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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과 글을 보는 내 눈

하늘을 걷는 길, ‘스카이워크’

by 이우기, yiwoogi 2018. 1. 24.



<경기도 안산 대부도 달전망대>

 

2014년 한가위 연휴 때 처가가 있는 경기도 안산으로 갔다. 하룻밤 술로 지내고 다음날 온 가족 나들이에 나섰다. 경기도 시화호 대부도 조력발전소에 있는 조력문화관으로 갔다. 내비게이션은 35분 정도 걸린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1시간 20분 쯤 걸렸다. 그만큼 인기가 많다. 거기엔 달전망대라는 것이 있다. 25층 높이(75m)의 꼭대기 층을 전망대로 꾸며놓았다.

 

전망대 바닥 한 구석을 투명 유리도 만들어 놓았다. 거기를 지나가자니 여간 힘든 게 아니다. 75m 아래 땅바닥이 내려다 보인다. 까마득한 높이를 실감한다. 공중에 붕 뜬 느낌이다. 오금이 저리고 심장이 멈출 듯하다.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데 어른들은 꽤 무서워한다. 무서움도 경험에서 비롯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우리 인간은 위험을 즐기는 본능이 있는가 보다. 높은 절벽을 밧줄 하나에 의지하여 기어 올라간다. 거미인간(스파이더맨)을 다루는 영화가 나왔다. 산꼭대기 두 곳을 한 줄로 연결해 놓고 장대 하나로 균형을 맞추며 외줄타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도 영화의 주인공이 된다. 우리나라 전통 기예 가운데 솟대놀이가 있다. 진주지역에서 특히 널리 공연됐다고 한다. 솟대놀이 기예 가운데에도 솟대타기는 공중에 매단 줄 위에서 재주를 부리는 것이다. 안전장치 같은 건 없다.

 

이런 것을 보는 사람은 가슴이 조마조마하게 된다. 요즘 말로 심장이 쫄깃쫄깃하게 된다. 자기도 모르게 오금이 저리게 된다. 마치 자기가 그 현장에 있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자칫 잘못하다간 몇 미터, 또는 수백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나는 가노라말도 못하고 황천길로 갈지도 모른다. 그런 것을 극한(익스트림) 스포츠라며 즐기는 사람이나, 그것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이나 비슷하다. 스트레스가 풀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오히려 더 심해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더 심해지는 쪽이다.

 

며칠 전 강원도 원주 소금산에 새로 만든 소금산 출렁다리에 관광객이 몰린다는 기사를 보았다. 111일 개통했다는데 굉장히 인기 있는가 보다. 가장 많은 날은 하루에 17,600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길이 200m, 너비 1.5m로 산악보도교 가운데서는 국내에서 가장 길다고 한다. 이 출렁다리는 8겹으로 꼰 특수도금 쇠줄이 다리 양쪽과 위아래를 연결하고 있다.

 

교량 바닥은 아래가 뚫린 스틸그레이팅으로 제작했다고 한다. 다리를 건너다 보면 저 아래 계곡이 다 내려다보인다는 것이다. 몸무게 70성인 1285명이 한꺼번에 건널 수 있을 정도로 안전하다고 하고 초속 40m의 강풍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고 한다. 나는 절대 안 타고 못 탄다. 초속 40m보다 센 바람이 불기도 하는 세상에... 1285명이 한꺼번에 건너도 안전하다고 했지만, 나는 겁부터 난다.

 

이 이야기를 다룬 많은 신문 기사에 스카이워크라는 말이 나온다. 나는 이 이야기를 하려고 뜸을 좀 들였다. ‘스카이워크라는 말은 무슨 말인지 대강 알겠다. ‘스카이’(sky)하늘이라는 뜻이다. ‘워크’(walk)걷는다는 뜻이다. , 하늘을 걷는다는 말이다. 스카이워크는 하늘(공중)을 걷도록 만든 구조물을 뜻한다. 높은 건물을 연결하거나 산꼭대기를 연결한다. 또는 하나의 산꼭대기에 커다란 건물을 짓고 그 건물 지붕을 이용하여 이같은 구조물을 만들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바닥을 유리 또는 투명한 재질을 이용하여 만듦으로써 저 아래까지 한눈에 보이도록 한다는 점이다. 마치 공중에 붕 떠 있는 느낌을 주도록 만든 것이다.

 

백과사전에 나오는 설명을 종합하면, ‘상공에 투명 강화 유리를 바닥에 설치하여, 안전장치를 착용한 후 하늘에서 그네도 타고 레일도 탈 수 있도록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이 정도 설명하면 머릿속에 그림이 좀 그려질 것이다. 이러한 장치 또는 구조물도 외국에서 먼저 만들었을 것이고 그것을 보고 배워 우리나라 곳곳에서도 이런 것을 만들어 평소 하늘을 걸어보고 싶은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외국에서는 이 구조물의 이름을 스카이워크라고 하는가 보다. 그러면 이 물건을 우리나라에서 만들었을 때는 뭐라고 이름을 붙여주면 좋을까. 그냥 스카이워크라는 말을 가져와도 좋았을까. 먼저 스카이워크라는 말을 검색해 본다. ‘전국 스카이워크 8’, ‘이기대 스카이워크’, ‘춘천 소양강 스카이워크’, ‘정선 스카이워크’, ‘원주 소금산 스카이워크’, ‘콰이강의 다리 스카이워크’, ‘양양 하조대 스카이워크’, ‘단양 만천하 스카이워크처럼 나온다. 발빠른 지방자치단체와 관광업계가 손잡고 벌써 내로라하는 좋은 지점을 선점해 버린 모양이다.

