내민다. 한번 잡은 손을 영원히 놓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죽음이 삶을 갈라 놓는 일도 있으니) 요즘 우리는 너무 쉽게 손을 놓아버리고 쉽게 등을 보인다. 슬픈 시대이다. 남돌이와 꽃분이처럼 한번 잡은 손 놓지 말고 오래도록 행복하게 잘 살도록 노력할 일이다.
<오작교 아리랑>에는 빛나는 대사들이 많다. 여기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관객의 심장을 후련하게 하는 대사도 있고 남북한 국민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도 만만찮다. 잘 만들어진 대본에 따라 연기하는 배우들도 고수 중의 고수인지라 전달력도 매우 높다. 직접 보는 것과 글로 보는 것은 많이 다를 텐데, 현장의 느낌을 그대로 전달할 수 없는 필력이 아쉬울 뿐이다.
몇몇 대사는 비판적으로 보았다. 그러나 오해 마시라. 마당극에서 이런 말을 쓰면 안 된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마당극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는 말씀이다. 마당극의 배경이 되는 우리 시대의 우리들이 그런 말을 무심코 쓰고 있다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다. 즉, 큰들에서 마당극 대본을 쓰면서 시대상황을, 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언어를 아주 잘 반영했다는 칭찬이다.
일상생활에서 아무 생각없이 툭 던지는 말이 상대방에게는 비수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한겨울처럼 얼어붙은 냉가슴 녹여주는 따뜻한 커피 한잔과도 같게 되는 것이다. 우리 부모세대들은 그렇고 그런 말을 서로 던지며 살았다손 치더라도 우리는 그렇게 살지 말아야 할 일이다. <오작교 아리랑>을 보면서 그런 생각들을 해보았다.
2018. 8. 11.
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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