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는 나에게 묻는다. “같은 마당극을 그렇게 여러 번 보러 가는 이유가 있느냐?”라고 묻는 이도 있고 “본 걸 또 보면 재미있느냐?”라고 묻는 이도 있다. 나는 대답한다. “석갑산은 갈 때마다 다르더라.” 그러면 다시 묻는다 “에이, 그건 다르지요. 계절마다 다르게 보일 게 뻔하잖아요.” 다시 대답한다. “큰들 마당극도 갈 때마다 다르다. 만약 그게 영화였다면 한두 번 보고 나면 시시해질 것이다. 마당극은 배우들이 직접 실연을 하기 때문에 할 때마다 다르다. 날씨 때문에 다를 수도 있고 그냥 그날 기분 때문에 다를 수도 있고 어떤 때는 관객들의 반응 때문에 달라지기도 한다. 그런 차이를 느끼고 관찰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연극도 배우가 실연을 하긴 하지만 관객과 호흡하며 웃고 울리는 데는 그래도 마당극이지 않느냐?” 길게 대답하면 대부분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한마디 덧붙인다. “몇몇 배우는 여러 배역을 맡는데 그런 걸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고 관객 가운데 어떤 이는 엉겁결에 불려나갔는데도 자기에게 맡겨진 역할을 성의껏 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찰지다.” 이쯤 되면 몇몇 사람은 고개를 흔든다. “말은 맞다. 극단 큰들 마당극 재미있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렇지만 너는 좀 병인 것 같다.” 나는 빙그레 웃는다.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못 들어 하노라’라는 이조년의 시조 한 구절을 되돌려준다.
태풍과 장마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드디어 7월 7일 토요일이 되었다. 오스트리아 그라츠로 날아가 국위선양하고 돌아온 극단 큰들이 7월 4일 밀양 <오작교 아리랑>, 7월 6일 진주 <최참판댁 경사 났네> 공연에 이어 드디어 산청 동의보감촌에서 <오작교 아리랑>을 공연하는 날이다. 6월말부터 7월초 사이에 굵은 비가 하도 많이 오던 것이어서 조마조마한 마음이 없지 않아, 천지신명, 아니지 지리산 마고할미에게 좀 빌었다. 제발 공연할 동안만이라도 좋은 날씨를 선사해 달라고 말이다. 마고할미가 내 소원을 들었을 리 만무지만, 어쨌든 이날 날씨는 여름 날씨치고는, 더구나 태풍과 장마가 오락가락하는 와중인데도 아주 좋았다.
오뚜기 메밀 비빔면으로 점심을 대충 때운 뒤 산청으로 달려갔다. 설레고 들떠서 운전이 잘 안 되었다. 지리산 쪽 하늘엔 검은 구름이 뒤덮여 있긴 했지만 비가 올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적잖이 다행스러웠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것보다 훨씬 좋겠다 여기며, 마고할미에게 잠시 감사드렸다.(<효자전> 할 때 산삼할매가 나오면 큰절이라도 해야겠다.) 산청 동의보감촌 잔디마당엔 몇 번째 간 것인지 이제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직 열 번도 되지 않았을 터이니 엄살을 부릴 정도는 아니다. 올해 큰들이 공연하는 마당극 3종 꾸러미(세트), 곧 <오작교 아리랑>, <효자전>, <최참판댁 경사 났네>를 각 편마다 열 번 이상은 보겠노라 다짐해 둔 것이어서 아직은 한참 남았다.
늘 무대 가운데 자리를 잡았다. 전체 배우들의 움직임을 한눈에 볼 수도 있고 사진 찍기에도 좋은 위치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무대 왼쪽 끄트머리에 앉았다. 객석 한가운데서 정면으로 배우들의 연기를 관람하는 ‘관객들의 표정’을 보고 싶어서이다. 극이 시작되고 배우들이 마당에서 춤 추고 노래하고 연기한다. 관객들은 웃고 손뼉친다. 맨 앞줄에 나란히 앉은 꼬맹이들도 뭐가 뭔지 알아보는 눈치다. 뒷줄에 앉은 어른들은 시종일관 극의 흐름에 집중한다. 웃으라고 연기할 땐 웃고 손뼉치라고 할 땐 망설임 없이 손뼉을 쳐댄다.