 

언론보도 기사 제목에서도 몇 가지 찾아본다.

 

파주, 독개다리 스카이워크, 방문객 20만명 돌파 (국제뉴스)

창원 저도 스카이워크, 이색 조형물 인기’ (경남매일)

의암호 소양강 스카이워크 빛의 명소 된다 (뉴시스)

단양군 스카이워크관람객 30만명 돌파 (동아일보)

해맞이 명소 간절곶에 스카이워크 생긴다 (서울신문)

남대천 옛 철교 스카이워크 설치된다 (강원도민일보)

 

<단양 스카이워크> (사진 동아일보)


스카이워크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관광업계에서도, 언론에서도 이 말은 아무 거리낌없이 사용하고 있다. 그러한 관광지를 찾아가는 관광객들도 스카이워크라는 것을 잘 알고 있겠지. “단양 팔경을 보러 가면 스카이워크에 꼭 가보자”, “콰이강의 다리에 가면 스카이워크가 인기라더라”, “새로 생긴 정선 스카이워크는 정말 아찔하다고 하던데 한번 가 볼래?” 이런 말들을 주고받는 모양이다.

 

스카이워크라고 하는 이 구조물을 우리말로는 무엇이라고 부르면 좋을지 생각해 보자. 하늘 위에 만들어 놓은 다리, 또는 하늘 위를 걸어가는 다리이므로 하늘다리라고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실제로 백아산 하늘다리’, ‘성수 하늘다리’, ‘난지 하늘다리’, ‘무악재 하늘다리라는 말이 쓰이고 있다. 이 하늘다리는 그저 하늘에 만들어 놓은 다리, 하늘을 걸어가는 기분을 내도록 만든 다리라는 뜻일 뿐일까. 다리를 건너가면서 바닥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도록 투명한 재질로 만들어 놓은 것과는 다른 듯하다. 이런 하늘다리를 건너가자면 굳이 발바닥 아래를 보지 않더라도 난간 너머 아래를 내려다보게 되므로 스카이워크와 똑같다고 볼 수 있다.

 

<부산 송도 구름산책로> (사진 한국일보)


부산시 송도구에 가면 구름산책로라는 게 있다고 한다. 2017년 한 해에 210만 명이 다녀갔다고 하니 꽤 널리 알려져 있는가 보다. 이 구름산책로는 스카이워크라는 말을 쓰지 않고도 전국의 관광객들에게 자기의 존재를 과시할 수 있었다. 물론 주변 관광지와 연결되는 이점도 있었겠지만. 송도 구름산책로는 다른 지역에서 비슷비슷한 구조물을 스카이워크라고 이름 붙일 때 주체성 있게 구름산책로라는 이름을 붙였다. 스카이워크라고 하면 뭔가 좀 멋지게 보이고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 그 뜻을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구름산책로라고 하면 누구든지 , 내가 구름 위를 산책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구름정원길이라고도 함직하다. 구름정원길이라는 말은 다른 데서 쓰고 있다. 서울 북한산 둘레길 8코스를 구름정원길이라고 부른다. 북한산생태공원상단~하늘전망대 스카이워크~선림공원지킴터~기자촌공원지킴터~진관생태다리로 연결된다고 한다. 구름정원길 가운데 하늘전망대 스카이워크가 있단다. 하늘전망대라고만 해도 되었을 것을 굳이 스카이워크라고 덧붙인 건 아쉽다. 스카이워크라는 말이 하도 유행하니까 얼떨결에 따라간 건 아닐지.

 

스카이워크라는 말을 하늘다리’, ‘구름산책로처럼 쓰자고 하면, 아직은, 많은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하늘다리와 구름산책로 같은 말은 그냥 공중에 있는 다리를 가리키지만, 스카이워크라고 하면 발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도록 투명유리로 만든 것이라고, 그래서 그것은 전혀 다른 것이라고 주장할 것 같다. 앞서 말했듯 사실은 그게 그것인데도 말이다.

 

스카이워크라는 말을 따라가다 보면 스카이라운지라는 말도 덩달아 나타난다. ‘스카이라운지는 고층 빌딩의 맨 위층에 있는 휴게실을 가리킨다. ‘라운지는 호텔이나 극장공항고층 건물 등에 마련된 쉼터다. 국립국어원은 스카이라운지를 전망쉼터’, ‘하늘쉼터로 순화하자고 하는데, 실제로는 얼마나 순화하여 쓰는지 모르겠다.

 

영화 <스타워즈>의 여러 주인공 가운데 루크 스카이워커(Luke Skywalker)가 있다. 오리지널 시리즈인 에피소드 4, 5, 6에 나오는 주인공 제다이이다. 맨 처음 스카이워크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이 사람을 이야기하는 줄 알았다. 아는 게 병인지 모르는 게 약인지...

 

2018. 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