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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안과에 갔다

by 이우기, yiwoogi 2018. 5. 12.

안과에 갔다. 왼쪽 눈알에 실핏줄이 터진 것인데 시력도 재어 볼 겸해서 간 것이다. 평소 같으면 그 정도론 안과 갈 만한 일이 아니다. 마침 토요일 오전이 한가했던 까닭도 있다. 사실은, 처음엔 혈압 때문에 내과에 간 것이었는데 바로 위층에 안과가 있었던 것이 발길을 그리로 이끈 것이다.

 

기억에는 없는데, 안과에 내 이름이 등록돼 있다. 아들 때문에 갔던 것 같다. 나는 안과에라고는 난생 처음으로 기억한다. 눈 하나는 건강하다고 믿어 왔던 것이다. 신문사 교열기자 노릇 할 때 눈이 침침하여 안경을 낀 적이 있긴 하지만 부서가 바뀌면서 시력을 회복했고 지금도 눈 건강에 대해서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산다, 살아 왔다.

 

시력은, 아직은 그런대로 쓸 만한가 보다. 먼데 있는 건 잘 보이고 가까이 있는 작은 글씨가 안 보인다고 했더니 이것저것 재어 보고서는 아직은 괜찮다고 한다. 안압도 쟀다. 눈알에 공기 같은 걸 픽! 쏜 게 안압 재는 것이었던가 보다. 그것도 나쁘지는 않게 나왔나 보다. 아무튼 더 지내 보고 그래도 불편하면 다시 오라고 한다.

 

요즘은 책상 위 책 읽기가 힘들다. 몸을 뒤로 조금 버팅기고 나서야 겨우 읽을 수 있다. 신문글씨도 좀 흐릿하다. 종이와 눈을 제법 벌려 놓으면 읽을 수는 있다. 어쩌다 아파트 공급 공고 같은, 정말 개미새끼 같은 글씨가 나오면 집어던지고 싶어지기도 한다. 노인용 책이라면서 글씨 큰 책들이 더러 서점에 보이던데 그렇게 만드는 까닭을 좀 알겠다. 길 가다 사람 알아보고 운전할 때 신호등 잘 보이는 것만 해도 어디냐 싶은 마음도 있다.

 

의사 선생님은, 양쪽 눈알을 자꾸 들여다보더니 녹내장이 의심되니 검사를 해보자고 한다. 그래서 한쪽 구석 컴컴한 방에 들어가 이것저것 다시 검사를 했다. 처음 녹내장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가슴이 철렁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실명이란 말이 떠올랐고, 이제 겨우 치과에 적응해 가는데 또다시 안과와 친해져야 하는가 하는 생각도 났고, 지갑 두께도 떠올랐다. 쉰두 살 나이를 넘어가기가 이다지도 힘든가 싶어 한숨도 났다.

 

검사 결과 크게 걱정할 만한 건 없었다. 자세한 전문 용어는 모르겠고. 아주 정상인 사람보다는 좀 안 좋은 것 같고, 녹내장 진단받은 사람에 비하면 아직 괜찮다고 한다. 그래프 그림에 초록색 영역에 검은 선이 지나가면 정상이라는데 거의 초록색 안에 검은 선이 보였다. 1년쯤 뒤에 다시 검사해 보자고 한다.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환자를 들었다 놨다 하는 마법의 주문과 같다. 불과 몇 분 사이에 지옥으로 떨어졌다가 겨우 지상으로 구출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는, 아직은 쓸 만한 상태여서 퍽 다행이다. 집으로 오는 길에 혹시나 눈 건강에 도움이 될까 싶어 눈알을 위아래, 오른쪽왼쪽으로 열심히 굴렸다. 눈알을 개그맨 이경규처럼 오른쪽왼쪽으로 빠른 속도로 왔다 갔다 하게 하는 건 내 특기 가운데 하나다. 아파트 구석에 몇 그루 있는 나무의 초록색 잎사귀도 잠시 바라보았다. 목욕탕 가서는 눈을 살며시 애지중지 비볐다. 점심 먹고는 책도, 텔레비전도, 컴퓨터 화면도 보지 않고 그냥 잤다. 하지만 저녁 먹기 전부터 지금 이 시간까지 이러고 있다.