자로 재듯 계산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대체로 웃음보가 터진 대목을 생각해 본다. 하늘나라 견우와 직녀는 이미 만났다면서, 하늘나라 게시판에 올린 청원 댓글이 20만 개를 넘었기 때문에 도로공사에서 다리를 놓아 주었다고 너스레를 떠는 대목에서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남돌이와 꽃분이를 만나게 하기 위해 오작교를 놓았는데 꽃분이가 오골계 등에 타려고 할 때 웃었다. 오골계가 죽는 소리를 하고 안 되겠다며 “들어야겠다”고 할 땐 그게 뭔 소리인가 하던 관객들이 양쪽에서 남돌이와 꽃분이의 겨드랑이를 받쳐 들었을 때 약간의 함성과 함께 웃었다. 함진애비가 등장하고 꽃분이 어머니와 실랑이를 할 때 웃음이 커졌다. 대체로 나잇살 제법 든 사람들이었다. 꼬맹이들은 다들 웃으니까 웃을 뿐, 저게 무엇하는 장면인지 잘 모르는 표정이었다. 커다란 물고기 한 마리를 순식간에 먹음직한 회로 만들어 놓는 장면에서는 동시에 “와~!”하는 함성을 터뜨렸다.
남돌이 부모가 등장할 때 웃음보를 터뜨린 관객들이 미처 정신을 수습하기 전에 꽃분이 부모를 보게 되었다. 박장대소가 터졌다. 꽃분이 어머니가 궁시렁거리는 소리를 들은 몇몇 사람은 얼굴이 벌게지도록 웃었다. 궁시렁거리는 소리여서 내용이 무엇인지 잘 알아듣기 힘들었을 텐데도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준 관객이 여럿이었다. 꽃분이 어머니가 땅재주를 넘자 손뼉소리가 우레처럼 쏟아졌다. 꼬부랑 할머니가 ‘텀블링’이라니. 배우들이 관객을 웃기려고 한 대목에선 어김없이 웃음이 터졌고 손뼉을 유도한 데서는 약속처럼 손뼉소리가 퍼졌다. 남돌이 어머니의 찢어지는 듯한 소리(관객들 가운데 제법 많은 사람은 그 배우가 남자인 줄 모를 것이다. 나는 지난해 처음 이 극을 볼 땐 정말 몰랐다. 나중에 배우들과 사진 찍을 때 그가 남자라는 것을 알고 소름이 돋았다. 진짜다.)에 뜻밖에 즐거워하는 사람이 많았다. 남돌이 아버지를 향해 이러쿵 저러쿵 바가지를 긁을 때도 호응하는 아주머니들이 많았다. 담뱃값 올린다고 담배를 끊느냐고 소리지를 땐 남자 관객들도 동의의 웃음을 날렸다. "하모, 맞다!"라는 맞장구를 자주 듣게 된다. 우리네 일반 사람들의 정서를 교묘하게 건드리는 오묘함이 곳곳에 숨어 있다.
