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 영화 보러 갔다. 극장 누리집에서 예약을 한 덕분에 시간이 남았다. 매점에 가서 먹을 거리를 좀 샀다. 이것저것 주문하고 신용카드를 내밀었다. 상냥하고 친절한 점원은 “네, 고객님, 계산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그 친구가 도와준 덕분에 우리는 먹고 싶은 걸 사고 값을 치렀다. 도와줘서 고마웠다.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도와주었는지 잠시 어리둥절했다.
먹을 거리로 요기를 하고 있자니 영화 상영 시간이 되었다. 주섬주섬 먹던 자리를 치우고 있는데 청소하는 점원이 다가온다. 착하게 생긴 그는 “청소 도와드리겠습니다.”라며 우리가 먹던 음식 찌꺼기와 껍데기 들을 순식간에 치워준다. 고맙게도. 뭘 이런 것까지 다 치워주는가 싶어 잠시 멈칫하긴 했지만 꾸밈 없는 웃음과 친절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영화관 입구로 가니 이번에는 표를 받는 점원이 말한다. “네네, 고객님, 입장 도와드리겠습니다.” 입장하는 걸 도와주겠다기에 뭘 어떻게 도와줄 것인가 싶었다. 점원은 우리가 갖고 있는 입장권과 지금 상영하려는 영화가 일치하는지 확인했다. 극장 번호와 자리 번호를 한번 읽어 주고는 “좋은 관람 되십시오.”라고 말한다. 자리에 앉으면서 점원이 도와준 게 무엇인지 잠시 생각했다.
영화를 잘 보고 나니 배가 고팠다. 시내에 있는 어느 식당으로 옮겨 밥을 먹기로 했다. 주차장이 마땅치 않아 식당 주변을 한 바퀴 빙 돌았다. 우리처럼 영화 보고 바로 밥 먹으러 온 사람이 많구나 여겼다. 근처 유료 주차장에 가니 날렵하게 생긴 사람이 달려오더니 “손님, 차 키는 그대로 두고 내리시면 주차 도와드리겠습니다.”란다. 고맙게도. 그 청년 덕분에 직접 차를 앞뒤로 옮기는 수고를 덜었다.
식당에 들어가 외투를 벗어 의자에 걸고 자리에 앉으니 앞치마를 예쁘게 말아 입은 젊은 점원이 다가온다. 차림표를 우리 앞에 내밀며 “손님,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주문을 어떻게 도와줄 것인가 싶어 잠시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그냥 서 있기만 했다.
주문을 도와주려면, 이건 어떤 맛이고 저건 어떤 맛이고 이 집에서 가장 잘 나가는 종류는 무엇이며 오늘 주방장이 특별히 추천하는 반찬은 무엇인지 일러 주어야 할 것인데 그러하지 않았다. 이것저것 주문하니, “네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곤 돌아간다. 무엇을 도와준 것인지 아리송하다. 우리가 직접 주방에다 대고 이것저것 달라고 말해야 했는데 그 과정을 대신해 준 것이니 도와준 건 맞긴 맞다.
밥을 다 먹고 돈을 지부하려고 카드를 꺼냈다. “네, 고객님,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라며 상냥하게 웃는다. 결제를 어떻게 도와줄 것인지 또 생각해 본다. 점원은 카드를 긋고는 영수증을 우리에게 준다. 결제는 끝났다. 내가 직접 음식 값을 계산하고 카드를 긋는 과정을 하지 않았으니 그가 도와준 건 맞다고 해야겠다.
입안이 맵고 혀가 까끌까끌하여 아이스크림 생각이 났다. 근처 아이스크림 가게로 갔다. 서른한 가지나 되는 아이스크림이 알록달록 예쁘게 진열되어 있다. 빛깔도 어지러웠고 그 이름은 더욱 어지러웠다. 난생 처음 보는 이름을 가진 아이스크림이 저마다 자기를 골라 달라며 우리 혀를 유혹하고 있다.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점원이 다가온다. “손님,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그이는 “이건 이런 맛이고 저건 저런 맛이고 또 요건 요런 맛입니다.”라고 말한다. 웃음도 잃지 않는다. 그이 덕분에 맞춤한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아무것이나 되는대로 먹었을 것이다.
