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진주큰들 33주년 정기공연’이 6월 24일 오후 3시와 7시 두 번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열렸다. 올해 공연의 주요 작품은 마당극 남남북녀 혼례판굿 <오작교 아리랑>이다. 이번 정기공연은 마당극뿐만 아니라 소리꾼 김용우의 초청공연과 큰들 단원과 회원, 시민, 일본 로온(勞音) 회원 130명이 함께한 풍물놀이로 구성되었다. 김용우 씨는 아리랑연곡, 임진강, 뱃노래를 불렀다. ‘연곡’은 흔히 접속곡, 메들리라고들 한다.
오후 3시 열린 첫 공연장을 찾았다. 제법 따뜻한 날이었다. 1시에 미리 가서 초대권을 좌석표로 바꿨다. 안면 있는 회원들이 초록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가슴에 ‘큰들’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그 글자가 유난히 멋있게 보였다. 큰들은 후원회원들에게는 공연 때마다 초대권을 보내준다. 후원회원들은 잘 알겠지만 큰들은 늘 후원하는 성의와 금전보다 더 크고 의미 있는 마음과 감동을 안겨준다. 33년 동안 무럭무럭 멋지고 훌륭하게 자라온 배경일 것이다.
큰들 정기공연을 보고 느낀 몇 가지를 정리해 본다. 10월에 창원에서 열리는 정기공연을 보러 가기 위해 밑자리를 깔아두는 것이다. 내년에도, 그 다음해에도 빠지지 않겠노라 다짐을 적어놓는 것이다. 창원에서는 130명 풍물이 아닌, 한일 시민이 함께하는 합창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벌써부터 가슴이 벌렁거린다. 이 글은 공연예술, 전통예술, 무대예술 등에 대해 문외한인 사람이 그저 본 대로 느낀 대로 적은 것이다.
큰들 공연에는 ‘만남’이 있다. 큰들 공연을 보면 우리 민족의 한(恨) 같은 정서를 만난다. 남북으로 나뉜 이산의 아픔을 만난다. 마당극 제목이 ‘아리랑’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남쪽 마을 총각과 북쪽 마을 처녀의 결혼이라는 소재를 잘 구성하였다. 선남선녀가 만난다. 그들의 혼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여러 일화(에피소드)들이 가로 세로로 만나고 웃음과 눈물로 만난다. 총각의 부모와 처녀의 부모도 만난다. 그들이 쓰는 진주 사투리와 북한 사투리가 구수하게 만난다. 만나야만 무엇이든 대화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고 소통할 수 있다는 뜻일까. 작품 중간중간에는 전통적인 판소리도 나오고 요새 노랫가락도 나온다.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것이다. ‘큰 들’에서는 무엇이든 만날 수 있다.
만남은 무대에만 있는 게 아니다. 객석을 가득 채운 사람들은 모두 정다운 이웃이다. 공연장에는 설레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시민들이 모여든다. 그들은 이미 잘 아는 사람들이다. 알던 사람이 끼리끼리 만나고, 만나고 보니 이리저리 다 연결된다. 관광버스를 대절하여 단체로 온 분도 많다.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목에 명찰을 건 채 등장한다. 이분들을 모시고 온 젊은이들의 얼굴엔 웃음꽃이 피었다. 초등학생 꼬마들도 재잘거리며 달려온다. 가족끼리 손 잡고 함박웃음 짓는 그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들 모여드는 것일까. 큰들 공연장은 만남의 광장이다. 광장은 열린 공간이다. 큰들은 열린 들이다. ‘들’은 원래 열려 있는 것이다.
130명 풍물놀이에 참가하기 위하여 몇 달 동안 고된 연습을 해온 사람들의 만남도 있다.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도 있겠고 처음 만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풍물놀이를 즐겨해 온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이번에 처음 풍물이란 것을 만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개인으로 참가한 사람도 있고 가족이 함께 참가한 사람도 있다. 가족으로 참가한 사람은 14가족이다. 이 가족들은 서로를 또 새롭게 만나지 않았을까. 개인으로 참가한 사람은 자기 스스로를 놀라운 눈으로 다시 만났을 것이다. ‘나에게 이런 흥이 있다니. 나에게 이런 재주가 있다니. 내가 우리 것을 이렇게 사랑했던가. 내가 이런 가락에 몸을 실을 줄이야.’ 일본에서 특별히 참가한 여섯 명도 있다. 2006년부터 큰들과 만나온 일본 반슈 로온 사물놀이 교실 회원이 특별히 참가한 것이다. 큰들은 이 모든 만남을 가능하게 해주는 ‘오작교’이다.
