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웠다. 소설의 3요소는? 인물, 사건, 배경. 연극의 3요소는? 희곡, 배우, 관객. 만약 영어 시간이나 수학 시간에 배웠더라면 애저녁에 까먹었을 터. 그럼 시의 3요소도 있을까? 있겠지. 명색 정통 문학의 한 갈래인데 없을 턱이 있나. 운율, 심상, 주제. 요즘 시를 볼작시면 운율이 겨울 추위에 동사해 버렸나 싶은 게 늘렸지만 그래도 그렇다 하니 그런 줄 알 수밖에.
마당극의 3요소도 있을까? 없다. 아니다. 3요소도 있을 것이고 4요소도 있을 것이다. 시, 소설 쓰는 작가들이야 고상하고 귀하신 분들이라서 이렇게 ‘3요소’를 자랑삼아 멋들어지게 만들 줄도 알았겠지. 연극도 그 역사가 오래되었으니 그럴 것을 이해할 만하다. 그렇다면 마당극 하는 사람들이야 장삼이사 필부필부라서 그딴 것 애시당초 생각지도 않았을까. 그럴 리가? 그런 걸 똑부러지게 정해 놓고 대본을 쓰고 공연을 한다는 게 영 촌시럽고 마뜩찮고 남새시러워서 첨부터 그러하지 않았을 뿐이겠지. 그럼그럼.
그래도 굳이 따져본다면 따져볼 수는 있겠지. 이딴 것 따져본다고 세금 더 낼 것도 아니고. 연극이란 게 무대 위에 이런저런 장치를 해 놓고 칠갑팔갑 분장한 배우들이 오락가락하며 뭐라고 씨부려대는 것이라고 치자. 마당극은 마당을 펼쳐놓고 적당한 장치와 맞춤한 소품을 얼기설기 엮어 놓고 얼굴에 팔갑구갑 분칠한 배우들이 왔다 갔다 하며 뭐라고 씨부려대고 노랫가락 두들겨 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잖을까.
연극과 마당극은 같은 점도 많고 다른 점도 많다. 이맛살 찌푸리며 점잖게 비교하고 냉엄하게 분석해 보면 둘 다, 일단 희곡(대본)이 있어야 하겠지. 배우도 있어야 하겠지. 그냥 아무나 길다가 만나서 생각나는 대로 씨부리고 댓거리한다면 그건 동네 패쌈이거나 시골장터 난투극일 가능성이 높겠다. 일정한 대본이 있고 그것을 달달달달 외워서 손가락질, 몸가락질과 함께 씨부려대야 하는 배우란 물건은 필수 중에 필수겠다.
관객? 그래, 관객 없이 무슨 연극이 되고 마당극이 되겠나? 대본에 적힌 대로 열심히 외워서 손동작, 몸동작 해가면서 공연하는 사람인 배우라는 것이 있다 한들, 그것을 보아주는 사람들이 없으면 그게 뭣이겠나. 미친 놈 널뛰기도 아니고 정신병 환자 몽유병 시범도 아니고 말이다. 배우들의 혼신의 연기를 귀담아 듣고 눈여겨 봐 주는 관객이야말로 연극을 연극이게 하고 마당극을 마당극이게 하는, 가장 나중에 드러나는, 그러나 가장 중요한 요소 아니겠나.
나는 뭣 때문에 따신 밥 먹고 식은 소리를 자불자불 지껄이는가? 아 글쎄, 하동 악양 평사리 최참판댁에서 펼쳐진 마당극 한 편을 보면서, 내 홀랑 벗겨진 이마 속에 딱 한 가지 생각이 들어앉아 빠져나갈 궁리를 하지 않으니 어쩔 수 있나. 그 생각이 무엇이더냐? ‘극단 큰들’이 정기공연으로 펼치고 있는 마당극 <최참판댁 경사 났네>에서 만약 관객이 없었더라면 이 마당극은 과연 어떻고롬 되어부렀을까 하는 것. 고 생각이 딱 박혀설랑은 도무지 도대체 아무래도 빠져나가질 않더란 말이다.
