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1일 토요일엔 정신 없이 바빴다. 경상대에서 열리는 제8회 대학진학박람회에서 내가 맡은 역할이 만만치 않아서이다. 폭염주의보 속에 열린 이날 행사에 경남 도내 중고등학교에서 대략 2만여 명의 학생, 학부모, 교사들이 참여했다. 온 캠퍼스에 관광버스들이 장사진을 이루었다. 아홉 시부터 총장님과 교육감님, 시장님 들의 공식 일정을 졸졸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땀이 흘렀고 배가 고팠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행사는 22일 일요일까지 이틀간 진행됐다.
그러는 와중에도 오후 2시쯤에는 카메라를 접어넣고 길을 나서야 한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친구이자 큰들 후원회원인 이제괄 과장과 함께 산청으로 가서 <효자전> 200회 공연을 관람할 설렘에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었다. 부산 고신대에서 오신 과장님, 직원 선생님과 함께 사천 청하면옥에서 시원한 냉면 한 그릇 비웠더니 제법 든든하고 시원해졌다. 이제 산청으로 갈 시간이다.
가는 차 안에서 둘은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두런거렸다. 세상 사는 일이 만만치 않음을 이야기하고 우리 직장의 이러저러한 일화를 나누고 오늘 보게 될 공연에 대해 맛보기를 했다. 2016년 11월 30일 가수 박창근 초청공연이 열리던 날 뒤풀이 장소에서 동시에 큰들 후원회원이 된 이후로 나는 특히 올해들어 여러 차례 마당극을 보러 다녔지만 이 친구는 처음이다. 처음이어서 더 설레는 듯했다. 이제서야 함께 가자고 한 내 무심함을 이해해 줄는지.
이번 <효자전> 공연이 유독 눈에 띄고 기대되는 것은 200회 공연이라는 점 때문이다. 200회라고 연기를 더 잘하는 것도 아니고(뭐, 지금보다 더 잘하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다. 더 이상 올라갈 데가 없으니), 관객을 대상으로 이벤트를 연다고 하지만 우리가 그 이벤트의 주인공이 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렇지만 하나의 작품을, 문화예술 풍토가 너그럽지 못한시골에서 200회 끌고 간다는 건 신기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한 일이다. 대단한 역사의 한 장면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하는 것의 설렘!(현재 절찬리 공연 중인 <최참판댁 경사 났네>는 146회, <오작교 아리랑>은 114회 공연했다. 대단하지 않은가!)
가는 동안 문자가 두 개 왔다. 하나는 이날 공연 때 부모님 모시고 가기로 한 또다른 후원회원인 이정희 선생님이 너무 더워서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다음으로 미뤘다는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역시 또다른 후원회원인 강경향 선생님마저 학교에서 열리는 행사 때문에 동행하기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너덧 명이 함께 공연 보고 돌아와 진주에서 뒤풀이하려던 게 조금 어긋났다. 이정희 선생님은 혹시 공연 마치고 돌아와 막걸리 생각나면 연락하라는 귀띔을 해준 터라 기대감을 갖게 했다.
가는 길에 친구와 나는 “이렇게 더운 날 공연하느라 고생이 많겠다” 하는 말과 “그래서 관객이 생각보다 적게 오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나누었다. 걱정한다고 달라질 게 없으면 걱정할 필요가 없는데도, 괜히 나의 일인 것처럼(나의 일이 아닌 것도 아니지) 걱정되었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이런저런 큰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3시 10분쯤 공연장인 동의보감촌 잔디마당에 도착했다. 쨍쨍 내리쬐는 햇살 때문에 공연장 마당이 후끈 달아올라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검은 천으로 지붕을 만들어 햇볕을 막아놨다. 주변 잔디밭엔 물을 뿌리고 있었다. 배우와 관객 모두 조금이라도 시원하게 공연을 함께할 수 있도록 (듣자 하니 몇백만 원 들였다고 하던데) 배려한 것이다. 낯익은 전민규 예술감독님, 진은주 기획실장님, 서지은 사무국장님 들과 인사를 나누고 의자에 앉으니 바람마저 불어주는 게 아닌가. 무더위 때문에 생길 수 있는 불편함은 많이 누그러지게 생겼다. 퍽 다행이었다. 큰들의 축복이었다, 라고 생각한다.
