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대학교병원은 환자 안전과 감염 예방을 위해 병원 안 모든 병동 입구에 ‘스크린 도어’를 설치했다. 이른바 ‘병문안 손님 통제 시스템’ 시행에 들어간 것이다. 9월 1일부터라고 하니 이제 겨우 며칠 되었다.
경상대병원은, 이번 조치는 보건복지부가 지난 2015년 발생한 ‘메르스 사태’의 원인을 무분별한 방문 면회에 따른 감염 확산으로 판단하고 대형 병원들의 병문안 통제시설과 보안 인력 세부 기준을 강화한 것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제부터 입원 환자는 환자 인식표의 바코드(막대 표시)를 이용해 병동을 출입할 수 있다. 보호자는 1명에게만 지급하는 보호자증 뒷면 바코드(막대 표시)를 스크린 도어 앞 판독기에 갖다 대야만 병실을 들락날락할 수 있다.
환자는 늘상 병원 안 병실에 있는 사람이니 이 문을 이용하는 데 큰 불편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병문객의 경우 조금 복잡해질 수 있겠다. 보호자 1명에게만 지급하는 보호자증이 없으면 병실을 들어가고 나갈 수 없으니 미처 예상하지 못한 불편이 생길 것이다. 이러한 제도에 적응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걱정해 본다. 이참에 문병문화가 긍정적으로 바뀌어 간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경상대병원은 이 같은 사실을 언론을 통하여 아주 많이 홍보했다. 덕분에 많은 사람이 병문안 갈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혀 모르거나 대충 알고 있는 사람도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건, 내가 병문안 갈 일이 있거나 환자로 입원한 경우가 아니면 흘려보기 쉽기 때문이다. 나는 왜 이 뉴스를 눈여겨봤을까. 바로 ‘스크린 도어’라는 말 때문이다.
병원에는 젊은 사람도 입원하고 병문안을 가지만, 나이 든 어른들도 아주 많을 것이다. 도시에 사는 사람도 많지만 시골에서 농사 짓거나 고기 잡는 분들도 많이 찾는다. 특히 경상대병원은 더 그렇다. 경남도내 유일한 상급 종합병원이기 때문이다. 지나친 우려인지 몰라도, 이 병원을 이용하는 많은 사람은 ‘스크린 도어’라는 말을 잘 모를 것 같다. 그 쓰임새도 처음에는 잘 몰라 우왕좌왕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병원에서 충분히 설명하고 안내해 줄 것으로 믿는다.
스크린 도어(Screen Door)는 지하철이나 전철역의 승강장에 설치해 차량의 출입문과 더불어 여닫을 수 있도록 만든 안전시설의 일종이다. 보통 때는 닫혀 있다가 전동차가 도착하면 자동으로 열리고 전동차가 떠날 즈음 자동으로 닫힌다. 긴급 상황에서는 누구나 손으로도 열 수 있다.
1961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지하철역에 최초로 설치한 이후 영국, 프랑스, 일본, 홍콩, 싱가포르 등의 도시 철도 노선에 주로 사용되어 왔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2004년 개통한 광주지하철 1호선 문화전당역(당시 도청역)과 금남로4가역에 처음 설치했다. 2006년 이후 건설한 역사의 경우 스크린 도어 설치를 의무화하도록 도시철도법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한다.
스크린 도어에서 스크린은 병풍, 칸막이, 칸막이벽이라는 말이다. 극장에서 보는 영사막 또는 은막이라고 하는 것도 스크린이다. 아무튼 스크린은 칸막이라고 보면 된다. 이 칸막이가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자동으로 또는 수동으로 열고 닫히는 문이 되었다. 그러니 스크린 도어인 것이다.
왜 이 스크린 도어를 설치하는가. 경상대병원은 환자 안전과 감염 예방을 위해서라고 했다. 지하철에서는 승객의 안전을 위해 비싼 돈 들여 설치한다. 일반 승객을 안전하게 하는 것도 맞고, 어쩌다 삶에 지친 사람이 스스로 뛰어내리려는 것을 막는 구실도 한다.
8월 31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중앙역에서 22살 여성이 전동차가 달려오는 데도 뛰어내리는 바람에 숨졌다. 여기서는 8월 2일과 2015년 12월, 7월에도 사람이 뛰어내려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투신사고가 이어지는 데도 스크린 도어를 설치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는 언론 보도가 잇따랐다. 스크린 도어를 설치하면 이런 끔찍한 사고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스크린 도어를 설치하는 건 ‘안전’을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스크린 도어는 우리말로는 ‘안전문’이라고 한다. 경상대병원 병동 입구에 이 안전문을 설치함으로써 환자나 병문안 손님이 감염 위험에 노출될 우려가 줄어든다. 안전하게 입원 치료를 받을 수 있고 안전하게 병문안을 할 수 있게 된다. 지하철 역에 안전문을 설치하면 전동차에서 내리는 사람과 전동차에 타려는 사람이 이런저런 갑작스러운 상황으로 철로 바닥으로 떨어지는 일이 줄어든다. 안전한 지하철이 되는 것이다. 스스로 뛰어내리려는 사람도 막아 준다. 순간적으로 뛰어내리려던 사람도 안전문 때문에 멈칫한 뒤 마음을 고쳐먹을지 누가 알겠는가. 그러니 안전문이다.
안전문을 스크린 도어라고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아시아 여러 나라로 번져온 이 안전문을 우리나라에 도입할 때 이름을 잘못 붙인 탓이다. 국회에서 관련 법을 만들 때 잘못 붙였는지 아니면 이를 언론들이 보도하면서 잘못 붙였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아무튼 안전문을 스크린 도어라고 부르는 데는 ‘외국어라면 무조건 좋게 보는 심리’가 깔려 있지 않을까 싶다. 이른바 ‘식자층’은 나날살이에서 외국어 한두 마디를 섞어 쓰지 않으면 입안이 간질거리는 ‘외국어병’에 걸린 게 아닌가 의심해 본다. 그러지 않고서는 안전문을 스크린 도어라고 할 까닭이 도무지 없을 것 같다.
더군다나 지하철이건 병원이건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이런 시설물에 이름을 붙이고 사용법을 설명할 때는 더 쉽고 더 편하고 더 간단하고 더 아름다운 우리말로 하는 게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밀물처럼 밀려 들어오는 외국말, 잡탕말, 국적불명어, 철딱서니 없이 만들어진 유행어들로부터 우리말을 안전하게 지켜 줄 ‘안전문’은 어디에 있을까.
2017.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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