관객이면 다 관객이던가. 마당에서 놀고 있는 마당쇠, 아니지, 배우들이 뭐라고 하면 맞장구도 쳐주고 댓거리도 해주고 손뼉도 쳐주고 이도저도 아닐시면 고함이라도 실컷 질러주는 그런 관객. 그런 관객이 아니었더라면 도대체 최참판댁에 어떤 경사나 났겠느냐 이 말이다. 설령 경사가 났다 한들 누가 알아주기라도 했겠느냐 이 말이다. 명색 ‘관객’이라는 역할을 하기로 하고 모여든 사람들이, 양복 양장 갖춰 입고 네코타이 길게 메고 마빡엘랑 뽀마드 기름 듬뿍 발라 가르마 타고 빗질마저 어여쁘게 한 뒤 허리와 고개를 뒤로 한껏 젖힌 채 팔짱만 끼고 있었더라면, 그래갖고 “니 함 웃기 봐라, 니 아무리 그캐도 내 웃는가 봐라.” 하고 자빠졌더라면, 그 풍경이 가히 어쩔 뻔했겠는가 이 말이다.
엄마 뱃속에서 ‘응애~’ 하고 날 적부터 끼가 넘치고 재주가 신묘한 사람들만 최참판댁에 놀러 가겠는가, 그럴 리 없다. 학창 시절 국어 과목을 열심히 공부하여, 마당극을 볼 때 관객에게 주어진 임무를 완벽하게 몸에 익히고 있는 사람만이 최참판댁 마당놀이를 보러 갔겠는가, 그럴 리 없다. 주말, 휴일 아내 등쌀에 아이들 눈치에(남편 등쌀에 아이들 신호에) 일없이 길을 나선 사람들이 점심 배불리 먹고 ‘뭐, 소화시킬 만한 구경거리 없나’ 하고 모여든 화상들 아니었을까. 그런 사람들이 마당극이라는 고색창연한 우리 고유의 유희에서 관객이 배우들과 어떻게 호흡하고 맞장구는 어찌 쳐주고 추임새는 언제 넣느냐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들을 하고 왔겠는가. 그렇게 좋은 자리에서 저렇게 훌륭한 배우들이 고롷게 멋들어지게 공연을 하는 데도 소 닭 쳐다보듯 뒷걸음질치는 족속들보다야 여러 결 윗길이겠지만.
극단 큰들의 마당극을 보고 있노라면, 남산골 샌님이라도, 금방 결혼한 부끄럼 많은 새악시라도 저도 모르게 방귀를 방방뽕뽕 뀌면서 얼쑤, 잘한다, 옳거니, 에끼놈, 저런저런, 아이구나, 뭣이라 따위 추임새를 넣게 된다. 혹시 모르지, 어데서 막걸리로 목깨나 축인 축들이라면 그 소리는 더욱 크고 그 위치는 더욱 대중없게 마련일 테지. 아무튼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들어가다 보면, 굳이 요구하고 꼭 요청하고 반드시 부탁하고 그렇게 하지 않아도 관객은 알아서 관객 노릇을 하게 되더란 말이다. 맨 처음 시작할 때 길고 잘생기고 목소리 큰 배우가 “안녕하세요?” 말한 뒤 “그럴 땐 ‘안녕하세요’라고 대답하는 겁니다.” 딱 한마디 하긴 했지만, 그걸 부탁이라고 협조요청이라고 협박이라고 안내라고 받아들일 사람은 한 명도 없었으니.
