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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과 글을 보는 내 눈

‘블라인드 채용’으로 비리를 없앨 수 있을까

by 이우기, yiwoogi 2017. 9. 14.

강원랜드라는 게 있다. 주식회사 강원랜드는 석탄산업 사양화에 따른 폐광지역 경제회생을 위해 관광산업을 육성할 목적으로 폐광지역 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19986월 설립된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의 공공기관(기타공공기관)이다. 왜 느닷없이 강원랜드를 들먹이는가. <경향신문> 사설에서 몇 마디 옮겨온다. “강원랜드가 2012~2013년 채용한 신입 사원 518명 가운데 95%493명이 국회의원 청탁 등으로 부정 입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자유한국당 권성동 의원은 자신의 비서관 출신을 포함해 10명 이상을 청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당 염동열 의원도 80여 명의 인사를 청탁해 20~30명이 채용됐다고 한다.”

 

심호흡을 하고 계속 읽어보자. “심각한 것은 검찰이 이에 대한 수사를 벌이고도 면죄부를 줬다는 점이다. 2014년 함승희 사장이 취임한 뒤 강원랜드는 이 같은 비리를 자체 감사로 밝혀내고 20162월 춘천지검에 수사를 의뢰했다. 그러나 검찰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1년 넘게 시간을 끌다가 박근혜 정권 탄핵 후인 지난 4월에야 최흥집 전 사장과 권모 전 인사팀장 2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는 데 그쳤다. 권 의원이나 염 의원 등 청탁자들에 대해서는 소환조사도 하지 않았다. 최 전 사장은 강원랜드 사장에서 물러난 뒤 20145월 지방선거에서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 강원지사 후보로 출마했다. 검사 출신인 권 의원과 염 의원은 모두 당시 여당 소속으로 지역구가 강원이다. 집권정당 인사인 데다 지역의 현역 국회의원이라는 이유로 검찰이 눈감아줬다고밖에 볼 수 없다.”

 

이 기사를 읽노라면 분노가 치민다. 이를 아드득 소리 나게 갈게 된다. 주먹을 꽉 쥐고 책상을 쾅 내리치거나 벽을 힘껏 쥐어박고 싶다. 권 아무개, 염 아무개 같은 더러운 이름을 쓰고 싶지 않다. 이러한 자들이 그동안 이명박근혜 정부 시절 국회의원이랍시고 어깨 힘주고 똥폼 잡고 다녔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이런 놈들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며 법을 만들고 정부를 운영하는 데 기웃거렸다는 게 억울하다.

 

청년실업률이 외환위기 이후 최악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청년 체감실업률은 22.5%로 올라신규취업자 수 4년반만에 최소같은 기사가 보인다.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새 정부 정책이 민간 기업의 신규 채용을 더욱 위축시킨다는 우려도 나온다.”고도 보도한다(동아일보). 나는 새 정부 정책이 민간 기업의 신규 채용을 위축시킨다는 데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강원랜드 사건은 이를 뒷받침한다. 아무튼 이런 기사와 강원랜드 사건을 나란히 놓고 바라보고 있는 심정은 참담하다. 분통 터진다.

 

<사진: 동아일보>

문재인 대통령은 2017622공공부문 블라인드 채용 의무화를 제시한 뒤, 75일엔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을 위한 블라인드 채용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20177월부터 모든 공공기관의 입사지원서에서 편견이 개입될 수 있는 항목이 모두 삭제된다. 공무원 공채뿐만 아니라 경력 채용에도 블라인드 채용이 도입된다. 332개의 모든 공공기관은 20177, 149개의 지방공기업은 해당 공기업의 인사담당자 교육 이후 8월부터 블라인드 채용이 도입된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말이 많았다. 역차별 논란도 있었다. 9월 현재, 이 방안은 제대로 추진되고 있을까?

 

블라인드 채용이란 무엇인가. ‘보지 못하는이라는 뜻의 영어 블라인드(Blind)사람을 골라서 씀을 뜻하는 채용(採用)의 합성어이다. , 누군가를 채용할 때 학력, 경력, 자격증, 어학점수, 해외활동 등 흔히 스펙이라고 하는 요소를 보지 않고 그 사람의 인성, 업무와의 적합성 등을 고려하여 채용하는 것을 의미한다(나무 위키). 기본적인 의문은 이것이다. ‘학력, 경력, 자격증, 어학점수, 해외활동 같은 스펙을 보지 않고 업무와의 적합성을 어떻게 판단할 것이며, ‘그 사람의 인성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아무튼 우리 사회에 좀더 맑고 투명한 채용문화가 생겨나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기회에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기를 간절이 기대해 본다.

