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8시 출근, 오후 5시 퇴근하는 제도 덕분에 일찌감치 출발할 수 있었다. 집에 와서 옷만 갈아입고 차를 몰았다. 고속도로에 차를 올렸다. 휴가철엔 하행선에 차가 많은 법인데 상행선도 만만찮았다. 지리산, 덕유산으로 가는 차들일까. 나는 산청까지만 가면 되는데 짐차, 버스들이 비켜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시간에 쫓기는 것은 아니었다. 설레는 마음 감출 길 없어서였다. 할 수 없는 일이다.
일주일을 기다렸다고 할 수도 있고 이 주일을 기다렸다고도 할 수 있다. 일주일 기다렸다는 말은 지난주에 마당극 <오작교 아리랑>을 본 것으로 계산한 것이고, 이 주일을 기다렸다는 말은 지지난주 마당극 <효자전> 200회를 본 것을 따지는 것이다. 일주일 만에 산청 동의보감촌으로 가는 것이고, 이 주일만에 <효자전>을 보게 되었다는 말이다. 주마다 한번씩 동의보감촌에 가는데 한번은 <효자전>을, 한번은 <오작교 아리랑>을 보게 된다.
5월 중순께부터 석달 남짓 동안 산청 동의보감촌 잔디마당에서 <효자전>과 <오작교 아리랑>을 보았고 하동 평사리 최참판댁에서 <최참판댁 경사 났네>를 보았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지난해 6월 경남도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큰들 창립 33주년 정기공연부터이다. 줄잡아 열두세 번은 된다. <효자전>은 제목에서 보듯 ‘효’에 대한 이야기이다. <오작교 아리랑>은 남과 북의 문제, 즉 통일 문제를 다룬다. <최참판댁 경사 났네>도 제목에서 한눈에 알 수 있듯이 박경리의 소설 <토지>를 각색한 작품이다.
주변에 몇몇 분들과 함께 이 공연들을 보러 다녔다. 아내, 어머니, 형님, 직장 동료, 동네 형, 누나 들이다. 공연 본 느낌이나 생각을 써서 누리방(블로그)에 올렸다. 잘 찍은 건 아니더라도 사진도 제법 올렸다. 마당극 전문가는 아니지만 멋진 공연을 보고난 뒤 이런저런 감회가 없을 수 없어서 몇 자씩 끄적거려 본 것이다. 내가 쓴 글을 보고 마당극을 보러 가게 된 분도 몇몇 있다. 스스로 참 잘했다고 여긴다. 그들도 고마워한다.
그러는 사이 큰들 단원들과 가까워졌다. 나는 그들의 이름을 죄다 외우지는 못한다. 얼굴 보면 구별하여 기억할 수 있을 정도다. 그들은 나를 곧잘 알아보고 인사를 건넨다. 페이스북 친구가 된 단원이 꽤 된다. 2016년 11월 후원회원이 된 뒤 사천시 곤명면 작팔리에 있는 큰들 연습실로 한번 놀러 간 적은 있지만, 단원들이 나를 알아보는 건 근래 자주 공연을 보러 가는데다 누리방에 그들의 작품에 대한 글을 올리는 덕분일 것이다. 즐겁고 재미있으며 뜻 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고마운 일이기도 하다.
큰들 마당극을 볼 때마다 소감을 써 올리는 까닭은 다른 데 있지 않다.
첫째, 큰들을 응원하기 위해서이다. 큰들은 1984년 진주에서 창단해 올해로 34년째 민족문화를 지키고 키워나가고 있는 전문 문화예술공동체이다. 그동안 현재 절찬리에 공연 중인 세 작품 외에도 <순풍에 돛 달고>, <마당극 이순신> 등 유명짜한 창작 마당극을 제법 선보여 왔다. 셀 수 없이 많다. 후원회원도 2000명 가까이 된다고 한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엔 아직 더 많은 후원이 필요한 것 같다. 35명 넘는 단원들에겐 더 많은 후원회원의 더 큰 박수가 필요하다. 각자 가진 재능과 능력을 나누어 큰들을 후원하면 된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로써 그들을 응원하는 것이다. 혹시 내 글을 보고 누군가 공연을 보러 가고 그렇게 공연을 보러 가는 사람 가운데 몇몇이라도 후원회원이 되어주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이다. 그런데도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큰들 후원회원에 가입하라고 직접 부탁하거나 요구하거나 강권하지 않는다. 스스로 느끼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게 중요하다. 양보다는 질이다.
