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잘 마시지 않는다. 대여섯 해 전 건강검진 때 위 검사를 한 뒤 의사가 “술을 줄이고 커피를 끊어라”고 한 뒤부터다. 그 전에는 커피믹스든 아메리카노든 닥치는 대로 먹었다. 기자 노릇할 때는 하루에 너덧 잔은 기본이었다. “인생은 쓴맛이고 커피는 블랙이지”라면서 쓰디 쓴 커피를 폼 잡으며 먹기도 했다. ‘에스프레소’라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요즘은 아예 끊은 건 아니지만 일부러 찾아 먹는 일은 거의 없다. 어쩌다 마실 일이 있으면 마시기는 한다. 그중 ‘라떼’라고 붙은 종류를 즐기는 편이다. 이전에는 쌉싸름한 맛을 즐겼는데 지금은 달달한 게 좋다. 삶도 달달해지고 세상도 좀 달달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스타벅스가 경상대 앞에 생겼다. 열 해는 넘었지 싶다. 그동안 서너 번쯤 간 듯하다. 여러 사람이 우르르 가니까 따라간 것이다. 가서는 물만 먹은 적도 있다. 지금처럼 커피를 끊기 전에도 그랬다. 스타벅스를 좋지 않게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밑도 끝도 없이 ‘자본주의의 상징’, ‘제국주의의 첨병’처럼 느껴서이다. 지나친 비약이고 논리 모순이라는 걸 알면서도, 마음 속 찌꺼기를 씻어내지 못했다. 다른 커피는 다 괜찮은데 스타벅스만 안 되느냐 묻는다면 할 말이 없긴 하다. 그런 생각은 스스로 지어낸 것이 아니라 어데선가 주워 들은 것인데, 나도 모르게 동의하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 스타벅스 가게는 1000곳이라고 한다(2017년 1월). 엄청나다. 우리가 마시는 커피값의 일부는 미국 본점으로 들어갈 것이다. 콜라 한 병을 마셔도 그렇다고들 한다. 그걸 핑계로 커피나 콜라를 마시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국제화ㆍ세계화 시대에 말이다.
지난해 10월 24일 카카오톡으로 스타벅스의 카페라떼 한 잔을 선물 받았다. 카카오톡으로 이런 선물을 받는 게 처음은 아니어서 반갑고 고마웠다. 커피를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고 스타벅스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는 상황이어서 그냥저냥 두고 지나다가 날짜가 많이 흘러가 버렸다.
12월 26일 ‘유효기간 안내’가 왔다. ‘퇴근길에 잠시 들러 커피나 한잔 뽑아들고 집으로 갈까’라고 생각했다. ‘이디야’에서 부업을 해본 아내가 반길지도 몰랐다. 그러나 까먹었다. 1월 10일 다시 ‘유효기간 안내’가 왔다. ‘새해도 되고 했으니 이번에는 기필코 사 먹어야지’라고 생각했다. 또 까먹었다. 1월 18일 또다시 ‘유효기간 안내’가 왔다. 유효기간은 1월 25일까지다. 카카오톡의 집요함인지 스타벅스의 애절함인지...
1월 19일 점심을 칼국수로 대충 때우고 일터로 돌아오는 길에 번개가 번쩍 일었다. ‘아, 스타!’ 하여 복잡한 좁은 골목에 차를 세우고 스타벅스로 갔다. 휴대폰 카카오톡 메시지를 일하는 젊은이에게 보여주자 거짓말 보태지 않고 1초만에 알아채고는 “그대로 드리면 됩니까?”라고 묻는다. 그의 영민함과 민첩함, 이런 것을 합하여 보통 친절함이라고 하지, 그건 스타벅스라서 가능한 것일지 잠시 생각했다. “현금영수증을 끊어줄까”를 비롯해 몇 가지 더 물었지만 건성으로 들었다. 라떼 한 잔만 얻어서 나가면 끝이니까.
라떼가 나오려면 못해도 2~3분은 걸리겠지 싶어 매장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낯선 신세계였다. 한 사람은 창가 걸상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뭔가를 마시고 있다. 귀에 뭘 꽂았다. 그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보다 먼저 들어온 한 사람은 주문한 커피를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또다른 한 사람은 커피와 빵처럼 생긴 야릇한 것을 쟁반에 얹어 위층으로 올라갔다. 이런 문화에 익숙지 않은 나는 잠시 동안 이티(ET)가 된 듯 어리둥절하다. 촌놈이 따로 없다.
그러던 순간, 번개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게 있다. ‘아, 스타!’라며 내 머리를 때린 번개가 이번에는 ‘아, 훈민정음!’이라는 백만 볼트짜리 전류를 흘려보내 준 것이다. ‘훈민정음’이라니. 경복궁 집현전도 아니고 한글박물관도 아닌 그 이름도 찬란한 스타벅스에서 훈민정음이라니.