한국문학의 큰어머니랄까 외할머니랄까,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 내용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일단 재미있다. 서희, 길상, 조준구 같은 소설 속 인물들도 등장한다. 소설과 똑같지는 않지만 대강의 흐름은 비스무리하다. 그렇게 이해하고 보면 된다. 그런 중에 배우들은 관객들을 극 속으로 끌어들이는 짓을 서슴지 않는다. 그 동네 이장이란 허우대 멀쩡한 분도 등장하고, 한창 연기에 물이 오른 마을 아지매도 두 명 등장하고, 초등학교 5학년 짜리 예쁘장한 학생도 출연한다(소설에 묘사된 어린 서희와 어찌 그리 닮았는지). 제1의 관객일 수밖에 없는 동네 사람들을 아예 배우로 끌어들여 버린 것이라니. 섬진강 모래무들 같은 큰들의 넉살과 지리산 봉봉봉우리 같은 기획자의 치밀함을 뉘라서 짐작이나 할 수 있었으랴!
귀한 집 멀쩡한 어머니를 ‘18K 금덩어리’라고 우기는가 하면, 그 딸쯤 되어 보이는 관객은 졸지에 ‘순금’으로 환생해 버린다. 그건 그나마 낫다. 그래도 금은 금이니까. 그 옆에 입 헤 벌리고 웃던 다른 말짱한 귀부인과 그의 가족들을 하루아침에 돌멩이로 추락시킨다. 차돌이든 몽돌이든 돌멩이가 되었다면 화를 내고 인상을 찡그려야 하는데 그저 웃는다. 그것을 보는 관객 모두 마당 바닥을 쳐다보며 눈깔 굴리기에 바쁘다. 배우들 연기보다 더 화급하고 다급한 건 뭘까. 필시, 애지중지 자기 배꼽이 떨어져 흙먼지 묻혀가며 어디로 데굴데굴 굴러가고 있는지 찾는 게다. 독립군 자금이 든 공공칠 가방을 관객에게 턱 맡긴다. 순식간에 독립군 동지가 된 한 관객은 평생 자랑과 긍지로 살 테지. 그 표정이 눈에 선하다.
이런 마당극의 마당에는 절대 튀어나오지 않을 것처럼 생긴(순전히 나의 생각) 어떤 남자는, 주연보다 더 주연처럼 재미를 북돋웠다. 서희와 결혼해야 할 길상이 나타나지 않자 대신 새신랑으로 출연, ‘동상례(東床禮)’를 하며 “아이고 사위 죽네~!”를 외치는 엄살을 잘도 떤다. 한번쯤은 실제 해 본 솜씨다. 그 가짜 새신랑 발바닥을 마른 명태 대가리로 내려치는 이장님 표정엔 마치 무남독녀 친딸 시집보내는 장인어른의 기쁨과 아쉬움 같은 게 덕지덕지 묻어 있다. 이쯤에선 관객들은 각자 자기가 다니던 병원에 예약 전화들을 한다. 하도 웃다가 입이 찢어졌으니 지금이라도 달려가면 기워줄 수 있느냐 확인한다. 딱 그 장면에 꼭 들어맞는 신수 훤한 관객을 어떻게 찰떡같이 끄집어들이는지 그 재주와 혜안의 신묘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결정타는 따로 있다. 그것은 비밀이다. 모든 관객이 하나가 되어 극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장면은 미리 연습하고 리허설하고 반복하고 복습하여 이뤄낸 명장면이 아니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극을 즐기던 관객이란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독립군이 되어 3ㆍ1 만세운동 현장에서 일경의 총포에 맞서던 1919년의 조선 동포가 되어 있다. 의심 많은 콜롬보나 셜룩 홈즈가 왔더라면, “당신들 큰들이나 하동군으로부터 도대체 뭘 얻어먹었기에 그렇게 열성적으로, 그것도 단체 떼거리로 적극적으로 아주 열심히 마당극에 참여하고 그러는가?”라고 물음 직한 상황.