오스트리아를 비롯해 유럽을 주유(周遊)하고 돌아오신 전민규 예술감독님으로부터 뜻하지 않은 선물까지 받은 나는 ‘내가 이런 과분한 선물을 받아도 되나?’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거의 주말마다 나의 나들이를 즐겁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기쁘기 한량없는데 말이다. 아무튼 이규희 대표, 송병갑 감독, 박춘우 무대감독을 비롯해 많은 큰들 식구들과 눈인사, 손인사를 나누었다. 몇 달 사이에 무척 ‘가까워진 듯한’ 분들이다. 큰들은 더위 속에서도 잊지 않고 달려와 공연을 함께해 줄 관객들을 위하여 시원한 얼음물을 준비했다. 부채도 나누어 주었다.
큰들 팬들 가운데 어떤 분은 200회 공연을 축하하는 펼침막을 준비해 왔다. 나는 잘 모르는 분들인데 오래전부터 굉장한 관심과 사랑을 큰들에 쏟아부어 주는 분들 같았다. 든든하고 믿음직한 후원회원들이었다. 200회 공연이어서 마련한 관객 이벤트는 ‘산삼을 찾아라’였다. 관객들이 모여들기 전에 큰들은 객석 여기저기에 산삼 모형을 심어놓았는데 그것을 찾아 “심봤다!”를 외치면 준비한 선물을 준다는 것이었다. 나는 심을 보지 못했다. 선물은 산청군청에서 지원했다 한다. 전민규 예술감독님이 인사말을 하시고 때맞춰 도착한 이재근 산청군수님이 인사말을 하셨다. 큰들의 예술적 기량을 일찌감치 알아보신 이재근 군수님의 혜안과 성원에 감사드린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됐다. 극의 내용은 이미 여러 번 이야기했으므로 길게 이야기하지 않으련다.(혹시 궁금한 분은 ‘우리 시대 ‘효’에 대하여’(http://blog.daum.net/yiwoogi/13417666)와 ‘마당극 <효자전>에 드러난 어머니의 마음’(http://blog.daum.net/yiwoogi/13417672)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오늘은 꼭 한 가지만 풀어놓고 싶다.
둘째아들 갑동이 어머니를 위해 지리산으로 산삼을 구하러 간다. 산신령들이 효자인 갑동에게 산삼을 주기 위해 시험을 한다. 산삼을 관장하는 할매 산신령이 갑동 앞에 나타나 갑자기 쓰러진다. 갑동이 어떻게 하는지 보기 위해서다. 갑동과 함께 지리산에 올라갔던 임뻥아재는 “지금 산삼 구하러 가는 게 더 중요하니 쓰러진 할머니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재촉한다. 그러나 갑동은 자꾸 돌아본다. 나이 드신 할머니가 쓰러졌는데 못 본 척 그냥 두고 갈 수 없었던 것이다.
산신령들은 곰을 등장시켜 갑동을 시험한다. 반달가슴곰이 할머니를 해코지하려고 하자 갑동이 달려가 머리로 받아버린다. 곰은 나자빠지고 할머니는 갑동의 등에 업혀 무사히 탈출한다. 자그마한 덩치의 할머니를 업은 갑동은 이상하게 무겁다고 여긴다. 지리산을 업은 것이니 무거울 수밖에. 할머니를 업고 천왕봉을 올라간다. 올라가서 보니 등에 업힌 건 할머니가 아니라 산삼이다. 갑동의 효성에 감동한 지리산 산신령들이 커다란 산삼을 안겨준 것이다.
<효자전>을 여러 번 보았는데 이날 공연에서는 이 장면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효도란 무엇인가. 흔히 자기를 낳아준 부모님께 정성을 다하는 것으로만 생각하기 쉽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차적이고 단편적인 해석이다. 나의 부모님이 소중하면 그만큼 이웃의 부모님도 소중한 것이다. 내가 내 부모님을 잘 모시듯 이웃의 부모님도 잘 모셔야만 이웃들도 내 부모님을 공경할 줄 알게 되는 것이다. 내 부모만 소중하다고 하여 이웃의 부모, 우리 사회의 수많은 어르신들을 공경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되겠는가. 내 부모님만 잘 모시면 끝이라는 생각이나 사상이 널리 퍼져나가면 우리의 자식들에게 우리가 효도라는 것의 가치를 어떻게 설명해 줄 수 있겠는가.
갑동이는 자기 어머니의 병환을 낫게 하기 위해 산삼을 구하러 갔지만, 그리하여 지리산 깊은 산골을 헤매고 다니지만, 위기에 처한 낯 모르는 할머니를 마치 자기 어머니 모시듯이 업고 내려오지 않았는가. 바로 이것이다. 산신령들은 갑동이가 그의 어머니를 향한 정성뿐만 아니라 이웃의 어른들도 함께 공경하는 성정을 가진 사람인지를 시험한 것이다. 과연 갑동은 산신령이 기대한 대로 사회의 모든 어른을 공경할 줄 아는 효자였다. 이 대목에 내 마음의 눈이 오랫동안 머물렀고 눈물을 흘리게 했다.