 

치과에 갈 때는 이가 오복의 하나다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오복이란,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누릴 수 있는 다섯 가지 복을 말한다. 사람마다 주장하거나 받아들이는 게 다르겠지만 유교에서는 수(), (),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이라고 한다. 보통 사람들은 치아가 좋은 것, 자손이 많은 것, 부부가 해로하는 것, 손님을 대접할 만한 재산이 있는 것, 명당에 묻히는 것을 가리킨다. 뒤엣것이 훨씬 마음에 든다. 치아가 튼튼해야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 치아가 튼튼하면 음식을 잘 씹어서 삼키게 되므로 소화가 잘되어, 위장병을 줄일 수 있다. 그것은 곧 장()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치아를 오복 가운데 하나라고 하여 그 중요성을 일컫는 말이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면, 눈에 대해서도 없을 수가 없다. ‘몸이 천 냥이면 눈은 구백 냥이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을 아주 어릴 때 할머니에게서 들었다. 할머니는 1992년 겨울 여든두 살에 돌아가셨는데 마지막 몇 해 동안 완전히 실명한 상태로 고생을 많이 하셨다. 눈이 구백 냥이라고 말씀하실 때는 환갑 지날 즈음이셨을 듯한데 그 뒤 당신의 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이다.

 

몸이 천 냥이면 눈은 구백 냥이라는 말은 요즘도 곧잘 쓴다. 어떤 누리방(블로그)에는 다음과 같이 써 놓았다. “눈은 우리 몸의 감각기관 중에서도 가장 예민하고 섬세한 감각인 시각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신체 중 가장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 중요한 기관이다. 세상의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보게 해주는 것도 눈이며, 현대사회에서 필요한 각종 정보와 지식을 읽어내는 것은 물론, 인간의 모든 행동을 결정짓는 중요한 정보 통로도 바로 눈이다. 일찍이 우리 선조들도 눈의 중요성을 인식해 몸이 천 냥이면 눈은 구백 냥이라고 했다.”(작성자 포힘)

 

그런데도 나는 눈을 혹사해 왔다. 혹사! 눈은 아침 6시쯤 일어나서 밤 12시 잠들 때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일을 한다. 출근해서 하는 일의 70~80%는 컴퓨터 화면을 보는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도 컴퓨터 앞에서 이런저런 잡일을 많이 한다. 중간중간 쉬는 시간이라고 할 만한 때엔 조그마한 휴대전화를 들여다본다. 책이나 신문도 읽는다. 텔레비전도 제법 본다. 드러누워 보기도 하고 모로 누워 보기도 한다. 방 안을 환하게 밝혀 놓고 보기도 하지만 10시 넘어가면 나중에 불 끄러 일어나기 귀찮아서 아예 불을 끄고 시청한다. 이것뿐이면 오히려 다행이겠다.

 

. 술은 눈에 적이다. 술을 많이 마시면 간이 건강을 잃게 된다. 간이 나빠지면 가장 먼저 눈에 신호가 온다. 지금 내 눈이 침침하게 된 것은, 컴퓨터 화면, 스마트폰, 텔레비전, 책과 신문 등 여러 가지 때문이겠지만 술의 영향이 가장 클 것이다. 아무 생각없이 제멋대로 살아온 지난 날을 잠시 반성해 본다. 그렇다고 컴퓨터와 스마트폰, 책과 신문, 술 이 모든 것을 아예 멀리할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눈을 보호하는 방법으로 사용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치과와 안과라는 데를 가게 되니 다른 걱정도 생기지 않을 수 없다. 혈압약을 먹고 있으니 내과에도 자주 간다. 간혹 허리에 담이 결리면 통증의학과에 간다. 어깨가 아프고 손목이 아프다고 한의원에 가서 부황을 뜨고 침을 맞는다. 실제 조짐이 나아지기도 하지만 그냥저냥 견딜 만하면 병원을 멀리하고 산다. 몸속의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2년마다 정기검진을 하는 것으로 갈음한다. 위는 내시경으로 들여다보곤 하는데 그때마다 술 줄이고 담배 피지 말고 물 많이 마시라는 조언을 듣는다. 대장은 아직 검사해 보지 않았다. 내년 정기검사 때는 꼭 해봐야겠다.

 

오십 년 넘게 돌아가는 기계가 어디 한군데라도 고장이 안 나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현재 내 몸은 정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입원을 해야 할 만큼 고장난 것이 아니니, 대체로 건강하다고 여긴다. 정기검진 시기가 다가오면 긴장되고 걱정되고 무서워지는 건 어쩔 수 없는데, 2년 동안 몸을 혹사해 놓고서는 겨우 며칠 동안 반성하고 후회하는 것으로 퉁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본다. 몸은 어차피 망가지게 되어 있다. 100, 200년 살 수는 없다. 다만 망가지는 시기를 늦추고 싶을 뿐이다. 대신, 정신이라도 건강하게 살자. 마음이라도 착하게 살자. 정신도, 마음도 여유롭게 살자. 그러면, 혹시 알겠나, 몸의 건강도 좀더 오랫동안 유지되어 줄 수 있을지.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들인다고 했는데, 그 거꾸로 정신이 건강하면 몸에 다가오는 병도 살짝 비켜가 주지 않을까 하는 망상을 해 본다.

 

2018.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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