큰들 공연에는 ‘웃음’과 ‘눈물’이 있다. 배우들의 동작 하나하나, 대사 하나하나에 웃음이 묻어 있다. 전통 마당극에서 느닷없이 ‘녹조라떼’가 등장하고 정치인 김무성을 풍자한 ‘노 룩 패스’가 등장한다. 빵 터진다. 웃음은 곧 눈물이다. 웃음은 짧고 눈물은 길다. 왜 그런가. 준비하지 못한 눈물이 있다. 무대 위 배우들은 연기를 할 뿐인데 왜 눈물이 날까. 아리랑 가락만 흘러나오면 왜 목이 메는 걸까. 한민족만이 갖고 있는 어떤 유전자 때문 아닐까. 웃음과 눈물 너머의 이야기도 상상해 본다. 일본에서, 서울에서 공연할 때 정말 그 표정대로 즐겁기만 했을까. 먼길 달려갈 때 얼마나 힘들고 밤새 돌아올 때 얼마나 지쳤을까. 땡볕에서 흘린 땀을 잊을 수 있을까. 긴 세월 대본을 외우고 동작을 맞추고 장단을 집어 넣으면서 얼마나 많은 속울음을 삼켰을까. 무대 배경을 그리면서 붓을 집어던지고 싶은 마음은 정말 없었을까. 하지만 큰들은 모든 것을 이겨내고 오늘을 만들어 냈다. 그런 노력의 결정체를 우리는 보고 있는 것이다. 웃음과 눈물은 그 고갱이이다.
130명이 한 동작 한 목소리로 뿜어내는 풍물 소리를 들으며 웃다가도 갑자기 먹먹해진다. 그들 130명은 나름나름 사연을 갖고 있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이날 공연은 그들 각자와 가족들에게 영원히 잊히지 않는 추억과 감동으로 남을 것이다. 그 추억과 감동의 언저리를 설핏 들여다본 것만으로도 감동은 전염된다. 눈물을 좀 훔쳐내고 나면 정화작용(카타르시스)이 일어난다. 다시 웃게 된다. 웃음은 곧 울음의 다른 이름이다. ‘ㅅ’이 ‘ㄹ’로 바뀐 것뿐이다. ‘큰들’도 ‘큰 듯’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상상해 본다. 큰 듯하지만 작고 소담스런 우리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두고, 그런가 하면 정말 크고 굉장한 들판도 보여주는, 그런 큰들이다. 경남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그 큰 공간을 쾅쾅 울리고 쟁쟁 울리고 달그락달그락 울린다. 울림에 감전되어 한동안 정신을 놓는다. 다시 정신을 돌아오게 하는 건 감동이고 눈물이다. 어깨를 들썩이고 발바닥을 두들기다 보니 시간이 다 가버렸다. 2시간이 이렇게 짧았던지 몰랐다.
큰들 공연에는 ‘호흡’이 있다. 출연하는 배우는 15명이다. 어떤 배우는 두 가지 역할을 맡았으니 실제 배역은 좀 더 될 것이다. 이들이 무대 위에서 주고 받는 대사 하나하나 빈틈이 없다. 무대 뒤쪽에서 반주를 맡은 이들과의 호흡은 찰떡이다. 오공본드처럼 착착 들러붙는다. 마치 음향을 따로 녹음하고 동작을 따로 찍어 이 둘을 정밀한 컴퓨터로 합성하여 보여주는 것 같다. 영화 같다. 버나 놀이 장면에서는 관객들 심장을 쫄깃하게 하느라 일부러 서투른 동작을 보인다. 하지만 빈틈을 허락하지는 않는다. 동작 하나 대사 하나 터질 때마다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진다. 손뼉이 터진다. 모르긴 해도, 배우에게 가장 기쁘고 즐거운 순간은 관객과 호흡이 착착 맞을 때 아닐까. 그렇다면 이날 객석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또하나의 배우였을 것 아닌가. 호흡은 거칠지는 않지만 고비고비를 넘길 줄 알고 끊기진 않지만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주는 찰진 맛이 있다.
큰들 공연에는 ‘자부심’이 있다. 우리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오페라는 오페라대로 멋있지만 마당극처럼 관객과 호흡하지 못한다. 연극은 연극대로 멋있지만 마당극처럼 구수하지 않다. 전국노래자랑도 이보다 흥겹지는 못할 것이다. 이런 마당극을 33년째 해온 그들의, 아니 어쩌면 우리의 노력과 자부심이 녹아 있다. 그 밑바닥에는 우리것에 대한 지독한 애착심과 탐구정신, 지역문화에 대한 높은 긍지가 깔려 있을 것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지역민들은 이 큰들을 후원해 왔다. 나는 비록 얼마 전 후원회원이 되었지만 큰들을 향한 무한 애정과 신뢰는 이미 오래된 것이다. <오작교 아리랑>을 비롯해 무대에 올리는 작품마다 우리것에 대한 애정과 긍지가 있고, 40명 남짓 큰들 가족들의 땀과 눈물이 녹아 있으며, 수천 명 후원회원들의 간절하고도 절절한 바람과 응원의 목소리가 섞여 있다. 그래서 큰들이다.
