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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매운 돼지 목살

by 이우기, yiwoogi 2018. 1. 21.



 

이틀 전 지에스슈퍼에 들러 돼지고기 목살을 샀다. 하루 반 정도 냉장고에서 숙성한 고기를 장만한다. 별것 없다. 양념을 먼저 준비한다. 매콤한 고추장에 벌꿀을 듬뿍 뿌리고 참기름 몇 방울을 떨어뜨린다. 후춧가루도 툭툭 뿌려준다. 요것을 잘 섞어 준다.

 

프라이팬을 잘 달궈 고기를 먼저 얹는다. 고기 익는 소리와 냄새가 교향곡 같다. 적당히 익은 고기를 알맞은 크기로 자른다. 그 고기를 미리 양념해 둔 그릇에 넣고 이리저리 요리조리 잘 섞는다. 양념이 고기에 골고루 섞이고 배어야 된다.

 

다시 프라이팬에 얹어 약간 노릇노릇해질 때까지 굽는다. 남은 양념을 고기 위에 뿌려준다. 고기는 한번만 더 뒤집어 준다. 매운 냄새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재채기를 하기 쉽다. 번개처럼 고개를 돌릴 일이다.

 

유난히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아들에게 주는 선물이다. 맵고 달고 고소한 목살을 냉큼냉큼 집어먹는 아들의 젓가락이 내 눈에는 교향곡을 지휘하는 금난새, 정명훈의 지휘봉 같이 보인다. 두어 점 먹어 봤는데, 나는 매워서 못 먹겠다. 아들은 이보다 더 매워도 되겠는데요란다. 녀석...

 

혹시 입안이나 입술이 너무 매우면 먹도록 달걀찜도 준비하고 된장찌개도 끓였다. 달걀 두 개에 햄과 치즈와 대파를 넣었다. 물을 적당히 채워 잘 저은 뒤 전자레인지에서 530초 정도 돌려주면 된다. 찌개는 고기와 감자를 적당히 넣고 된장을 풀어 끓이기만 하면 된다. 냉동실에 있는 조갯살을 조금 넣었다. 달걀찜은 입이 맵지도 않다면서도 다 먹었고 찌개는 내가 떠먹다가 소금을 조금 더 넣어 먹었다.

 

설거지는, 오늘은 곁님 몫이다. 이런 일은 주말을 행복하게 보내는 달착지근한 양념 같은 일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 우울하다. 이런 걸 만들어 놓고도 냉장고에 있는 소주도 맥주도 모른 척해야 하다니. 거실 한구석에서 제대로 숙성해 있는 처갓집표 담금주도 외면해야 하다니...

 

2018. 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