어느 정치인이 책을 내고 출판기념회를 한다기에, 요즘은 출판기념회를 어떻게 하는가 싶어 가 보았다. 그 정치인이 6월에 열리는 지방선거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를 통하여 자기의 정치적 신념을 실현해 보려는 지지자들과 그가 높은 자리에 앉게 되면 콩고물이라도 얻어 먹으려는 사람들과 이래저래 인간관계가 얽혀 있어서 낯짝이라도 보여드려야 할 처지인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그 정치인을 직접적으로 돕는 사람들은 밀려드는 관객들에게 “도와 주십시오.”라는 말을 연신 해댔다. 무엇을 어떻게 도와달라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선거법 때문이리라. 그래도 출판기념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책 한 권을 사 주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을 것이다.
서점에 갔다. 서점으로서는 어떤 기준에 따라 책들을 갈래지어 놓았겠지만 책을 사려는 처지에서는 복잡하고 어지럽기 마련이다. 내가 찾는 책이 어디에 있는지 직접 찾으려면 한나절은 걸릴 것이다. 그래서 서점 직원에게 물어본다. 서점 직원은 “네, 제가 찾아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20초도 걸리지 않아 내가 찾는 책을 찾아준다. 속으로 생각한다. ‘왜 이 친구는 “책 찾는 걸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지 않는 거지?’
병원에 갔다. 길고 어려운 치료를 마쳤다. 아픈 데는 좀 덜 아프게 되었지만 앞으로 병원을 자주 들락날락하게 생겼다. 간호사나 의사나, 아픈 사람들을 날마다 보는 일은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원무를 담당하는 간호사에게 치료비가 얼마나 되는지 물었다. “네, 오늘은 얼마입니다.”라고 말한다. 카드를 내밀자 “예, 일시불로 할까요? 아니면 할부로 할까요?”라고 묻는다. 이 간호사는 치료비 결제를 도와주지 않았다.
어딜 가든 도와주겠다는 사람이 많다. 주로 아르바이트 점원들이다. “결제하겠습니다, 청소는 제가 하겠습니다, 지금부터 입장하시기 바랍니다, 주문하시겠습니까?, 한 표 주십시오(저를 지지해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게 맞을 듯한데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도와드리겠습니다(도와주십시오).”라고 말한다. 왜 그럴까. 나는 이런 말투가 좀 어색하다.
손님은 왕이고(요즘은 아니라는 설도 있지만), 그 왕을 극진히 모셔야 하는 처지에서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말투일까. 아니면 윗분, 즉 사장님이 그렇게 시키는 것일까. 특히 무슨 물건을 사거나 음식을 사 먹을 때 이 말을 자주 듣는다. 주문할 때, 계산할 때 거의 예외 없이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주문도 못하고 결제도 못할 바보처럼 보여서는 아니겠지. 아니다, 실제 어떤 식당에 가면, 어떤 가게에 가면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할 만한 곳도 많다. 그래서 그럴까. 나는 이런 말투가 썩 어색하다.
어떤 사람은 자기 누리방(블로그)에 이렇게 써 놓았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관습적으로 창궐해 있는 이 말도 안되는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표현에 익숙해져 있거나 무감각하다 보니, 어느 상점에서 ‘결제(계산)해드리겠습니다’ 말을 들으면 ‘여기 직원은 불손하게 말하네’라는 착각을 하는 상황까지도 발생한다. 아무리 많이 들어도 어색하게만 들리고 전혀 면역되지 않는, 위장된 격식이며 호도된 예의 표현들: <~이세요>,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격식을 갖춘 듯 그럴듯하게 들리는 잘못된 어법들... 그 달콤함을 못 버리고 비판 없이 마냥 무뇌하게 동참할 것인가, 무례, 불손으로 여기는 일부 고객들의 오해(?)를 무릅쓰고 과감하게 돼도 않는 이 개샹노무 표현을 때려치울 것인가.”
2018.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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