큰들 공연에는 ‘내공’이 있다. 배우들의 연기는 돋보인다. 전문가적 식견은 없다. 본 대로 느낀 대로 말하자면, 그들의 연기는 천의무봉이요 평사낙안이다. 걸어갈 때나 뛰어갈 때나 웃을 때나 말할 때나, 얼마나 많은 연습의 땀을 흘려야 저런 연기가 나올까 싶을 정도이다. 무대 위에 선 배우는 속으로, 솔직히, 실수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짐작이다. 그러나 그런 것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스리슬쩍 넘어가는 재주도 가진 것 같다. 수많은 동작과 대사가 ‘난무’하였지만 그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전달되지 아니한 것은 없었다. 객석에 앉은 연세 지긋한 분들이 흥에 겨워 어깨춤을 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배우는 배우로서의 내공을 내뿜고 관객은 관객으로서 몸속 깊은 곳에 감춰두었던 신명이라는 내공을 드러낸다. 서로 감출 게 없고 서로 어색해할 게 없으니, 마침내 무대와 객석이 하나되는 것 아닐까. 하나된 마당은 곧 큰들이다.
큰들 공연에는 ‘아쉬움’이 있다. 공연을 마치고 나왔다. 배우들은 분장을 지우지도 않은 채 뛰어나와 인사를 한다. 한 줄로 서서 굽신굽신 인사를 한다. 삼삼오오 모여 관객과 사진을 찍는다. 고정팬이 아주 많다. 그들 표정은 그렇게 밝을 수가 없다. 늙은 할머니인 줄 알았던 배우는 서른 살도 안 되어 보인다. 낭창낭창 쓰러질 것 같은 할머니 역 여배우는 단단하고 탄탄한 젊은 아가씨다. 예쁘기조차 하다. 흰머리가 더 잘 어울리던 할머니는 알고 보니 큰들 대표이다. 그것도 남자. 놀랍다. 남남북녀가 만나 결혼하는 이야기라면 나이를 서른 안팎으로 잡았을 것이고, 그러면 그들 부모라고 해봤자 환갑 지난 나이쯤일 텐데 너무 늙은 분장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관객과 배우의 인사는 끝이 없다. 130명 풍물단원들도 몰려나와 꽃다발 가슴에 안은 채 웃고 울고 난리다. 만나는 사람마다 ‘눈깔’이 멀쩡한 사람은 별로 없다. 공연장 안에서 얻은 감동을 그대로 안고 가려는 듯 종종걸음을 내닫는 사람도 많다. 그렇게 만난 이들끼리 뒤풀이를 가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내년을 기약하고, 많은 이들은 새로 후원회원이 된다. 아쉬움을 달래는 방법은 가지가지다.
큰들문화예술센터는 본부큰들, 진주큰들, 창원큰들로 나뉜다. 큰들문화예술센터는 1984년 창단한 마당극 전문극단이다. 웃음과 감동, 해학을 바탕으로 다양한 작품을 창작, 공연하고 있다. 또 각 지역의 역사와 문화, 인물을 스토리텔링하여 지역의 문화콘텐츠로 개발하는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연간 100여 회의 공연으로 국내는 물론 일본과 라오스 등 해외에까지 그 무대를 넓히고 있다. 큰들 단원들은 평균 10여년, 길게는 20년 이상 작품활동을 함께해 오고 있으며, 오랜 작업을 통해 형성된 탄탄한 호흡과 앙상블을 바탕으로 완성도 높은 공연을 하고 있다. (공연 안내책자에 실려 있는 소개글을 옮김)
이번 33주년 기념공연 작품 <오작교 아리랑>은 2015~2016 산청한방약초축제 상설공연, 2016 한국 문화예술회관연합회 방방곡곡 순회사업 선정, 2017 일본 7개 도시(사가, 히메지, 고베, 도코로자와, 카와고에, 도쿄, 츠루) 순회공연, 2017 경남도민예술단 선정작이다. 이 외에도 큰들은 지리산 산청에서 병든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가는 귀남, 갑동 두 형제의 이야기 <효자전>, 이산가족문제를 풀어보는 한민족의 통일 이야기 <순풍에 돛 달고>, 소설 토지 속 평사리 사람들의 이야기 <최참판댁 경사 났네>, 임진왜란 7년 전쟁을 승리로 이끈 불패의 장군 이순신과 조선 수군들의 이야기 <이순신>, 임진왜란 3대첩 중 하나인 진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진주 민초들의 이야기 <진주城 싸울 애비> 등의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이들 작품은 언제든지 불러만 주면 달려가서 공연해 준단다. 자부심이 느껴진다. 고마움은 자부심보다 더 크다.
2017. 6. 25.
사진은 <뉴스사천> 강무성 기자의 페이스북에서 가져 왔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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