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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큰들 마당극 보러 가기

“이치니산시, 이치니산시”-마당극 <최참판댁 경사 났네>를 보고

by 이우기, yiwoogi 2018. 6. 10.

여수 여천고등학교에서 온 학생들은 <최참판댁 경사 났네>를 보고난 뒤 삼삼오오 돌아가면서 이치니산시, 이치니산시를 따라하며 시시덕거리고 논다. 그 대사가 가장 기억에 남았던가 보다. 그 옆의 녀석은 다른 대목이 재미있었던지 뭐라고 조잘대는데 다 알아듣지는 못했다. 극을 볼 때는 사뭇 진지하기만 해서 잘 웃을 줄도 모르던 녀석들이다. 한두 번씩 빵 터지긴 했지만 배우들이 기껏 마련해 놓은 웃음 함정에 제대로 빠지지 못하던 것이었다. 그런데도 막이 내리고 나자 뭔가 허전한 가운데 몇몇 장면과 대사가 그들의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 것이다.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서 상설 공연 중인 극단 큰들의 <최참판댁 경사 났네>를 보고 왔다. 사실은 527일 처음 보고 이번이 두 번째다. 한 번 보면 그만인 것을 왜 두 번이나 보러 갔을까. 그건 나중에 차차 이야기하기로 하고. 잘 아는 바와 같이 <최참판댁 경사 났네>는 박경리의 소설 <토지>를 각색한 것이다. 200자 원고지 4만 장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 400쪽 넘는 책이(그것도 그림이나 삽화도 하나 없이) 16권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이야기를 1시간의 마당극으로 녹여내는 건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극단 큰들은 그것을 아주 잘 해냈다.

 

햇수로 9년째, 횟수로 146번째이던 69일의 공연은 1(평사리가 들썩들썩)2(최참판댁 경사 났네)로 나뉘어 진행됐고 2부는 다시 4마당으로 구성돼 있다(이날만 그런 게 아니라 늘 그렇다). 1부는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용이네 앞마당에서 벌어진다. 풍물을 치며 길놀이를 벌인 뒤 관객과 하나되는 시간을 나눈다.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의 얼개를 보여주며 관객을 꼬드기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뒤에 이어질 장면을 긴장감 있게 예고한 뒤 마당을 최참판댁 앞마당으로 옮긴다. 최서희가 조준구의 장난에 쫓겨나고, 조준구는 큰 사업을 벌이다가 쫄딱 망하고, 서희와 결혼한 길상이 독립운동에 가담하게 되고. 이야기 전개는 전형적이다.

 

 


배우들은 대사나 연기에 물이 오를 대로 올랐다. 146번이나 공연을 하는데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그 당연한 것을 조금 비틀어 버리는 대목이 곳곳에 보인다. 만약 영화 한 편을 146번 본다면 우리는 어떨까. 대부분 미쳐버릴 것이다. 대사와 배우들의 행동 하나하나 모두를 외워버릴지 모른다. 아무리 재미없는 영화도 전체 대사 가운데 한두 마디는 쓸 만한 것이다.  한 편의 연극을 146번쯤 보게 되면 어떻게 될까. 뮤지컬은 어떨까. 영화보다야 낫겠지만 연극이나 뮤지컬도 평범한 관객이 한 편을 에멜무지로 100번 이상 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마당극은 좀 다른 것 같다. 물론, 큰들의 마당극을 처음부터 오늘까지 146번 모두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배우와 스태프들 말고는 한번 보았거나 기껏 서너 번, 많게는 여남은 번 본 관객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도 마당극은 할 때마다 다르다. 왜 그런가. 연극이나 뮤지컬과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146회 공연하면서 당연하고 마땅하게 진행되던 극의 흐름을 비틀어버리는 요소가 곳곳에 엎드려 있다. 바로 관객의 참여와 호응이다. 일반적으로 연극에서는 관객의 참여가 극히 제한돼 있다. 뮤지컬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마당극은 관객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없이는 재미가 없고 어쩌면 극을 진행시키기 어렵다고 할 정도로 관객의 역할이 중요하다.

 

<최참판댁 경사 났네>에서는 1평사리가 들썩들썩에서부터 관객들에게 버나놀이를 시킨다. 사전에 짜고 하는 게 아니다. 느닷없는 참여 요청에 쭈뼛쭈뼛거리던 관객들도 웃음을 머금고 참여하게 된다. 그 뒤에도 관객들은 여러 곳에서 배역을 맡게 된다. 길상과 서희의 결혼식에서 길상이 어쩐 일로 나타나지 않자 관객 한 명이 대신 신랑 노릇을 하게 된다. 가장 결정적인 장면은 관객 한 명 한 명이 태극기를 들고 독립군가를 합창하거나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는 장면, 모든 관객이 손가락 권총을 꺼내들고 일제히 사격을 하는 장면 등은 관객의 참여로 완성되는 마당극의 특징을 가장 절묘하고도 재미있게 보여준다.

