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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처갓집 전화번호

by 이우기, yiwoogi 2018. 5. 8.

어버이날이라 아침 일찍 처가에 전화했다. 장인어른 휴대전화로 할까 장모님 휴대전화로 할까 망설이다가 그냥 일반 집전화로 했다. 번호는 외운다. 잊을 수 없는 번호다. 전화를 받았다.

 

여성, 노인의 목소리는 맞는데 장모님 목소리가 아니었다. 지난해 11월에 다녀온 뒤 못 뵈었지만, 그렇다고 그새 목소리가 그렇게 변하다니. 순간 걱정이 일었다. 입 안에 무슨 문제가 생겨 병원에 자주 다니신 줄 아는데, 그렇다고 목소리가 변할 정도는 아닐 텐데.

 

혹시 전화를 잘못 걸었나 싶어 이것저것 물어보고, 상대편에서도 누구냐고 자꾸 묻는다. 결국 전화를 잘못 건 것이었다. 이상하다. 내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20년 이상 알아온 번호인데. 결혼 전부터 손가락 끝이 기억하던 번호인데.

 

장모님 휴대전화로 전화했다. 신호가 한 번 떨어지기가 무섭게 받는다. 밝은 목소리가 반갑다. 울컥 목이 멘다. 죄스러움이 명치 끝에 먼저 맺힌다. 장인어른은 일 나가셨다 하시고, 집엔 별일 없으시다 하시고, 우리쪽 안부도 여쭈신다. 우리도 별일이야 있겠습니까.

 

자주 못 찾아뵈어 죄송하다 말씀드리고, 3 아이 시험 끝나는 11월쯤 장인어른 생신 겸 처갓집 이사 축하 겸해서 찾아뵙겠다고 말씀드리고. 어버이날이라 작은 꽃바구니 하나 보냈으니 휴대전화로 연락 오면 집에 기다리셨다가 받으시라고 말씀드리고. 그렇게 2~3분 정도 통화하니 할말이 없다. 경상도 사위란. 건강하시라고 인사 올리고 끊었다.

 

멀리 산다는 핑계로, 아이가 고3이라는 핑계로 참 많은 죄를 짓고 산다.

 

전화번호? 벌써 3년 전쯤에 집전화는 없앴다고 하신다. 그사이 우리는 늘 어른들 휴대전화로만 통화했으니 모를 수도 있다고 치지만 , 너무 무심했구나싶다. 그 집전화 번호는 이런저런 인터넷 사이트 비밀번호로 곧잘 써먹었는데 이젠 그것들도 바꿔야 하나, 어째야 하나.

 

2018.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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