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 앉은 아지매 얼굴이 납닥하다. 머리는 염색도 하고 파마도 했다. 치아는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다. 요즘 나는 남의 입 속을 잘 바라본다. 이 아지매가 자꾸 나를 바라본다. 못생긴 꼬라지 봐서 뭐 하시려고? 중절모 쓰고 색안경 낀 놈이 사진을 자꾸 찍어대고 아주 가끔 뭘 적기도 하니까 말을 걸고 싶었던가 보다.
마당에서 배우가 손뼉을 유도하면 손에 불이 나도록 열심히 쳐대다가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로 웃기도 한다. 나와 눈이 몇 번 마주쳤다. “아요, 너무 잘한다 아이가?” “예, 정말 재밌십니더!” 몇 마디 나누지는 않았지만, 곁눈으로 힐끔힐끔 쳐다보니 이 아지매 극속으로 완전히 빠져들어갔다. ‘아리랑’이 나오자 큰소리로 따라 부른다. 누가 부르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풍물이 쿵쾅쿵쾅 쟁강쟁강 삐릴리리 울려내자 어깨를 들썩들썩한다. 왕년에 좀 놀아본 아지매 같다. 빨간 부채 들고 검은 옷 입은 얼굴 거무스럼한 배우가 왔다 갔다 할 땐 새침떼기 같은 표정으로 ‘저게 왜 저러고 있나?’ 하는 표정이다가 “난, 오골계야!”라고 ‘선언’을 하자 박장대소를 터뜨린다. ‘오골계가 날 수 있나’라는 대사 끝에 “못 날지!”란다.
그 옆에 아지매, 또 그 옆 아지매, 그 뒷줄에 앉은 아지매들은 숫제 다리를 앞으로 쭉 뻗어 놓고 주물러 가며 웃고 손뼉 치고 난리다. 맨 앞자리라서 스피커 소리가 좀 울리긴 했는데도 전체 줄거리를 따라가는 데 별 문제가 없었던가 보다. 한 동네 아지매들이 어슬렁어슬렁 마실 나왔다가 아주 계를 탄 기분을 만끽하는 듯했다.
뒤를 돌아보았다. 굵은 남자 목소리가 자꾸 들려와서이다. 배우들의 대사 중간중간에 자기가 마치 배우인 듯 한마디씩 거든다. 머리는 하얗고 얼굴이 작은 아재가 신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입을 헤 벌리고 있다. 마지막에 “여러분 재미있었습니까?”라고 묻자 가장 먼저, 가장 큰 소리로 “예~!” 하고 대답한다. 그래서 한번 더 돌아봤다. 서로 공감하고 이해하고 동의한다는 염화미소를 잠시잠깐 나눈다.
내가 아지매, 아재라고 하니 그분들을 마흔이나 쉰 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 내 나이 쉰둘인데 내가 아지매, 아재라고 하면 그들은 아무리 못해도 일흔은 되었다는 뜻이다. 그런 어르신들이 바닥에 퍼질러앉아, 어떤 이는 읽으라고 나눠준 팸플릿을 깔고 앉아, 어쩜 난생 처음 만나는 마당극에 푹 빠져 들어간 것이다. 설마 처음 보신 분은 없겠지. 큰들이 그렇게 전국 방방곡곡을 휘젓고 다니는데.
마당극에 빠진 건 잘한 것이다. 행여나 그 옆 바다에 빠졌더라면 경을 칠 뻔했지. 그런데, 몸은 콘크리트 바닥에 앉았기에 끝까지 아무 탈 없었지만 정신과 혼과 얼은 바닷물에 풍덩 빠지듯이 <오작교 아리랑>에 빠져버렸으니.
분명하다. 댁에 돌아간 그분들은 오늘 저녁 약간의 정신적 공황을 느낄지도. 저녁 잡숫고 하릴없이 방바닥에 모로 누워 연속극을 보려는데, 귓가에서 깨깽쨍쨍 하는 꽹과리 소리가 들리고 눈가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상모가 보이고, 아, 그리고 공중으로 붕 떴다가 꼬챙이에 딱 내려앉는 버나들이 머릿속을 계속 돌고 있는지도. 웬수처럼 대하던 사돈이 화해한 뒤 남으로 갔다 북으로 갔다 하는 장면을 떠올리며 4월 27일을 생각해 내곤 밝은 미소를 짓기도 하겠지.
<오작교 아리랑>,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이 마당극은 ‘남남북녀 혼례판굿’, ‘남돌이와 꽃분이의 사연 많은 혼례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남한과 북한이 만나야 한다는 이야기, 즉 통일에 관한 이야기라는 걸 딱 알 수 있다. 남돌이라는 총각과 꽃분이라는 처녀의 결혼을 앞두고 좌충우돌 벌어지는 재미난 이야기겠구나 짐작할 수 있다. 그 정도도 모르면, 뭐, 하는 수 없지. 처음부터 진지하게 배우들의 연기와 이야기 졸가리를 따라갈 수밖에.