혹시 오해할까 싶어 간단히 밝혀 놓자면, 큰들은 후원회원의 도움 말고도 정부나 여러 기관ㆍ단체에서 주관하는 사업에 수차례 선정되었다. 경남도민예술단 시군 순회공연,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복권기금 문화나눔 순회사업,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민간우수예술 방방곡곡 문화공감 사업 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다 적으려면 손가락 아프다. 그만큼 작품성ㆍ흥행성뿐만 아니라 기획실력도 뛰어나다는 것을 미리 인정해 주었으면 한다. 산청 동의보감촌과 하동 최참판댁에서 벌이는 정기공연도 산청군과 하동군의 지원으로 이뤄지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남들 가지 않는 길을 외롭고 쓸쓸하게 가면서 주변에 도움을 호소하는 그렇고 그런 공동체는 아니라는 말씀이다.
둘째, 재미있고 의미 있는 작품을 혼자만 보고 즐기기에 미안해서이다. 작품들은 1시간짜리다.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다. 가령 동의보감촌이나 최참판댁에 놀러간 가족들이 예정에 없던 마당극을 만나더라도 조금만 더 짬을 내면 한 편을 다 관람할 수 있을 만한 분량이다. 작품들에는 1시간 동안 울고 웃게 만드는 힘과 요소가 있다. 탄탄한 이야기 구조와 적절하게 배치한 웃음 요소, 그것들을 능수능란하게 소화해 내는 배우들의 연기력,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조화롭게 배치하고 이끌어가는 연출자들의 탁월한 능력들이 아주 그만이다. 옛날 노래와 요즘 노래가 느닷없이 뒤섞이기도 하고 꿈에도 생각지 못한 소품이 등장하기도 한다. 관객들도 아무런 사전 통보 없이 갑작스럽게 마당으로 불려나가 주연 못지않는 단역을 맡기도 한다. 이 과정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정말 재미있다.
또한 마당극의 주제들도 꽤 의미 있다. 효도, 광복, 통일이라는 소재와 주제는 무게감으로는 도무지 잴 수 없는 것들이지만 마당극에서는 가볍게 툭 치거나 묵직하게 훅 들어오거나 아무튼 긴장과 박장대소의 해방감을 동시에 느끼게 해준다. 그러고 나면 부모님께 효도해야겠구나, 우리나라의 광복은 그만큼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구나, 남과 북은 자주 만나고 대화를 해야 하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니 재미있다고 할 수밖에. 그러니 의미 있다고 할 수밖에. 그런 것을 나 혼자만 돌아다니며 보다간 나중에 가까운 벗들이 대로할 것 같아 이렇게 글로써라도 열심히 알리는 것이다. 그 효과도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셋째, 한없이 자랑스러운 큰들을 동네방네 소문내기 위해서이다. 사실 진주를 중심으로 한 경남서부지역에서 큰들을 모르면 간첩이기 십상이다. 전국에서도 큰들 마당극을 본 사람이 아주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은 큰들을 아는 국민보다 모르는 국민이 더 많을 것이고 모르는 해외동포도 아주 많을 것이다. 그래서 어디에서나 접근 가능한 누리방과 페이스북을 통하여 “여기 우리 동네에 마당극 제일 잘하는 큰들이 있다.”고 소문내는 것이다.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내가 쓴 글을 보고, 사진 잘 찍는 어떤 작가가 찾아와서 사진을 찍어 더 넓은 세상에 퍼뜨려 주거나, 어느 방송국 피디가 와서 보고는 아예 전국 방송에 소개해 주거나, 해외에서 단체 관광객이 찾아오거나 하는 일이 없으란 법이 없겠다. 놀라지 마시라. 나는 이제야 이러고 있지만 이미 큰들은 일본, 독일, 오스트리아 등 국제무대에 선 적이 여러 번이고 전국 방송에도 수차례 등장했으며 지역 언론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소개되었다. 방송출연과 언론 인터뷰 때문에 다음 공연 연습할 시간이 모자랄까 걱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아직 목이 마르다. 내 맘대로다.