마당극 <효자전>을 보는 사람들이, 간혹 자신의 부모님을 모시고 오고, 간혹 자신의 자녀들을 데리고 오는 많은 관객들이 이 점을 좀더 눈여겨보아 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웃어른을 공경할 줄 아는 사람, 모든 어른들을 잘 모셔야겠다고 생각하는 태도, 이런 것이 우리 사회에 널리널리 퍼져나갔으면 좋겠다. 물론 나잇값 못하는 일부 어른들은 공경받을 가치가 없겠지. 그건 다른 문제이고.
공연을 보는 동안 눈물을 몇 번 훔쳤다. 어쩔 수 없다. 2012년 9월에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도 사람의 키 두 배나 되는 검은 옷 저승사자 뒤를 그렇게 따라갔을까 싶은 생각이 자꾸 일어나는 걸 막을 수 없다. 저승의 문턱에서도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자식들의 건강과 안위를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 속내를 조금이라도 알 듯하여 눈물이 흐른다. 무조건 반응이다. 옆에 앉은 전민규 예술감독님도 손수건을 자꾸 만지작거렸다.
처음 <효자전>을 본 친구는 다음엔 <오작교 아리랑>을 함께 보러 가자고 약속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극의 내용에 대해, 큰들의 존재에 대해, 우리나라 문화예술계에 대해 개똥철학 같은 걸 주고받았다. 이정희 선생에게 전화하여 동동주집으로 향했다. 세상 이야기, 큰들 이야기, 또 큰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술은 취하고 시간은 늦어졌고, 그리하여 집으로 갈 시간이 되었다.
더운 날씨에 공연하는 배우들에게 아주 조금이라도 위안이 될까 싶어 공연장 옆에 있는 편의점에 가서 얼음보숭이를 샀다. 봉지에 담은 채로 그 편의점 냉장고에 넣어 뒀다가 공연이 끝나면 갖다주려고 했다. 그런데 웬걸. 극단에서 200회 공연 기념으로 모든 관객에게 얼음보숭이를 쏘는 것 아닌가. 300개를 준비했다고 했으니 배우들도 하나씩은 먹을 게 아닌가. 그럼 내가 사 놓은 얼음보숭이는 어쩌라고? 그래서 다시 찾아가 내일, 그러니까 일요일 11시 공연 끝나고 12시쯤 큰들 단원이 찾으러 올 테니 잘 좀 전해달라고 당부했다.
갈 때마다 뭐라도 사주고 싶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것은 후원회원 된 자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멋진 공연을 매번 공짜로 보는 자의 자그마한 보답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공연 관람료라고나 할까. 그러나 매번 그러하지는 못한다. 늘 마음뿐이다. 아무튼 201회 공연 잘 마치고 차가운 얼음과자 입에 넣으면서 잠시라도 더위를 식혀 보시기를 빈다.
이번 공연에는 <경남도민일보> 이서후 기자께서 취재를 왔다. 나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반갑고 고마웠다. <경남일보> 후배 기자였다가 지금은 산청군청에 근무하는 곽동민 씨도 만났다. 무척 반가웠다. 페이스북 친구였다가 바깥모임에서도 한번 뵌 적 있는 서동하 님도 만났다. 내가 페이스북에 올려놓은 글을 보고 한번 와 보았다고 한다. 도서출판 화인 최송운 대표도 가족들과 함께 찾아왔다. 페이스북 댓글에 ‘200회 공연 정말 멋지던데요’라고 썼다. 아주 고맙고 반가웠다. 이런 고마움과 반가움이 모이고 쌓여 커다란 산이 되고 강이 될 것이라 믿는다.
동의보감촌 내 한의학박물관에 인형으로 만들어 놓은 전시물에 ‘갑동’이라는 사람 이름이 있었던가 보다. 그것을 실마리로 잡고 ‘갑동, 산삼, 효도’ 이 세 가지 열쇳말을 붙들어 1시간 짜리 작품을 만들어낸 큰들의 예술적 감각과 탁월한 이야기 솜씨, 대단한 상상력에 감탄사 수백만 개 보내준다.
이제 목표는 9월 1일 창원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물론 그 사이 한두 번 더 산청으로 가겠지만...
2018. 7. 22.
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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