그래도 역시 가장 큰 웃음을 준 부분은 ‘관객 배우 남돌이’의 등장이었다. 거의 매번 그렇다. 사전에 그 어떠한 약속도 없이 극중에 갑자기 관객을 불러낸다. 그것도 남돌이와 꽃분이의 혼인 장면에서 말이다. 얼떨결에 불려나온 남자 관객은 남돌이가 된다. 신랑 신부 맞절을 할 때까진 그런가 보다 하며 좀 진지해진다. 관객 배우에게 혼인이 처음이냐 묻는 대목에선 어떤 이는 망설이고 어떤 이는 아니라고 말하고 어떤 이는 객석에 그대로 앉아 있는 아내의 눈치를 보고 어떤 이는 당차게 처음이라고 소리친다. 그래서 우리는 웃는 것이다. 그 웃음 대목에서 정신이 혼미한데 뒤이어 댕기풀이를 하느라 신랑을 뉘어놓고 샅바로 발을 묶어 들어올린다. 신부가 노래를 하지 않으면 신랑의 발바닥을 마른명태로 두들겨 팰 기세다. 드러누운 관객 배우야 어쩌거나 말거나 객석에 앉은 관객들은 그야말로 요절복통 자지러진다. 그 웃음소리 덕분에 용기를 낸 관객 배우는 “아이고, 신랑 죽네~!”라는 엄살을 더 잘 부리게 된다. 그런 경험을 했음 직한 나이의 관객들에겐 효과 만점이다. 눈물을 찔끔거리며 웃는 이도 있다. 신부가 노래를 할 듯 말 듯 할 땐 마치 자기 일이기라도 한 듯 애를 태운다. 배우와 관객의 밀당이 청춘남녀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신랑 부모와 신부 부모가 감정대립으로 끝내 혼인을 무효로 하고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꽃분이가 홀로 나와 <아리랑>을 부른다. 사람들은 긴장을 풀면서 마음에 따뜻한 바람을 불어넣는다. 우리 겨레라면 피해갈 수 없는 ‘아리랑 마법’에 걸려든 것이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도 따라 부르는 이가 있다. 우리 겨레 공동의 기억, 우리 겨레 공동의 추억, 우리 겨레 공동의 염원이 아리랑 가락에 실려 넘실거린다. 두 집안 부모들이 마음의 무장을 풀어버린다. 거기에 버나놀이가 다시 등장한다. 우리 겨레 전통 놀이 버나를 주고 받으며 화해하고 이해하는 장면은 이 마당극에서 갈등을 해소하는 장치이다. 관객들은 이미 앞 부분에서 버나놀이를 다채롭게 체험했기 때문에 매우 자연스럽게 감정 이입을 하게 되고 자기도 모르게 동화되어 버린다. 간간이 손뼉 소리가 나오고 한숨도 나오는 대목이다.
남북정상회담을 패러디한 대사에 대한 반응을 좀 엇갈렸다. 아주 어린 아이들이거나 제법 나이 든 분들은 반응이 미적지근했다. 30~50대에 들었음 직한 관객들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면서 호응했다. “이렇게 멀리서…, 멀다고 하면 안되갔구나야!”라는 대사라든지 “나는 언제 북쪽땅을 한번 밟아볼까”, “그러지 말고 지금이라도 가면 되지않갔어!”라는 대사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오작교 아리랑>이라는 마당극이 우리나라의 분단 문제를 건드리는 것이니까. 그런 것을 알고 보는 사람도, 그런 줄 모르고 보는 사람도 이 대목쯤에서는 ‘아!’라는 탄식을 내뱉을 만하다. 민방위교육장 같은 데 정신 멀쩡한 젊은이 수백 명 앉혀 놓고 온갖 욕과 비디오와 자료를 들이대며 반공교육을 하는 데에 익숙하던 사람들도 이 대목에선 ‘그럼, 그럼. 서로 자주 만나고 만나다 보면 이해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통일도 안 되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손뼉 치는 속도와 그 소리의 높이를 헤아려 보면 그렇게 짐작할 수 있다. 어렵고 복잡한 남북 사이의 문제, 통일이라는 해묵은 과제를 이렇게 쉽게 풀어서 보여줄 수도 있겠구나 여길 것이다.
중간중간에 나오는 노랫가락에서는 손뼉소리가 우렁찼다. 신랑 친척들과 신부 친척들 간의 버나 이어달리기 대회에서도 관객들의 호응은 아주 높았다. 순간적으로 ‘나도 마당극의 한 부분을 감당했구나’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남돌이 친척이 한번 이기고 꽃분이 가족이 한번 이기자 “삼세번! 삼세번!”을 연호하는 관객이 나타났다. 어쩌면 관객의 요청으로 극의 흐름이 바뀌는 날도 오지 않을까. 큰들의 여러 마당극을 보다 보면, 관객들을 극 안으로 끌고 들어오는 장면이 많은데, 어색함이랄까 억지랄까 그런 게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냥 자연스럽게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흘러가고 부는 바람에 구름 흩어지듯이 분위기가 연결된다.