지난해 10월이었다. 스타벅스가 한글날을 맞이하여 ‘훈민정음 텀블러’를 팔기로 했다는 기사를 본 적 있다. 2004년 첫선을 보인 이후 8년 만에 새로운 디자인으로 출시했는데, 전통 한지 배경에 ‘훈민정음’이란 글자를 금박으로 새겨 한글의 멋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라고 했다. 머그잔이라는 물건도 동시에 판다고 본 듯했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훈민정음 텀블러는 인사점 직원의 제안으로 제작돼 한국에서만 유일하게 판매되고 있다”며 “기념 소장은 물론 외국인 지인에게 의미 있는 선물로 제격”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스타벅스 매장 중 인사ㆍ광화문ㆍ안국역ㆍ경복궁역점 4곳은 지난해 한글문화연대로부터 ‘우리말 사랑꾼’으로 선정되기도 했단다. 재미있는 세상이다.
스타벅스 매장 안을 휘 둘러보니, 아닌 게 아니라, 훈민정음 잔이 보였다. 당시 기사에는 한 곳당 몇 개씩 수량을 제한한다고 한 듯한데 용케 두어 개가 남아 있다. 얼핏 보니 바로 세워놓은 잔 안에는 먼지가 보인다. 지난해 10월부터, 그러니까 내가 카카오톡으로 스타벅스 카페라떼를 선물받던 그 즈음부터 이 잔은 거기에 그렇게 놓여 있었을 것이다. 마치 나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앞뒤 재고 따지고 생각하고 할것없이 냉큼 하나를 집어 들었다. “뽁뽁이로 싸서 종이 상자에 넣어 줄까”라고 묻는 친절한 젊은 직원에게 손사래를 친 다음 “그냥 들고 갈게요”라고 했다. 이 멋지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잔을 왜 꽁꽁 싸매어 들고 다니겠는가. “난 훈민정음 잔을 샀다”며 이마에 붙이고 다니지는 못할망정.
훈민정음은 무엇인가. 훈민정음 잔에 붙어 있는 안내글에는 이렇게 써 놨다. “훈민정음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으로 세종대왕의 명에 의해 1443년 창조되었고 1446년에 반포되었습니다. 훈민정음은 한국 고유문자에 대한 해설서임과 동시에 그 문자를 일컫는 명칭이기도 합니다. 국보 70호이며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이 설명글을 영어로 옮겨 놓았고, 훈민정음 서문 전체를 요즘말로 옮겨 놓고 이를 다시 영어로도 옮겨 놓았다. 대단한 성의다. 스타벅스가 훈민정음을 아끼고 사랑하고 홍보하고 있었던 것 아닌가. 고마운 일 아닌가.
자본주의의 상징, 제국주의의 첨병이라고 손가락질했던 스타벅스가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상징하는 훈민정음을 감싸안은 것은, 적어도 나에겐 충격이다. 그렇게 된 경과를 세세히 알아보지는 못했다. 이건 스타벅스가 지닌 관대함일까. 정밀하게 계획한 영업전략일까. 한국 스타벅스 직원들의 슬기로움일까. 스타벅스와 훈민정음, 훈민정음과 스타벅스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면서도 그래서 묘하게 눈길을 끄는 마력이 있는 듯하다.
몇 가지 재미있는 일도 알게 되었다. 스타벅스라는 회사 이름은 허먼 멜빌의 소설 《백경》(Moby Dick)에 나오는 일등 항해사 ‘스타벅’(Starbuck)에서 유래했다. 우리나라에서 스타벅스는 1999년 이화여대 앞에 처음 생겼다. 스타벅스 인사점은 세계에서 최초로 로마자가 아닌 말로 간판을 단 곳으로 유명한데 이것은 인사동 주민의 반발 때문이다. 인사전통문화보존회에서는 “우리 문화 보존에 사명감을 갖고 있는 인사동 주민을 욕되게 하는 몰지각한 처사며 반문화적 영업전략”이라고 비난하며 지점 개설을 반대했고, 한글 간판은 이에 대한 타협안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은어로 이름의 ‘스타’에서 따와 스타벅스를 ‘별다방’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앞으로 스타벅스에 자주 갈 것인가. 그건 아니다. 커피라는, 이 무서울 정도로 매력적이고 맛있는, 음료와 나는 사이가 좋지 않다. 커피를 마신 날 밤엔 잠을 쉽게 잘 수 없다. 촌놈병이다. 다른 큰 이유도 있다. 앞서 말했듯 아무래도 스타벅스에 대한 기존 관념을 무너뜨리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커피값은 다른 커피전문점보다 비싸다, 스타벅스가 성공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약탈적 가격 행위라는 전술과 관련이 있다는 견해가 있다, 2000년대 이후부터 20대 여성들의 과소비 행태를 지칭하는 ‘된장녀’의 논란 가운데 스타벅스의 비싼 제품이 언론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2010년 1월에는 모든 메뉴의 가격을 기습적으로 300원 인상하여 비판을 받았다는 등의 비판 언론보도가 머릿속에서 삭제되지 않고 자꾸만 맴돌고 있는 때문이다.
2018.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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