 

 


하지만 관객들의 호응도가 늘 한결같은 것만은 아니다. 가령, 길상을 대신하여 결혼식장에 입장한 관객(현장에서는 이 사람을 등등동지라고 부르는데 그 까닭은 직접 가 봐야 안다)에게 결혼은 처음이죠?”라고 묻자 눈치도 없이’ “두 번째인데요.”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관객들은 허리를 젖혀가며 웃지만 마당 안 배우들은 잠시 당혹스러워한다. 재차 물으니 , 처음입니다라고 답하게 되는데 그 몇 초 사이의 혼란스러움 또는 익살스러움이야말로 마당극의 묘미인 것이다. 당연히 결혼은 처음이다라고 말할 줄 알았던 관객 배우가 두 번째인데요라고 말한다고 해서 크게 당황하거나 당혹스러워할 건 아니다. 물이 오를 대로 오른 배우들 아닌가. 그런 일 한두 번 겪었겠는가. 비틀어질 뻔한 장면을 재빨리 수습하고 나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능청스럽게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것 또한 마당극의 재미다.

 

독립군의 비밀 문서가 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방을 관객에게 맡겼다가 되찾아가는 장면에서도 비슷하다. 일반적 관객이라면, 맡기면 갖고 있다가 달라고 하면 두말 없이 주고 말겠건만, 어떤 이는 주기 싫은데요?”라고 대꾸를 하며 빤히 쳐다본다. 빨리 그걸 받아야 다음 대사를 하고 다음 연기를 할 텐데, 불과 2~3초밖에 안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당혹스럽지 않겠는가. 그러나 닳고 닳은 연기 경력을 자랑하는 이들은 순식간에 분위기를 반전시켜 놓고 다음 이야기를 이어간다. 물론 관객들은 포복절도 죽으라 웃어제친다. 그런 돌발 상황이 언제 어느 대목에서 터질지 모르는 게 마당극이다. 그래서 관객들은 늘 웃음보를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영화 한 편을 100번을 본들 이런 아슬아슬함과 박장대소할 장면을 예상치 못한 데서 만날 수 있겠는가. 연극도 뮤지컬도 극본에 없는 예상하지 못한 장면을 보긴 어려울 것이다. 사전에 이러쿵 저러쿵 짜놓은 극본도 없이 관객을 극 안으로 끌어들이는 마당극에서만 볼 수 있는 짭짤하고 고소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애나 어른이나 여성이나 남성이나, 즉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함께할 수 있는 것이 마당극이다.

 

<최참판댁 경사 났네>는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공통된 민족 감정도 툭 건드려 놓는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 <토지>를 각색한 마당극이다 보니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물 흐르듯 잘 흘러가는 극의 전개상 굳이 넣지 않아도 될 대사가 튀어나온다. 일본 군인들을 제압하여 꿇어앉혀 놓고는 길상이 묻는다. “독도가 누구 땅이야?” “, 조선의 땅이무니다.”라는 대목에서 관객들은 , 맞어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있지….라는 생각을 새삼스레 해낸다. 잠자던 민족 감정이 스멀스멀 기어나오려고 한다.

 

일본 경찰들이 조선 처녀(마당극에서는 임이)를 붙잡아가는 장면도 그렇다. <토지>에도 나오는 이야기이고 우리 모두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일본군 성노예이야기이다. 극의 긴장이 최고조로 오르는 대목에 벌어지는 이 장면에서 관객들은 아주 많은 이야기를 동시에 떠올리게 된다. 199218일부터 매주 수요일마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 대사관 앞에서 수요시위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상기하거나일본군 성노예의 잘못을 고발하는 소녀상이 전국 곳곳에 세워졌는데 어떤 지자체는 이를 막기 위해 혈안이 되었더라는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그 순간 주먹을 불끈 쥐거나 숨이 턱 막히거나, 아니면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내도록 웃음 짓던 관객들이 순식간에 눈물을 흘리도록 만드는 그 장면을 최고 명장면으로 꼽는 이들도 제법 많다.

 

 


우리 국민들의 공통된 민족 감정을 잠시 환기하는 것은 극의 대미를 장식하기 위한 치밀한 장치일 것이다. 곧이어 광복이 찾아오고 배우와 관객이 하나가 되어 대한독립만세를 외칠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최참판댁 경사 났네>를 재미있게 보고 있던 관객들은 손에 손에 쥐어준 태극기를 휘날리며 만세를 외치고 박수를 치고 함박웃음을 짓는다. 마치 1945815일 하동 읍내 모습을 평사리로 옮겨 놓은 듯한 장관이 연출된다. 미리미리 감정을 고조시켜 주는 몇몇 장치들이 있었기에 그렇게 멋진 마무리가 마련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그러니까 1시간짜리 마당극 안에는 위기대처 능력이 아주 뛰어난 능수능란한 배우들이 큰 기둥을 이루고 있다. 관객들의 마음과 정신을 훔쳐갈 만한 기막힌 장치도 여러 곳에 묻어 둔다. 언제쯤 지뢰가 터질지 모르는 관객들은 하고 터지는 순간 깜짝 놀라기도 하고 깊은 감동에 젖기도 하고 환한 웃음을 짓기도 한다.