아무튼 극단 큰들이 6월 1일 오후 2시 30분 남해스포츠파크에서 펼친 한판 마당극은 큰들이 보여줄 수 있는 다재다능한 예술적 끼와 재능, 높은 주제의식, 다양하고도 아기자기하고도 놀라운 소품 들을 한 편에 비벼놓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본다. 그렇다고 다른 작품, 이를테면 <최참판댁 경사 났네>나 <효자전>은 극단 큰들의 예술적 끼와 재능 등을 ‘일부만’ 보여주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아무튼.
이 작품은 경상남도청이 경남 도민들에게 수준 높은 문화 향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기획한 ‘경남도민예술단’에 선정된 작품이다. 문화 소외 지역-주로 농촌ㆍ어촌ㆍ산촌이겠지-을 찾아가 순회공연을 펼치게 되어 있는데 이번엔 남해에서 마당을 깐 것이다. 극단 큰들이 공연하는 것이지만, ‘경남도민예술단’에 소속된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그건 그러거나 말거나. 큰들의 <오작교 아리랑>은 지난해에도 경남도민예술단에 선정되어 ‘2년 연속 선정’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고 있다. 경상남도 내 곳곳을 순회하려면 한해가 짧겠다.
그럼 이 작품 <오작교 아리랑>이 경남도민예술단에만 두 번 선정되고 말았을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2017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신나는 예술여행에 선정된 바 있고 역시 2017년 3월에는 일본 7개 도시 초청 순회공연도 아주 대단히 성공적으로 마친 바 있다. 2016년에는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민간예술 우수공연 프로그램에도 선정됐다. 2015년 7월 공연을 처음 시작했는데 벌써 알아주고 찾아주는 데가 쌔빘다.
그럼 왜 남해인가. 6월 1일부터 3일까지 사흘 동안 남해군 서면 남해스포츠파크 일원에서 ‘보물섬 마늘축제 & 한우잔치’가 열리기 때문이다. 축제가 열리는 데는 어김없이 노래와 춤이 있고 전국 팔도에서 몰리는 장사치들이 있다. 남해 특산품인 마늘과 한우는 당연히 있겠지. 그러니 남해군민은 물론이고 인근 지역, 아니 조선 팔도에서 많은 사람이 몰려오지 않겠나. 그런 곳에 마당극 한판이 걸판지게 벌어진다면 금상첨화요 금과옥조라 할 만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미리 점지해 준 경남도와 저렇게 맞춤한 때에 불러준 남해군에 손뼉 짝짝짝!
아무튼 그건 그렇다 치고. 이 작품을 왜 큰들이 갖고 있는 예술적 끼와 재능을 총집합해 놓은 작품이라고 설레발을 치는가. <오작교 아리랑>에는 풍물놀이나 설장구, 상모놀음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통 연희인 ‘버나돌리기’가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사자탈놀음도 만날 수 있다. 종합선물세트라고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번 공연에는 전문예술법인 남산놀이마당이 풍물을 협연했다. 어쩐지 조금 더 잘하더라니.
나 같은 관객들은 그냥 배우들이 이끄는 대로 눈길을 보내고 소리 지르고 손뼉 치고 웃기면 웃고 울리면 울면 된다. 참, 울리지는 않는다. 그냥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날 뿐이다. 넓지 않은 마당을 가득 채운 배우들이 뺑뺑 돌면 따라 뺑뺑 돌면 된다. 운 좋으면 즉석에서 뽑혀나간 배우가 되어 꽃분이를 아내로 맞이할 남돌이로 순간 변할 수도 있다. 마당극이란 원래 그런 거다. 물이 오를 대로 오른 배우들의 연기, 손가락동작 손동작 몸동작 다리동작 발동작 엉덩이동작에서부터 눈알동작까지 하나라도 놓치면 섭섭하고 안타까울 따름. 그런 걸 가까이에서 함께 호흡하며 즐기는 게 큰들의 마당극이다.
실컷 웃고 즐기다 진주로 돌아온다. 갈 때는 시간이 부족한 듯하여 자동차 가속기를 좀 밟았는데 돌아올 땐 천천히 달렸다. 갈 땐 웬 굽잇길이 이렇게 많나 싶었는데 올 땐 정겨운 고부랑길이 많아 참 좋았다. 달리지 않아도 되니까. 교통 표지판이 가리키는 대로 했다. 과속으로 달리면 1시간 30분 동안 머리와 가슴에 쟁여 넣었던 <오작교 아리랑>의 감동과 여운이 미처 나를 따라오지 못하고 남해 바닷가에 주저앉아 농성을 벌일 듯해서이다. 이 느낌을 어떻게 표현할까 생각하고 정리하는 데는 시속 30~40킬로미터 정도면 적당하다.
남해대교를 건널 무렵, 큰일이 났다.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 점심을 땐땐하게 먹고 갔는데 왜 그럴까. 저녁 일고여덟시까진 끄떡없으리라 생각하고 갔는데 말이다. 진교쯤 와서 깨달았다. 그렇게 어깨를 들썩이고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고 웃어제쳤는데 배가 안 꺼졌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집으로 달려와 급한대로 라면 하나 끓이고선 텔레비전을 켰다. 그 시간에 제이티비시(JTBC) ‘정치부 회의’를 하는데 제법 재미있으니까.
