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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단골 이발소를 어디로 옮겨야 하나

by 이우기, yiwoogi 2018. 4. 30.

토요일 아침 머리 깎으러 이발소에 갔다. 오랜 단골이다.

낯선 사람 몇이 먼저 와 있었다. 동네 사람 같았다. 

제법 기다려야 할 듯하여 탁자에 놓인 경향신문을 집어 들었다. 

그 전날 있었던 남북대화 기사가 크게 실려 있었다.


한 노인이 대뜸 말했다. 노인이라고 했지만 나보다 여남은 살밖에 많지 않은 듯했다. 호형호제해도 될 만한 나이로 보였다. 생긴 건 아주 멀쩡했다. 멀쩡하긴 했지만 밉상이 더덕더덕 붙어 있었다.


"아, 문재인이 김정은이한테 2조나 되는 돈을 줬다 안 하나?"

"촛불시위 때 문재인이부터 빨갱이로 잡아 가둬야 했는데."

"요즘 젊은 것들은 보릿고개도 모르고 힘든 것도 몰라."

"홍준표 말이 딱 맞는 기라. 두고보라지."

"나라를 통째로 팔아먹는 것 아닌가? 김정은이한테 갖다바치는 것 아닌가 말이다!"


대충 이런 이야기를 언성을 높여 떠벌였다. 조곤조곤 이야기하면 토론이라도 해보겠지만,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발소 주인을 비롯해 한두 사람이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 노인은 이발소 안의 성질 사나운 독재자였다.


하도 귀가 아파 잠시 바깥으로 나갔다. 밖에서 듣자 하니 그 노인은 아주 신바람이 났다. 지나가는 누가 들으면 큰 싸움이 대판 벌어졌나 여길 것이다. 홍 아무개 같은 어떤 정치인이 유세하러 왔나 여길 것이다. 정말 귀가 따가웠다.


다시 들어갔다. 노인이 머리 깎을 순서가 빨리 오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그의 미친강아지 같은 발언은 30분쯤 계속됐다. 집에 가버릴까 하다가 기다린 게 아까워 그냥 있었다. 자동차에 가서 이어폰을 가져와 귀에 꽂았다. 소리를 크게 하여 들었다. 눈치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그 노인은 더욱 크게 떠들었다.


몇 가지를 생각했다. 첫째 박근혜 탄핵 정국 때 진주에서 가장 먼저 또는 가장 크게 태극기집회란 걸 한 까닭을 짐작하겠다. 둘째 세상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여전히 유신시대에 발목잡혀 사는 꼴통이 지천에 깔렸다. 셋째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주머니는 열라고 했다, 나라도 그렇게 살자. 넷째 토론과 논쟁은 최소한의 이성과 상식이라도 갖춘 사람과 해야 한다. 다섯째 단골 이발소를 어디로 옮겨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해야겠다.


2018. 4.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