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돈우라는 분이 있다. 어느 대학에서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2001년부터 대한민국 국립경찰로 활동하고 있다. 2013년 대한민국 인권상을 받았는데, 아마 경찰로서 활동을 잘 하시는 분 같다. 책을 몇 권 내었는데 그중 두 권이 눈길을 끈다. 하나는 <영어에 미친 나라 대한美국>(좋은땅, 370쪽, 2014년)이고 다른 하나는 <외국어로 얼룩진 우리말 바루기 말광>(지식과감정, 331쪽, 2016년)이다. 제목만 봐도 딱 알겠다.
앞의 책 <대한미국>은 우리말과 글에 만연한 미국말과 글(영어)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책이고 뒤의 책 <말광>은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우리말과 글 속에 뒤섞여 있는 미국말과 글을 우리말과 글로 순화하는 ‘사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책 두 권을 사 놓고 여태 꼼꼼하게 읽지는 못했지만 중간중간 필요한 부분을 자주 찾아본다. <말광>은 아주 자주 뒤져보는데 꽤 유용하다. 나는 최돈우라는 분을 한번도 뵌 적이 없지만, ‘선생님’으로 부르기로 한다. 많이 배우고 있으니까.
최돈우 선생님은 <대한미국>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조선시대에 10%도 못 미치는 특정 계층인 양반이 중국 사대주의의 영향을 받아 그들만의 언어인 한자를 사용하면서 중하층 계급의 일반 백성들 위헤 군림하고 그들을 압제하며 온갖 인권침해를 일삼음으로써 철저한 계급사회 속에서 그들만의 기득권을 행사해 왔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미국을 대표하는 영어 신(新)사대주의에 빠진 상위 10%에도 못 미치는 특정 계층은 그들만의 언어인 영어를 이용하여 그들만의 새로운 계급사회를 만들려고 한다.” 동감한다.
최돈우 선생님은 <대한미국>을 통하여 우리 사회에 영어가 얼마나 혼재해 있으며 그로 인해 우리말ㆍ글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짚어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실생활에서 쉽게 쓰고 많이 쓰는 용어들을 중심으로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등 각 분야의 전반적인 실태를 종합적으로 다루기 위해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예를 찾으려고 노력했다고 밝히고 있다.
<대한미국>의 서론에 해당하는 딴죽걸기에서 ‘영어 망국병’, ‘한글의 우수성’, ‘영어에 대한 불편한 진실’, ‘한국인의 한국어 수준’, ‘영어 교육 무엇이 문제인가’, ‘언어의 기능’ 등을 다루고 있다. 본론인 본때뵈기에서는 생활, 정치, 경제, 교육 출판, 문화, 교통 전자통신, 체육 부문에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수많은 용어에 영어가 얼마나 많이, 대책 없이, 노골적으로 쓰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결론에 해당하는 숨고르기에서는 다시 ‘아름다운 한글’과 ‘외래어 순화’라는 주제를 이야기한다.
우리말과 우리글에 얼마나 많은 영어가 섞여 있는지를 알게 된다면, 그리고 그것을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있는 우리를 바라본다면 부끄럽고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할 지경이다. 광복 이후 우리말에 섞여 있는 일본어 찌꺼기 들을 몰아내기 위하여 지난 수십 년 동안 많은 국어학자와 우리말 운동가들이 그토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일본말로부터는 어느 정도 해방되었다고 여겼는데, 그동안 우리는 영어(미국말)라는 새로운 언어제국주의의 식민지배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들의 나날살이에서 벤또(도시락), 오뎅(어묵), 다꾸앙(단무지), 다마네기(양파), 와리바시(젓가락), 우와기(양복), 쓰메키리(손톱깎기), 사라(접시) 같은 일본말은 거의 쓰지 않는다. 대신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영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말을 몇 가지 섞지 않고서는 한 문장도 말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어찌할 것인가. 우리 정신마저 점령해버린 이 무지막지한 미국말 쓰레기를 어찌할 것인가.
더 걱정스러운 것은, 광복 이후 국어학자나 우리말 운동가들이 일본말 찌꺼기를 쓸어 없애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면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에 동조하였다. 힘을 합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지금 미국말 쓰레기를 없애야 한다고 하면, ‘꼭 그럴 필요가 있는지 오히려 우리의 말글살이를 풍요롭게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게 되었다. 어찌할 것인가. 최돈우 선생님 이야기를 들어본다.
최돈우 선생님은 <말광>에서 이렇게 말한다. “날마다 여기저기 쏟아져 나오는 잡탕 외국어 홍수에 맞서려면 평생을 들여도 모자랄 판이다. 세월 따라 변하는 게 말이라지만, 어쩌면 이렇게도 민ㆍ관을 막론하고 언론ㆍ정치ㆍ문화ㆍ사회 곳곳에서 보란 듯이 앞다투어 우리말을 헌신짝처럼 여기고 한결같이 외국어를 좋아하고 섬기는지 참으로 안타깝고 놀라울 따름에 분노를 넘어 눈물이 날 지격이다.”
최돈우 선생님은 “어떤 사람들은 영어보다도 일본어 잔재를 쓸어내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순수 일본어는 그동안 어느 정도 순화되었고 뜻이 비슷한 말은 그대로 써도 무방한 것들이 많아 우리말을 망가트리지는 않는다고 보나, 뜻도 모르고 쓰거나 외국인들오 못 알아보는 잘못된 외국어를 쓰는 것은 소통을 가로막고 우리말을 오염시켜 결국은 우리말을 죽게 하므로 반드시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도 말한다.
<말광>은 외국어와 우리말이 혼합된 말 가운데 우리말 형태로 표기되는 것들, 외국어와 우리말이 혼합된 말 가운데 외국어로 표기되는 것들, 외국어 약자로 된 단어들 모두 1300단어를 골라 실었다.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신조어나, 뜻도 모른 채 습관적으로 쓰는 것들, 외국인도 못 알아듣는 잘못된 표현들, 새롭게 쏟아져 나오는 요상한 표현들을 중심으로 골랐다고 한다. <말광>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들만이라도 제대로 순화하여 쓴다면 훨씬 나아질 것이다. 누가 먼저 할 것인가.
언론이 앞장서야 한다. 신문과 방송, 잡지 들이 먼저 미국말 쓰레기를 치워버리고 우리말을 살려 쓰는 데 앞장서야 한다. 자기가 쓰는 말과 글에서 먼저 그렇게 하고 난 뒤, 다른 정부기관이나 단체 들에서 잘못 쓰고 있는 미국말도 열심히, 꾸준히 지적해야 한다. 초중고등학교와 대학에서도 영어를 버려야 한다. 꼭 필요한 것조차 버리자고 하는 건 아니다. 쓰잘데없이 갖다 쓰는 영어를 버려야 한다. 그 이론적 뒷받침은 국립국어원 같은 국가기관이나 우리말 운동가들이 해줄 것이다.
온 세상이, 온 국민이 영어병에 미쳐 있는 마당에 쉬운 일은 결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최돈우 선생님 같은 분이 자꾸 나오고, 최돈우 선생님만큼은 아니지만 이런 분들이 내는 책을 읽고 주장하는 바를 열심히 따라하도록 노력만 해도 그 힘은 아주 커질 것이다. 최돈우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열심히, 꾸준히 따라 배우고자 한다.
2017.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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