남해에서 큰들의 <오작교 아리랑>이 펼쳐지고 있을 즈음 대한민국(남한)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북한)은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집에서 4·27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고위급회담을 열었다. 회담 결과 남북은 군사긴장완화와 국방장관회담 개최를 협의할 장성급 군사회담을 14일 판문점 통일각에서, 8·15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논의할 적십자회담을 22일 금강산에서, 아시안게임 공동참가와 남북통일농구경기를 논의할 체육회담은 18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각각 열기로 했다.
이것뿐만 아니다. 당국 간 협의를 긴밀히 하고 남북교류와 협력을 원만히 보장하기 위해 가까운 시일 안에 양측 당국자가 상주하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개성공업지구에 개설하기로 하고, 이를 위한 실무적 대책을 세우기로 했다. 아울러 6·15 공동선언 발표 18주년을 의의있게 기념하기 위한 방안들을 모색하고 문서교환 방식으로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연합뉴스 6월 1일 오후 보도 참조)고 한다. 석연찮은 까닭으로 한 차례 미뤄진 회담을 열어서는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합의한 것이다.
4월 27일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회담을 열었다. 남한 대통령은 5월 23~24일 미국으로 날아가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했다. 그러나 또 석연찮은 이유로 트럼프는 북미정상회담을 열지 않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미국에서 긴장된 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뒤 잠시 한숨 돌리던 남한 대통령 문재인은 북한 김정은의 요청에 의하여 5월 26일 판문점에서 비공개 남북회담을 열었다. 북미회담은 당초 예정했던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리게 된다. 숨막힌다는 말로도 모자랄 정도로 긴박한 나날이다. 시쳇말로 ‘심장이 쫄깃쫄깃한’ 시간을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보낸다.
4월 27일 문재인과 김정은은 판문점 회담을 할 때 전 세계 그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깜짝 행동을 한다. 남한 땅으로 내려왔던 김정은에게 “나는 언제 북한 땅을 한 번 가볼 수 있을까?”라고 문재인이 말하자 “그럼 지금이라도 갔다오면 되지요.”라며 둘이 손잡고 군사분계선을 넘어갔다 돌아온 것이다. 10초 정도 되었을까 말까 한 그 순간은 남한과 북한을 갔다 왔다, 왔다 갔다 하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님을 아주 극명하게 증명해 보여준다. 어려운 일이 아니므로, 앞으로도 자주 왔다 갔다 할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26일 남북 정상의 번개팅이 성공했으니 이제 남과 북의 혼례 판굿 분위기는 점점 달아오르게 생겼다.
<오작교 아리랑>에서 남돌이와 꽃분이의 결혼을 한사코 반대하던 두 집안 어른들이 버나놀이로 집안 내력과 실력 경쟁을 벌이다가 결국은 화해하면서 남과 북을 왔다 갔다 하는 장면이 나온다. “갔다 왔다, 왔다 갔다, 참 쉽네~!”라고 외친다. 4ㆍ27 남북정상회담이 겹쳐진다. 결혼식이 열리는 남해까지 달려와 놓고선 “멀리서 왔, 멀다고 하면 안 되갔구나야!”라는 말을 던진다. 김정은 흉내다. 관객들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장면에서 푹! 웃음을 터뜨린다. ‘실제 남한과 북한 사이도 저 마당극처럼 되어가는구나’라고 느낄 것이다.
정치나 외교는 엄정하고 엄밀하여 엄숙하게 진행해야 한다. 마당극은 그것을 집어던져 버린다. 근엄한 표정으로 악수하고 포옹하는 건 개나 줘 버리라고 외친다. 그냥 허리띠 풀고 웃으며 박수 치고 뛰어놀자고 손짓한다. 오작교 위에서 춤도 추고 연도 날리고 널뛰기도 하고 팔씨름도 하면서 서로 부대끼고 부딪치고 부서지다 보면 새로운 하나로 된다고 말한다. 그게 마당극이니까. <오작교 아리랑>이 평양에서도 펼쳐지고 금강산에서도 판을 벌일 날을 기다려 본다. 머지않았을 것이다.
가수 김원중이 부르는 노래 가운데 <직녀에게>가 있다. “오작교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가슴 딛고 다시 만날 우리들. 연인아 연인아, 이별은 끝나야 한다. 슬픔은 끝나야 한다. 우리는 만나야 한다.”고 절절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남돌이와 꽃분이는 긴 이별을 끝내고, 긴 슬픔을 덮고 다시 만나 하나가 되었다. 그 만남의 마당에서 부르는 노래는 아리랑이다. <오작교 아리랑>이다.
남는 질문 하나. 천상의 견우와 직녀는 어쨌거나 저쨌거나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살 정도로 잘못을 저질렀다. 그래서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견우는 동쪽에, 직녀는 서쪽에 각각 떨어져 살게 됐다. 그럼, 우리 겨레는 도대체 누가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기에 삼팔선 철책을 사이에 두고 남쪽과 북쪽으로 떨어져 살아야 했나? 누가 속 시원히 대답 좀 해주시라.
2018.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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