넷째, ‘마당극’이라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공연형식을 더욱 발전시켜 주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어서이다. 이것은 ‘응원하기 위해서’라고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지만 따로 좀 길게 이야기해 본다. 마당극이라는 공연형식이 만들어진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대략 1960~70년대로 보는 게 정설인 듯하다. 사전에서는 ‘1970년대에 형성된 한국의 진보적 연극운동의 주도적 양식이다. ‘마당’과 ‘극’의 합성어로 이루어진 이 용어가 처음 쓰인 것은 1978년 서울대학교 연극반의 <허생전> 공연이었다.’라고 돼 있다.
‘전통마당극’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마당극’이라는 형식이 ‘전통’이라고 이름 붙일 만큼 오래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마당극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요소에 전통적인 것이 많이 들어가 있다는 말이다. 굿, 판소리, 풍물을 비롯해 버나놀이, 탈춤놀이 같은 전통놀이가 많이 배치돼 있기 때문이다. 전설이나 신화적 요소도 가미된다. 어쨌든 연극하고도 다르고 뮤지컬하고도 다른 마당극은 우리나라에서 탄생한 독특한 공연형식이다.
마당극은 1970~80년대에 대학가와 노동현장에서 많이 공연되었다. 전국에서 전문 극단도 제법 있었고 전문 극단은 아니더라도 대학생들이나 노동자들이 임시로 극단을 만들어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을 마당에 펼쳐놓기도 했다. 한때 문화방송에서는 ‘엠비시 마당놀이’를 제작하여 전국을 돌며 공연한 적 있다. 대학가나 노동현장에서 공연되는 작품보다 덜 정치적이었으나 현실을 풍자하는 역할은 충분히 했다. 군부독재시절에 국민들의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었다는 말이다. 윤문식은 그때 최고로 이름 날리던 마당극 별이었다.
하지만 2010년대의 마당극은 옛날의 영화(榮華)를 이어가지 못하는 듯하다. 전국에 마당극을 전문으로 하는 극단은 대여섯 정도로 보인다. 극단 ‘우금치’가 전문 마당극을 창작, 공연한다고 한다. 개그맨이자 영화감독인 심형래가 최근 마당극 <뺑파게이트>를 만들었다는 소식이 있다. 그 외 여럿 검색되기는 한데 예전의 전성기만큼은 아닌 듯하다. 그래서 큰들에 더욱 애착이 가는 것이다. 더욱 잘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마당극이라는 형식을 더욱 발전시켜 주면 좋겠고 그 속에 담기는 여러 가지 전통적인 요소들도 덩달아 발전시켜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다. 그러한 바람을 담고 있다.
다섯째, 극단 큰들에 대하여, 또는 마당극에 대하여, 또는 극단 큰들이 공연하는 작품들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좀 진지하게 글을 쓰는 날을 기다리며 미리미리 자료를 축적하기 위해서이다. 그런 날이 올지 말지 모르겠다. 크게 기대하진 않지만 세상 일은 모르는 법이니까. 지금 마당극을 열심히 보러 다니면서 그때 그때 기록해 두지 않으면 뜨거운 태양 아래 아침이슬이 걷히듯 소중한 기억들이 사라져 버리게 되고 그건 너무 아쉽고 안타까울 것 같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처음부터 한 건 아니다. 마당극을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 책을 좀 읽으려고 검색했더니 1980년대 말에 나온 책 말고는 1990년대에도, 2000년대에도, 2010년대에도 마당극에 대한 책은 없었다. 1990년대, 2000년대를 지나오면서 극단들이 사라져 가고 그에 따라 마당극이라는 것 자체가 많이 줄어들었고 그에 따라 마당극을 본격적ㆍ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도 없어진 게 아닌가 싶다. 학자들이 연구를 해야 할 만큼 뚜렷한 문화적 현상으로 드러나는 것도 아니고 극단이 많거나 작품이 많거나 한 것도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아쉬운 일이다. 그런 동안 영화와 정통 연극, 아이돌 그룹 대중가요 들이 대중문화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잡았다.