가까이 앉은 한 아주머니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신이 났다. 배우들과 이야기를 주고 받기도 하고(배우 대사에 호응하는 것에 아주 맛을 들였다) 자기들끼리 큰소리로 웃음을 나누면서 즐거움을 만끽했다. 힐끔힐끔 돌아보니 곗돈 탄 날보다 더 신나 보였다. 입을 다물 줄 모르면서 마당극의 재미와 즐거움을 혼자 독차지한 듯했다. 극을 마칠 즈음 무슨 급한 일이 있는지 먼저 일어서는 다른 아주머니 한 분은 “아, 잘한다~”라고 한소리 해주고 갔다. 큰들을 후원하는 내가 보고 듣기에, 이보다 더 값지고 찰지고 흐벅지고 맛난 반응은 없지 않을까 싶다. 아무것도 아닌 내가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고 감동이 일었다. 솔직히 가슴이 찡해지는 느낌이 있었다.
마당극 보랴, 관객들 분위기 살피랴, 사진 찍으랴, 정신 없는 한 시간이었다. 관객들은 때로는 느긋하고 때로는 긴장하며 한 시간을 즐겼다. 그들의 변화무쌍한 표정을 살피는 나는 그들보다 더 즐거웠다. 눈으로 즐겁고 귀로 흥겨웠다. 사람이 웃는 모습을 보면 따라 웃게 되고 사람이 웃는 소리를 들으면 뇌속에 긍정과 희망의 에너지가 솟는다. 손바닥이 맞부딪는 소리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따라하게 되고 그 모습을 보노라면 아무런 까닭도 없이 즐거워진다. 까닭이 없는 건 아니갔구나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같은 마당극을 그렇게 여러 번 보러 가는 이유가 있느냐?”라는 물음에 대답해 본다. 한 시간 동안 그렇게 펑퍼짐하게 긴장끈 풀어놓고 웃고 손뼉치고 또 웃고 손뼉치고 할 만한 데가 어디 있겠나. 웃는 사람 보면서 웃고 웃는 소리 들으면서 웃고, 손뼉 소리 들으면서 손뼉 치고 손뼉 모습 보면서 또 따라 치는 일을 한 시간 동안 그렇게 재미있고 신나게 할 수 있을 데가 또 어디 있겠나. 한두 명도 아니 열 명도 아니고, 이백, 삼백 명 되는 사람이 모여 앉아서 아무 생각없이 즐기다 보니 ‘아, 통일은 뜻밖에 가까이 있고 쉬운 것이로구나!’ 하는 깨달음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곳. 큰들 마당극 보러 가는 까닭을 찾아서 정리해 보면 책 한 권도 쓰갔구나야~!
끝나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진주로 와야 했다. 오후 5시 30분에 자율학습 마치는 고3 아들을 태우러 가겠노라 약속했기 때문이다. 녀석의 생일 앞날 저녁 어디 근사한 데 가서 맛있는 걸 사주리다 다짐해 둔 터였다. 동의보감촌에서 진주 대아고는 30분 만에 오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배우들과 사진도 찍고, 사진 찍는 모습도 찍어야 했는데 그러하지 못했다. 후원회원 가입하느라 줄 서는 사람도 찍고, 돌아가면서 두런두런 도란도란 극에 대해 이야기하는 관객들의 감상평 소리도 들어야 했는데 그럴 겨를이 없었다. 전화가 왔다. 등록돼 있지 않은 번호여서 받지 않으려다가 받았다. 큰들 서지은 사무국장이다. 주차장으로 쫓아와 뭘 쥐어준다. 웃으며 고맙게 받았지만 심하게 부끄럽다. 명색 후원회원이란 놈이 거꾸로 후원을 받다니.
2018. 7. 7.
시윤
(나도 이렇게 찍힐 때가 있다. 참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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