한 가지 더 덧붙인다. 덧붙인 건 혹이 아니다. 의혹도 아니다. 유혹이다. 배우들이 마당 바깥으로 사라지는 장면이 아주 많다. 그냥 연극이었다면 당연히 무대의 왼쪽 아니면 오른쪽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큰들은 처음부터 관객과 호흡하기로 작정한 극단 아니던가. 일부러 관객들 사이를 비집고 헤집고 밀쳐가며 마당 바깥으로 달아난다. 순진한 관객들의 눈길은 마당 바깥으로 퇴장한 배우들 뒤꽁무니를 따라간다. 그새 본 마당엔 다른 주인공이 등장하여 고함을 질러댄다. 마당을 퇴장하는 배우를 더 가까이에서 본 관객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순간의 황홀한 짜릿함에 조금은 유혹당하지 않았을까. 내가 감각이 좀 무뎌서 그렇지, 극 시작하기 전 '버나놀이' 할 때 관객 두 명을 끌어들이는 것을 보고 진작 알아봤어야 했는데, 아, 무디고 무딘 눈썰미여!
이쯤 되면, 마당극의 3요소는 대본, 배우, 관객이라고 할 만하다. 마당극의 4요소는 대본, 배우, 관객, 마당이라고 할 만하다. 혹시나 마당극의 5요소도 있을까. 물론이지. 대본, 배우, 관객, 마당, ‘소품’이라고 할까. 국어 교과서에는 절대 나오지 않는 마당극의 5요소라니...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잘도 버무린 획기적이고 기발한 소품들은, 그냥 ‘무대’라는 요소 하나에 뭉뚱그려 넣을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소품들이 적재적소에서 자기 존재를 적당하게 부각시키지 않았더라면 한 편의 마당극은 망가진 ‘그 무엇’으로 전락했을 게 뻔하다. 큰들 마당극을 한두 번 본 사람이라면 눈치챘겠지만, 마당극 이야기를 끊어지지 않게 미끌미끌 매끄럽게 이어주고 어떤 때는 다른 무대로 전환하기 위해 앞 무대 이야기를 인정사정 없이 매몰차게 딱 끊어주는 것도 소품 없인 불가능해 보인다.
아기자기한 무시 뿌리에서부터 태극기 내걸린 독립군들의 비밀회합 장소까지 소품은 느닷없이 나타나났다가 아무도 모르게 무대 뒤로 사라진다. 소품 하나는 한 가지 역할만 하는 게 아니다. 눈깜짝할 새, 즉 찰나에 전혀 다른 소품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트랜스포머가 울고 가도 9년 전쯤엔 울고 갔겠다. 하지만 그것들의 말없는 희생과 도움 덕분에 평사리 사람들의 성정은 어떠한지 최참판댁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가 더 나쁜 놈이고 누가 덜 나쁜 놈인지 관객들은 눈치껏 알아채고 재량껏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소품을 따로 떼어내 마당극의 다섯 번째 필수 요소라고 한들, 누가 나에게 돌을 던질 텐가. 큰들 소품 제작자에게 영광 있을진저!
하동군이 주최하고 극단 큰들이 주관하는 <최참판댁 경사 났네>는 3월부터 10월까지 토, 일요일 오후 2시에 평사리 최참판댁 곳곳에서 열린다. 우연히 갔다가 국보급 공연을 만나는 행운도 좋겠지만, 미리 공연 일정을 확인하여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가서 한 시간 동안 함께 즐기는 게 더 좋다. 6월에는 9일(토)과 10일(일)에 열린다.
이 작품은 2010년 경남문화재단 레지던스 지원사업, 2011~2018년 하동 평사리 최참판댁 연중 상설공연, 2011년 목포 마당페스티벌 참가, 2011년 합천 팔만대장경 엑스포 참가, 2012년 여수 엑스포 참가, 2013년 순청 국제정원박람회 참가 등의 기록을 갖고 있다(큰들 누리집 참조). 2018년 5월 27일 일요일, 그러니까 내가 본 오늘 공연은 145번째 공연이었다고 한다. 세상에나! 국보급 마당극을 백마흔다섯 번째 만에 처음 공짜로 보다니!
2018.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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