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 전반에 이른바 ‘미투 운동’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가고 있다.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 서〇〇 검사가 동료와 선배 검사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을 폭로함으로써 시작된 이 운동은 문화예술계로 불똥이 튀었다.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던 늙은 시인 고〇의 성폭력 사실이 드러났고 밀양연극촌 이〇〇 예술감독이 십수년 동안 동료와 후배 여배우들을 성폭행해 온 사실도 드러났다. 영화배우이자 대학 교수이던 조〇〇도 제자들을 자기 오피스텔로 불러 못된 짓을 해온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2월 26일 현재 경찰은 “유명인 ‘미투’ 사건 19건을 살펴보는 중”이라고 발표했다. 경찰은 “실질적으로 처벌 가능성이 다소 떨어지는 사안이라도 추후 이같은 행위 발생을 제어한다는 측면 등을 고려해 피해자 진술을 들어 본 뒤 사범처리하는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년 전, 또는 수십년 전 윗사람으로부터 성폭행, 성추행, 성희롱 피해를 본 여성들이 지금에라도 용기를 낸 건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 여성의 목숨줄을 쥐고서 마치 제왕처럼 군림해 온 문화 권력자들의 민낯이 드러남으로써, 앞으로는 우리 사회가 더욱 맑아지리라 기대해 본다. 그런 수치스러운 일을 당했음에도 가해자와 얼굴을 마주하며 오랫동안 함께 일하거나 공부하며 분노를 삭여온 분들의 고통과 슬픔에 공감한다.
이른바 ‘미투 운동’은 성폭력 생존자들이 누리소통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자신의 피해 경험을 잇달아 고발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2006년 미국의 사회운동가 타라나 버크가 제안했으며 2017년 10월 폭로된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빠르게 확산했다고 한다. 이 운동은, 특히 직장 등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권력형 성폭력에 주목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운동은 미국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퍼져 나갔는데, 이 운동을 가리키는 말, 즉 미투(Me Too)도 덩달아 함께 퍼져 나갔다.
미투(Me Too)란 ‘나도 겪었다’, ‘나도 그렇다’, ‘나도 당했다’는 뜻으로, 성폭력 피해 경험을 함께 나누며 생존자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며 우리는 함께 연대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트 따위 누리소통망서비스에 ‘미투 해시태그(#MeToo)’를 붙임으로써 공감과 분노와 반성의 물결이 더 빨리 확산된다고도 한다.
‘미투’ 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나니까 ‘위드유’라는 운동도 생겨났다. 위드유(with you) 운동은 피해자들과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한,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 또는 움직임이라고 볼 수 있겠다. 위드 유는 ‘너와 함께’, ‘당신과 함께’라는 말이다. 성희롱 등의 피해를 본 사람과 함께, 다시는 이러한 일이 우리 사회에 일어나니 않도록 하겠다는 연대와 공감 운동인 것이다.
이런 생각도 해 본다.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 피해를 당한 여성들이 오랫동안 숨죽여 지내다가 마침내 제 목소리를 내게 된 상황을 지켜만 볼 게 아니라, 가해자인 남성들이 먼저 자기 잘못을 드러내놓는 운동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 것이다. 오래전 어떤 상황에서 이러저러한 잘못을 저질렀는데 뒤늦었지만 지금에라도 반성하고,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운동 말이다. 아무도 모르게, 자기 둘만 아는 성 범죄를 저질러 놓고 모른 척 살아왔다면, 지금에라도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사과를 하는 운동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운동이 일어난다면 이 운동은 ‘나는 가해자 운동’이라고 함 직하다. 그렇게 되면 모든 남자를 잠재적인 가해자로 보는 일도 없어질지 모른다. 물론 다른 문제도 있다. 그런 기억마저 지워버리고 살아가고 싶은, 살아가는 여성도 있을 수 있으니까.
아무튼 ‘미투’라는 말은 이미 세계 공통어처럼 쓰인다. 그렇지만 영어를 배우는 초등학생이나 중고등학생들이 영어 수업 시간에 ‘미투’라는 말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지 걱정이다. 그냥 ‘나도 그래’라는 뜻이라고 설명해 놓고 나면 뭔가 모자라 보이게 됐다. 선생님들은 “미투란 성폭력, 성추행, 성희롱 피해를 본 사람들이 이를 폭로하는 운동을 가리키는 말이란다.”라고 말해줘야 할까. 거기에다 이 말의 유래까지 덧붙여 줘야 하는 일도 생기겠지. 그다지 교육적으로 보이지 않는 상황이 벌어질 것 같다.
미국에서 맨 처음 이런 운동이 일어났고 따라서 이 운동을 가리키는 말이 영어로 ‘미투’인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에서 이 운동을 가리키는 말을 굳이 영어로 할 필요가 있었을까 생각해 본다. 물론, 전 세계적인 현상이고 전 세계인이 공감하는 운동이므로 전 세계인이 대번에 알아볼 수 있는 말을 쓰는 게 나쁘다고 볼 수 없다. ‘미투’나 ‘위드유’ 같은 영어가 미국에서는 성폭력 피해와 관련한 운동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더라도, 우리나라에서마저 그런 뜻으로 쓰이는 게 과연 바람직한 일인가 생각해 볼 만하다.
꼭 그럴 필요가 있었는지 한번 더 되물어본다. ‘미투’라고 할 것을 ‘나도 피해자’, ‘나도 피해자다’, ‘나도 당했다’라는 말로 바꿔 쓸 수는 없었을까 싶은 것이다. '피해자', '당했다'라는 말에 대하여 의견을 달리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피해자라는 단어 자체가 피해를 당한 사람에게 위압감이나 죄책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어만으로 재차 그들을 옭아맬 수도 있을 테니까"(페이스북에서 백승대 님)
'나도 고발한다'라는 말로 바꿔 쓰면 더욱 미래지향적인 용어가 될 듯하다. 그러면 ‘미투 운동’이라는 말도 ‘나도 고발한다 운동’이라고 하면 되겠다. ‘위드유 운동’ 또한 서양에서 먼저 시작한 운동이라서 ‘위드유’라는 영어로 이름을 붙였다. 역시 ‘당신과 함께’, ‘너와 함께’라는 말을 사용하면 어떨까 싶다. ‘성폭력 피해자 아픔에 공감합니다’ 이렇게 좀 길게 붙여도 되지 않을까.
2018.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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