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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과 글을 보는 내 눈

정말 멋진 손흥민의 ‘골뒤풀이’

by 이우기, yiwoogi 2017. 9. 15.

손흥민이라는 축구 선수가 있다. 국가 대표이다. 웬만해선 모를 리 없다. 얼마 전 열린 러시아 월드컵 최종 예선에도 나왔다. 골을 넣지는 못했지만 그나마 기억에 남을 만한 경기를 했다. 25살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차분하고 여유 있다. 차범근, 박지성의 뒤를 이을 기대주라는 말이 많다. 영국의 토트넘 홋스퍼 소속이라는데 이 팀이 경기하는 걸 자세히 볼 겨를은 없다. 어쩌다 방송 뉴스에서, 신문 지상에서 그의 활약상을 보곤 한다. 믿음직하다.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다가 손흥민을 만났다. 파란 잔디 위에 흰 운동복을 입은 그는 무릎을 꿇은 채 미끄러져 가고 있었다. 달려온 속도감을 종이신문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볼이 불룩하게 부풀어 오른 것으로 보아 몸 속에 있는 공기를 마음껏 내뿜는 것 같다. 그 공기는 월드컵 최종 예선에서 국가 대표팀이 한 골도 넣지 못한 데 대한 어떤 감정의 찌꺼기 아니었을까. 표정은 알들 말 듯하다. 자신감이 가득 찬 건 분명했다.

 


사진 설명을 보았다. 2017~2018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H조 조별리그 도르트문트와의 홈 1차전에서 전반 4분 선제골로 3-1 승리를 거들었다는 내용이다. 챔피언스리그에서 골을 추가하면서 통산 다섯 골로 박지성이 가지고 있던 한국인 최다 골 기록도 갈아치웠다고 한다. 내가 본 사진은 손흥민이 골을 터뜨린 뒤 골뒤풀이를 하는 장면이다. 신문에서는 전반 4분 선제골을 터뜨린 뒤 골뒤풀이를 하고 있다.’고 적혀 있다. 자랑스럽다. 이런 그림을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보았더라면 얼마나 많은 국민이 얼마나 좋아했을까 생각하게 된다. 아쉽다.

 

모든 경기가 마찬가지지만 축구는 유달리 골을 넣은 뒤 화려한 뒤풀이로 관객의 관심과 흥미를 돋우기로 유명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미국 골대를 가른 안정환, 이천수 선수가 나란히 서서 스케이트 타는 장면을 연출했다. 그 전 동계올림픽에서 미국의 안톤 오노 선수가 할리우드 액션으로 우리나라 김동성 선수의 금메달을 뺏어간 데 대한 항의였다. 안정환은 손가락에 낀 반지에 입맞춤을 함으로써 반지의 제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국민들은 열광했다.

 

축구에서 골을 넣은 뒤 펼치는 뒤풀이는 개인적인 사연을 담기도 하고 나라와 나라 사이의 어떤 일을 보여주기도 한다. 경기장에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것을 엄격히 막고 있지만 순간순간 터져나오는 골뒤풀이를 이용하여 선수들은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스포츠는 총성 없는 전쟁이라는 말이 있다. 축구는 이 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종목이다. 그 까닭은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아침에 본 신문은 <한겨레>이다. 한겨레는 1988515일 창간호부터 한글로만 써온 것으로 유명하다. 제호도 한글이다. 하긴, ‘한겨레를 한자로 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이름을 지은 것부터가 남다르다. 한글전용으로 신문 만들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다들 DJ, YS, JP라고 할 때 한겨레는 어떻게 썼을까. 한자도 더러 섞어 쓰면 더 재미있는 표현을 많이 만들 수 있었을 텐데 한겨레 편집기자들은 좀 답답하게 여기지 않았을까. 국제화 시대에 외국과의 교류가 다반사가 된 세상에 한글로만 신문을 만든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까.

 

한겨레는 손흥민 사진 밑에 골뒤풀이라고 썼다. 보통 다른 신문들은 골세리머니라고 썼을 것이다. 하나하나 확인하지는 않았다. 국립국어원은 골 세리머니’(goal ceremony)득점 뒤풀이로 순화하라고 하는데, 그냥 골뒤풀이라고 썼다. ‘득점 뒤풀이처럼 두 낱말로 쓰지 않고 숫제 골뒤풀이로 한 낱말로 보았다. ‘득점 뒤풀이골뒤풀이에는 작은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 두 낱말은 골세리머니와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생각의 차이, 느낌의 차이, 실천의 차이가 큰 강이 되어 가로놓여 있는 것이다.

 

뒤풀이는 무엇인가. ‘어떤 일이나 모임을 끝낸 뒤에 서로 모여 여흥(餘興)을 즐김. 또는 그런 일이다. 간혹 뒷풀이로 쓰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틀렸다. 사이시옷()이 들어가면 안 된다. 뒤풀이를 후렴잔치라고도 했다. 한 세대 위 사람들은 이 말이 더 익숙했다. 더 널리 쓰이지 못한 까닭이 있을 것이다. ‘쫑파티라는 말도 뒤풀이와 같은 뜻이다. 일반적으로 어떤 일이나 모임 뒤에 하는 모임에는 어울리는 말이지만, 축구 경기에서 골을 넣은 뒤 하는 행동을 가리키지는 못한다. 요즘 학생들은 학기가 끝나면 종강파티라는 걸 한다. ‘학기 뒤풀이가 아니라 종강 파티.

 

골세리머니는 쉬운 말이 아니다. 세리머니는 의식, 의례, 이라는 뜻인데 이게 어렵다는 게 아니다. ‘세리머니라는 표기가 어렵다. 왜 그런가. 세러머니, 세리모니, 세레머니, 세러모니, 세레모니처럼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이건지 저건지 헷갈려 하다가는, ‘외국어는 그냥 좀 틀려도 괜찮아.’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정확한 영어 발음은 세러모우니처럼 들리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세리머니가 정확한 표기다. 외국어 가운데 특히 이런 말처럼 표기하는 게 어려우면, 그럴 때는 그냥 쉽게 우리말로 쓰면 된다. ‘득점 뒤풀이아니면 골뒤풀이.

 

내가 본 골뒤풀이 가운데 가장 멋진 장면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본 스케이트 타는 장면과 안정환 선수의 반지 입맞춤이다. 간혹 빙글빙글 공중제비를 넘는 선수도 있다. 제딴에는 멋있게 보이려고 재주를 부리는 것이겠지만, 내가 보기엔 어슬프고 불안하다. 공중제비는 서커스 단원에게 맡기고 축구 선수는 그에 걸맞게 적당한 정도의 뒤풀이를 보여주면 좋겠다.

 

2017. 9.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