그래서 전문적 지식도 없고 식견도 없는 나이지만 우선 보이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느낀 대로 알뜰하게 적어놓아 보자 하는 심산이다. 기억력이 미치고 환장할 만큼 뚝 떨어지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열심히 적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적자생존! 혹은 누군가 뛰어난 필력으로 큰들에 대해 글을 쓰고자 할 때 여기에 쟁여놓은 자질구레하고 쓰잘데없는 글들이 0.001%라도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헛된 망상도 있는 듯하다.
여섯째, 몇몇 사람이 언젠가 다짐하고 약속한 것을 언젠가는 꼭 실천하겠노라고 또 다짐하기 위해서이다. 큰들의 존재를 알고 지낸 건 30년 넘는다. 초창기부터 알았다. 큰들 전 대표도 알고 송병갑 같은 ‘원로’ 배우나 진은주 같은 ‘원로’ 단원들도 제법 안다. 아주 친하지는 않지만 알고 지내던 사이다. 지난해였던가. 동네 양반 몇이 모여 한잔하다가 큰들 이야기가 나왔다. 전민규 전 대표도 있었던가 없었던가. 같이 마신 다음 자리였던가. 아무튼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우리 계를 모아서라도 큰들 식구 싹 모셔서 밥 한 그릇 사면 어떨까?”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니까 그 자리에 모인 사람 모두 알게 모르게 큰들을 사랑하고 성원하고 지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론 없이 끝나고 말았던 그날의 대화는 나에게 깊이 각인되었다. 그동안 너무 소원했던 것이다.
큰들과 관련되는 기억이 아주 많다. ‘진주 우리말 우리글 살리는 모임’을 할 때 봉곡동 법화한의원 2층 사무실을 같이 썼다. 큰들은 상근하는 분이 많았지만 우리말 모임은 한달에 한두 번 모여 회의하고 공부하는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우리말 모임의 자질구레한 자료와 책들을 큰들 사무실 구석에 쌓아놓고 지냈다. 나중에 큰들이 이사할 때 우리는 우리 책도 건사하지 못했다. 책 갖고 가라는 기별을 받은 듯한데 어쩐 일인지 어떻게 처리됐는지 모르겠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빚을 진 것이다.
우주호라는 기상천외한 모임에서 가수 박창근 초청공연을 한 게 2016년 11월말이었다. 큰들 단원 몇 분이 와서 공연을 다 보고 뒤풀이 끝까지 자리를 지켜 주었다. 무슨 행사를 주관해 본 사람은 안다. 끝까지 남아서 함께해 주는 사람의 고마움을. 그날 저녁 우주호 모임에 왔던 대여섯 분이 큰들 후원회원으로 가입했다. 큰들도 ‘횡재’(?)를 한 셈이다. 나는 그순간 ‘아, 그동안 소홀했던 큰들에 대한 애정을 어떻게든 좀 드러내 보자’라고 다짐했다. ‘밥 한번 살까’ 하는 이야기는 그 뒤에 나온 것이다. 그러고서도 제법 시간이 지난 올해 5월부터 본격적으로 큰들과 인연을 만들기 시작했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는 말은 이럴 때 씀 직할까.
이런 사연과 사정이 있으니 내가 쓰는 큰들 관련 글은 지극히 편향적일 수밖에 없다. 잘한 점, 좋은 점, 강점, 장점, 기발한 점, 훌륭한 점, 자랑하고 싶은 점, 멋진 점, 대단한 점, 기기묘묘한 점, 굉장한 점 들밖에 없다. 잘못한다거나 문제가 있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처음부터 할 생각이 없었다. 나는 평론가도 아니고 학자도 아니고 심판도 아니다. 나는 자랑스러운 큰들의 응원단이다. 큰들의 자랑스러운 후원회원이다. 큰들 왕팬이다. 그래서 내 글을 비판하는 사람이 나타나도 어쩔 수 없다. 나는 다양하고도 분명한 목적을 갖고 글을 쓰니까. 하지만 언젠가는 문제점에 대해서도 쓸 날이 올지 모르겠다. 정말 마당극을 보는 눈이 제대로 뜨였을 때쯤 조언을 빙자한 비판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 날이 오긴 올까 싶다만, 아무튼 그렇게 생각한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마당을 따라다닐지도 사실은 알 수 없다. 운이 좋았다. 최근 석달 남짓 기간 동안은 용케 주말마다 시간을 낼 수 있었다. 9월에도, 10월에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 볼 참이다. 마당극 공연장으로 데리고(모시고) 가고 싶은 벗들이 아직 아주 많으니까. 발길이 뜸해지거나 아예 종적을 감추거나 하는 날이 오더라도 오해 마시라. 세상사 뜻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할 필요가 없는 노릇인 것을.
