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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과 글을 보는 내 눈

가즈아? 가자아아아!

by 이우기, yiwoogi 2018. 1. 18.

이른 아침에 일터에 도착한다. 그날 아침신문 스물 개 정도를 넘겨 본다. 내 일과 관련 있는 기사는 따로 표시해 둔다. 그러다가 사람 이야기, 역사 이야기, 정치 이야기 따위 관심 있는 기사도 눈여겨본다. 세상 돌아가는 데서 동떨어지지 않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하도 딱하여 혀를 끌끌 찰 일도 있고 엄청 신기하여 눈이 휘둥그래지는 일도 있으며 더러운 욕이 먼저 튀어나오는 경우도 있다. 어제 하루 동안 나라 안팎에서 있었던 많은 일을 신문이라는 매체에서 만나는 일은 즐겁다. 놀랍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신문 이름을 한자로 쓰는 것은 조선일보, 동아일보, 경남일보다. 중간 간지(섹션)의 이름을 영어로 만든 신문도 많다. 그런 것은 많이 익숙해져서 좀 무덤덤해졌다. 오래된 것은 낯설지 않고 낯설지 않고 익숙해지면 잘못도 잘못으로 보이지 않게 된다. 잘못으로 보이지 않으면 다른 것과 견줘 보지 않게 되고 비판하지 못하게 된다. 모든 일이 그렇다. 말도 마찬가지고 글도 그렇다.

 

 

간혹 낯선 말도 만난다. ‘가즈아라는 말(신문에서 보았으니 글이라고 해야겠지만)을 처음 본 게 언제인지 뚜렷이 기억나지 않는다. 무심코 넘긴 많은 신문에 적혀 있었을 것이다. 아닐지도 모른다. 아무튼 요 며칠 사이에 가즈아라는 말이 몇 번 보였다. 한 번은 중앙일보이고 한 번은 한국일보다. 한 번은 기자가 쓴 기사의 제목에서 보았고 한 번은 기자 스스로 쓴 칼럼 제목에서 보았다. 신문사 편집국에서는 이 말이 별다른 거부감 없이 널리 쓰이고 있다는 뜻이다.

 

눈여겨보지 않은 사이에 이 말이 얼마나 쓰이는지 언론 기사 제목부터 찾아본다.

 

• 가상화폐 반토막, ‘한강 가즈아현실될까 (금강일보)

  가즈아! 외치는 오신환 원내대표 (세계뉴스통신)

  강경호, 트라이앵글 초크로 승리경호야 가즈아” (아시아경제)

  경찰도 가즈아~’, 괜찮을까 (머니투데이)

  무술년 첫 달부터 가즈아!’ 외치는 넥슨 (스포츠조선)

• 안철수 국민의당 가즈아~” (연합뉴스)

 

무슨 뜻일까. 통박으로 알겠다. ‘가자라는 말에서 나온 것 같다. 어릴 적 보던 만화가 생각난다. 만화 내용 가운데 주인공이 뭔가 힘을 내야 할 때나 기운을 모아야 할 때 외치는 구호가 있다. ‘가자아아아아!!!’였다. 만화책이니까 글자로 나타냈겠지. 글자는 처음 와 맨 뒤 가 두세 배 차이 날 정도였다. 당연히 뒤엣것이 훨씬 크다. 내가 만화 속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고 실제 소리를 내어보면서 정말 기가 막히게 잘 표현했다고 탄복했다. 글자에서 소리가 들린다고 할까. ‘가자아아아!’ 뒤에는 받아랏!’, ‘에잇!’ 이런 글들이 들려오곤 했지. 그런데 가즈아라니.

 

 

가즈아라는 말의 뜻과 쓰임에 대해서는 국민일보 기사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지난해 말 최고의 유행어 중 하나인 가즈아는 사실 토토나 주식 투자자들이 사용하던 언어였지만, 가상화폐 투자자들이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급격히 유행을 타게 된 신조어다. ‘가즈아는 자신이 산 코인이 목표한 가격까지 오르기를 열망하는 뜻으로 가자를 길게 늘려 발음한 말이다. 최근 비트코인 투자자들은 가즈아를 비트코인이 자신이 목표한 가격까지 오르기를 소망할 때 주문처럼 사용하기 시작했다. 1비트코인당 가격이 2500만 원으로 오르기를 희망할 때 ‘2500 가즈아라고 말한다.”

 

부산일보는 조금 다르게 설명한다. “‘가자라는 말을 좀 더 강조하기 위해 늘려서 발음한 것을 그대로 표기한 것인데, 가장 먼저 사용된 곳은 스포츠 관련 커뮤니티 사이트다. 자신이 좋아하는 팀이 이기기를 응원하며 파이팅에 해당하는 영어 ‘Go’를 번역한 가자를 변형해 쓴 것이 출발로 알려져 있다. ‘가즈아가 본격적인 유행어가 된 것은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투자 열풍이 불면서부터다.”