 

<최참판댁 경사 났네>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흉내 내기(패러디)도 등장한다. 영화 <매트릭스>의 명장면 중의 명장면이 느닷없이 등장한다. 매트릭스의 여주인공이 공중으로 붕 떠올라 양 팔을 날개 펼친 듯 쫙 편 뒤, 힘껏 걷어차기 좋게 다리를 접어 감은 장면. 이 영화를 패러디한 장면은 <최참판댁 경사 났네>에서 두 번 등장한다. 한 번은 1부 두 여인네의 싸움 장면에서, 한 번은 극 후반에 일본 앞잡이를 응징하는 장면에서. <매트릭스>를 본 관객들은 자기도 모르게 ~!”하는 함성을 지르게 될 것이고 불행하게도 아직 <매트릭스>를 보지 못한 관객들은 이야~!”라는 탄성을 내지르게 돼 있다. 시대적 배경은 일제강점기이지만, 관객은 21세기 관객들이므로 그들의 구미와 기대를 만족시켜 주기 위한 큰들만의 노력의 결과로 보인다(이 장면은 다른 마당극에서도 변주된다). 아마 처음 <최참판댁 경사 났네>를 본 관객들이라면 집으로 돌아가서 이 하나의 장면이 머릿속에 남아 밤새도록 괴롭힐지도 모른다. 그만큼 마당극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범위 밖의 것을 끌고 들어온 것으로 본다.

 

 


<최참판댁 경사 났네>를 두 번째 본 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골라본다. 1부 용이네 집 앞에서 버나놀이, 농악놀이, 실랑이가 벌어진 뒤 악역을 맡은 조준구와 그의 아내 홍씨가 등장한다. 이제 2부 마당인 최참판댁 앞마당으로 장소를 옮길 차례다. 조준구는 나귀를 타고, 홍씨는 가마를 타고 먼저 출발한다. 소 한 마리가 뒤따른다. 2분 정도 걸리는 거리다. 나머지 배우들도 풍물을 치며 장소를 옮기고 관객들도 우르르 뒤따른다. 앞서간 조준구와 홍씨는 이동하는 동안에는 별다른 대사가 있을 수 없다. 다른 배우들도, 관객들도 아직 그들을 따라오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동하는 모습도 사진으로 찍고 싶어 앞장서서 조준구를 따랐다. 그런데 그 부부는 이동하는 동안에도 임자, 저기가 바로 우리 집이오!”라며 진지하게 연기한다. 아내 홍씨도 뭐라뭐라 쫑알대면서 종종걸음으로 따른다. 조준구의 표정에는 최씨 집 재산을 모두 가로챌 생각에 잔뜩 부풀어오른 감정이 여실히 드러난다.

 

단순히 마당을 옮기는 것이어서 땀을 닦으며 다른 농담을 하며 걸어가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을 텐데, 그들은 아무도 보지 않는 데에서조차 진지하게 연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 과연 큰들의 마당극은 이래서 다르구나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누가 보건 보지 않건, 누가 듣건 듣지 않건, 자기 배역에 충실한 조준구와 홍씨에게 나는 마음의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아무도 보지도 듣지도 않은 건 아니구나. 내가 따라가고 있었으니).

 

 


극단 큰들의 <최참판댁 경사 났네>610(일요일 오후 2) 공연하면 상반기 일정은 끝난다. 다시 보려면 98(), 9(), 22()까지 기다려야 한다. 소문 듣고 조만간 한 번은 가 봐야지 생각한 사람이라면 610일을 놓치면 석 달을 기다려야 한다. 나는 앞으로 몇 번 더 보러 가게 될지 모르겠다. 보고 또 보아도 새롭고 재미있고 신기한 장면들을 캐내기 위해 두 눈 가늘게 뜨고 달려갈 것이다. 기껏 한 시간 이십 분밖에 안 걸리는 거리니까. 가면 이것저것 볼 것도 많고 먹을 것도 적잖으니까. 무엇보다 극단 큰들이 벌이는 흥겨운 잔치마당인 최참판댁 큰 경사에 한 자리 꼽사리 끼어 술도 얻어 먹고 떡도 얻어 먹고 그리하여 내 삶에 활력을 얻어 오고 싶으니까.

 

2018. 6.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