봄이 다 가고 여름도 이제 다 간다. 덥다 덥다 해도 동의보감촌에는 가을 잠자리가 제법 보였다. 동의보감촌에서 열리는 마당극은 8월 19일 일요일 끝난다. 여름 공연은 저녁 7시에 열리는데 마지막 공연은 오전 11시에 한단다. 좀 덥지 않을까 싶다. 저녁 공연은 배우나 관객 모두 시원해서 좋았는데 사진을 찍기 어렵다는 점이 좀 걸렸다. 나는 플래시를 마구 터뜨리는 몰지각한 관객은 아니므로. 그래서 마지막 공연 때는 더욱 신경 써서 사진을 찍어볼까 생각 중이다. 참, 산청에서는 9월말에서 10월초 사이에 열리는 산청한방약초축제 기간에도 <효자전>을 상설 공연할 것이란다. 장소는 고속도로 산청나들목 나오자마자 보이는 엑스포 행사장이다. 자세한 일정 나오면 또 퍼뜨려 보리라.
광복절인 8월 15일 오전 11시에는 평사리 최참판댁 안채에서 <최참판댁 경사 났네>를 공연한다. 이번에는 안채 마당이다. 당초에는 9월 8일 다시 상설공연을 시작하는 것으로 알았는데 광복절 특집으로 한 판 더 벌이는가 보다. 내용에 일제강점기, 광복군, 만세운동 같은 게 들어가 있어서 광복절을 맞이하여 최참판댁에 놀러오는 사람들에게 작품을 선사하는가 보다. 고마운 일이다. 덥더라도 힘내시길 바란다.
그동안 큰들 마당극을 보고 쓴 글은 열 꼭지이다. <오작교 아리랑>에 대해 네 꼭지, <효자전>에 대해 세 꼭지, <최참판댁 경사 났네>에 대해 두 꼭지, 이번 글처럼 그냥 일반적인 내용 한 꼭지이다.
○ 큰들 33주년 정기공연 <오작교 아리랑>을 보고(2017. 6. 25.)
http://blog.daum.net/yiwoogi/13417549
○ 우리 시대 ‘효’에 대하여-큰들 마당극 <효자전>을 보고 (2018. 5. 19.)
http://blog.daum.net/yiwoogi/13417666
○ 마당극을 구성하는 필수 요소들-극단 큰들의 마당극 <최참판댁 경사 났네>를 보고 (2018. 5. 27.)
http://blog.daum.net/yiwoogi/13417668
○ “우리는 만나야 한다”-극단 큰들의 마당극 <오작교 아리랑>을 보고 (2018. 6. 1.)
http://blog.daum.net/yiwoogi/13417669
○ “이치니산시, 이치니산시”-마당극 <최참판댁 경사 났네>를 보고 (2018. 6. 10.)
http://blog.daum.net/yiwoogi/13417671
○ 마당극 <효자전>에 드러난 어머니의 마음 (2018. 6. 17.)
http://blog.daum.net/yiwoogi/13417672
○ 큰들 마당극을 자꾸 보러 가는 까닭 (2018. 7. 7.)
http://blog.daum.net/yiwoogi/13417673
○ 114명의 남돌이에게 경의의 손뼉을-<오작교 아리랑> 사천 공연을 보고 (2018. 7. 15.)
http://blog.daum.net/yiwoogi/13417674
○ 큰들 마당극 <효자전> 200회 공연을 보고 (2018. 7. 22.)
http://blog.daum.net/yiwoogi/13417677
○ 남과 북을 잇는 ‘아리랑’과 ‘버나놀이’ (2018. 7. 29.)
http://blog.daum.net/yiwoogi/13417678
2018. 8. 4.
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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