 

블라인드가리개’, ‘(정보) 가림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블라인트 테스트정보 가림 평가’, ‘블라인드 트러스트백지 위임’, ‘블라인드 홀가려진 홀이다. 국립국어원에서 제시하고 있는 순화어이다. 그렇다면 블라인드 채용정보 가림 채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원자의 학력, 경력, 자격증, 어학점수, 해외활동 같은 스펙을 모두 가린 상태에서 채용하는 방식이니까.

 

창문에 달아 햇빛을 가리는 물건을 블라인드라고 한다. 블라인드라는 미국말을 널리 쓰기 전에는 차양’(遮陽)이라는 중국글자말이 득세했다. 차양은 햇볕을 가리거나 비가 들이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처마 끝에 덧붙이는 좁은 지붕을 가리키기도 하고, ‘햇빛을 가리기 위해 모자의 앞이나 주위에 둘러붙인 부분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은 차양이라는 말은 통 모르고 블라인드만 아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햇볕을 가리기 위해 이마를 손으로 가리는것을 가리키는 손차양이라는 말도 사라져가고, ‘눈썹 주위에 손을 대어 만든 차양이라는 뜻의 눈썹차양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블라인드가 차양을 몰아낸 것이다.

 

블라인드 채용차양 채용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열에 아홉 명은 웃을 것이다. 어색하기 때문이다. 국립국어원에서 일러주는 것을 따라서 정보 가림 채용이라고 해 본다. 역시 매끄럽지는 않아 보인다. 신입사원을 뽑을 사람이 지원하는 사람의 많은 정보를 보지 못하도록 눈을 가리는 것이니, ‘눈 가림 채용이라고 하면 어떨까. ‘블라인드 채용보다는 훨씬 쉽다. ‘눈 가림 채용이라고 하니, 지원자의 서류에 이것저것을 적지 않도록 한다는 뜻보다는, 실제 면접 현장에서 면접관들이 눈에 안대를 대고 면접을 보는 장면이 먼저 떠오른다. 그렇더라도 블라인드 채용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낫다.

 

강원랜드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어 가는지 눈여겨봐야겠다. 취업 절벽의 시대 온 국민이 고통받고 있을 때 권 아무개, 염 아무개 같은 나쁜 작자들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자신이 아는 모모한 사람들을 임직원 연봉 7000만 원짜리 강원랜드에 취직시켜 온 것이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고함을 칠 만한 사건이다.

 

<경향신문> 사설을 더 읽어본다. “공기업 채용비리는 비단 강원랜드만의 문제는 아니다. ‘친박계이정현 의원의 조카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 점수 조작으로 입사한 정황이 드러났다. 한국디자인진흥원도 감사원으로부터 채용비리가 적발돼 최근 원장이 물러났다. 한국가스안전공사도 사장이 지명한 수험생들의 면접 점수를 조작하다 감사원에 적발됐다. 8월 현재 청년실업률은 9.4%18년 만에 최악이다. 채용비리가 근절되지 않으면 젊은이들의 절망감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공기업 채용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검찰도 기득권 세력의 먹잇감으로 전락한 강원랜드 등 공기업에 대한 철저한 수사로 비리 관련자들을 엄벌해야 한다.”

 

이런 공기업들이 눈 가림 채용을 한다면 좀 나아질까. 지원자의 이런저런 기록을 가린다고 공정하고 투명하게 채용하는 바람직한 문화가 뿌리내리게 될까. 나는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이른바 적폐세력들은 이런 방침에 대해 콧방귀를 뀌며 제멋대로 채용과정을 농락할 것이다. 자기들끼리 패거리를 만들어 서로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밀어주고 끌어주며 나라를 농락할 것이다.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이 어디서 뜯어먹다 버린 개뼈다귀냐며 비웃을 것이다. 어쩌다 들키면 재수없다며 침을 찍 뱉으며 돌아서서 웃을 것이다. 수십년 묵은 이 못된 범죄를 맑은 하늘 아래에서 온 국민이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처벌하지 않고는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2017. 9.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