 

운동 경기 응원에서 먼저 썼든 토토나 주식 투자자들이 먼저 썼든, 그 뜻은 어릴 적 만화에서 보던 가자아아아와 똑같다. 만화속 주인공이 외치는 가자아아아는 단순히 앞으로 가자는 뜻으로 쓰는 경우는 잘 없었다. ‘기운을 모아 힘을 내자’, ‘의지를 상승시켜 적을 물리치자’, ‘여럿이 모여 힘차게 전진하자’,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용기를 내자따위 뜻으로 쓴다. 요즘 쓰는 가즈아와 다를 게 없다.

 

토토나 주식투자를 하거나 가상화폐를 사고 파는 사람들이 가즈아라는 말을 왜 쓰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위키백과 신조어 사전에서는 “2017년 국내 가상화폐 투자매매 활성화에 즈음하여 자기가 투자한 가상화폐의 가치 상승을 염원하는 의미에서 디시인사이드 내 비트코인 갤러리를 중심으로 이 단어가 유행하게 되었다라고 설명해 놨다. 디시인사이드라는 데 모여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은어로 쓰던 것이 널리 쓰이게 된 것 아닐까 짐작해 본다.

 

 

가즈아라는 말이 유행하다 보니 너도나도 앞다퉈 이 말을 쓴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요즘 잘 안 풀리는 정국을 헤쳐나가기 위해 국민의 당, 가즈아!”라고 외쳤던가 보다. 그 당의 오신환 원내대표도 어떤 자리에서 그렇게 외쳤다. 눈알에 힘을 주고 목에 핏대를 세워 힘차게 외친 구호가 가즈아이다. “가자아아아라고 해도 되었겠지만 유행어를 사용함으로써 더 많은 관심과 호기심을 불러모아 보자는 심산 아니었을까. 당 대표와 원내대표가 가즈아를 썼으니 이 말은 그 당의 공식 구호가 된 셈이다. 이건 좀 부끄럽고 한심하다.

 

인기 많은 여자떼거리가수 가운데 트와이스가 있다. 이들은 며칠 전 팬클럽이 제작한 거대한 응원 현수막 앞에서 여러 가지 동작으로 사진을 찍었다. 해마다 명절에 문화방송(MBC)에서 방송하는 아이돌 스타 육상대회녹화 날이었던가 보다. 그 현수막에 우승으로 올라 가즈아ㅏㅏㅏ라고 씌어 있다. 이를 보도하는 언론은 요즘 유행어인 가즈아단어를 넣은 재기발랄한 현수막은 한 눈에 봐도 정성이 가득 담겨있어 눈길을 끈다.”고 썼다. 연예인들이니까 유행에 민감할 것이니, ‘그런가 보다하고 봐 준다.

 

 

처음 이 말을 운동 경기 응원에서 썼건, 디시인사이드에서 썼건 간에 지금은 유행어가 된 건 분명하다. 오죽했으면 정치인들까지 이런 말을 쓰겠는가. 그뿐 아니다. 부산일보 보도를 조금 더 보자. “가즈아 열풍은 우리나라에만 그치지 않는다. 해외 가상화폐 투자자들도 가즈아를 영어로 표기한 ‘Gazua’란 말을 사용하고 있어 국제적인 유행어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실제 미국의 한 가상화폐 창업자는 자신의 가상화폐가 상승하기를 기원하며 지난해 말 트위터에 ‘Gazua’란 단어를 올렸다.” 우리나라 유행어가 수출된 것이다. 재미있고 웃긴다.

 

가즈아라는 말 대신 가자아아아로 썼으면 어땠을까. 그랬으면 뒤에 붙는 를 두 개로 할지 세 개로 할지, 아니면 더 많이 할지 사람마다 의견이 나뉘었을지 모른다. ‘가즈아도 뒤에 를 여러 개 붙이기도 하니까 그건 문제 될 것이 없다. ‘가자아아아가 널리 퍼졌다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어느 나라 말인지 한눈에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즈아는 우리말이라는 느낌이 훨씬 적다. 어쩐지 일본말 같기도 하고 미국말 같기도 하다. 그래서 해외에 수출된 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이런 유행어, 신조어를 바라보는 마음은 썩 개운하지 않다.

 

2018. 1. 18.


*사진은 부산일보(안철수), 스포츠경향(트와이스)에서 가져 왔습니다. 나머지 사진은 누리집 여기저기서 가져 왔습니다. 일일이 밝히지 못한 점 이해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