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향’(偏向)이라는 말이 있다. ‘한쪽으로 치우치다’는 뜻이다. 이 말은 주로 이론이나 사상이 한쪽으로 치우친 경우에 많이 쓴다. “저 사람은 사상이 편향적이다”라고 하거나 좀더 직접적으로 “그 놈은 사상이 좌편향적이어서 문제다”라고들 쓴다. 이론이나 사상이 편향적이어서 ‘좋다’고 말하는 경우는 단 한번도 없다. 그러니까 편향적인 것은 좋지 않은 것이다.
편향이라는 말은 ‘좌편향’, ‘우편향’, ‘편향된 역사관’, ‘편향된 교육관’, ‘이념적 편향성’, ‘사상의 편향성’처럼 쓰인다. 언론 기사 제목에도 자주 보인다. ‘국정교과서 편향ㆍ오류 사례 살펴보니’(영남일보), ‘'문화계 편향단체 지원 차단 조치 문서' 든 도종환 의원’(뉴스1), ‘김부겸 “민주연구원, 특정 후보 편향 활동 우려”’(매일일보), ‘갤럽 미국인 52% “美 대선 언론보도 힐러리에 편향됐다”’(서울경제)
언론 기사 제목만 언뜻 봐도 무엇이든 편향된 것은 안 좋은 것이다. 그렇다 치자. 그러면 편향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중도, 중립, 중용이 아닐까. 중도(中道)는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바른길이라는 말이다. 중립(中立)은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중간적 입장을 지킨다는 뜻이다. 나라 사이의 분쟁이나 전쟁 따위에 관여하지 않고 중간 입장을 지킬 때도 이 말을 쓴다. 중용(中庸)은 과하거나 부족함이 없이 떳떳하며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는 상태나 정도를 가리킨다.
편향된 것이 나쁜 것이고 중도, 중립, 중용이 좋은 것이라면 사람들은 되도록 중도, 중립, 중용한 사람이 되려고 애쓸 것이다. 정치인도 그렇고 학자도 그렇고 연예인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도 편향이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되는’ 것을 보니 실제 세상살이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중도, 중립, 중용을 지키기에 그만큼 어렵다고 할지, 아니면 그건 아예 불가능하다고 할지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는 편향이라는 말을 우리 편한 대로 마음대로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보다는 ‘중’에 가까워지도록 노력해야 하는 건 아닌가 싶다.
그러면 한쪽이 다른 한쪽을 가리켜 ‘편향됐다’고 할 때 그것은 무엇을 나타낼까. 과연 그 말은 온당하게 쓰인 것인지 그렇게 말하는 쪽은 전혀 편향되지 않은 것인지 궁금해진다. 생각을 이어가 본다. 재미는 없지만, 어쩐지 꼭 필요한 일 같다.
어떤 언론에서 이렇게 보도했다. “○○시는 A 의원의 정치적 편향성을 이유로 다른 의원으로 재추천해 줄 것을 시의회에 요구했다. ***** 담당 부서인 △△△실은 재추천과 관련해 “편향된 위원이 위촉될 경우 양극화로 인해 위원회 운영에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밝혔다.”(보도한 언론 이름과 시 이름, 시의원 이름은 밝히지 아니함) ‘정치적 편향성’, ‘편향된 위원’이라는 말이 두 번이나 나왔다. 역시나 둘 다 좋은 뜻으로 쓴 것은 아니다.
이때 말하는 ‘정치적 편향성’이란 어떻게 해서 나온 말일까. 시의원의 과거 행적, 쓴 글, 한 말 등을 종합하여 내린 결론이라고 해두자.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말과 글이 편향되었는지 몇 가지 사례라도 밝혀야 할 것 같다. 그렇지 못한다면 그냥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를 두루뭉술하게 편향되었다고 표현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을 것이다. 시가 하려는 여러 가지 일에 대하여 문제를 지적하거나, 같은 정당 출신 시장과 시의원들이 이러저러하게 짬짜미하려는 것에 대하여 집요하게 시비를 건 것을 두고 정치적으로 편향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을지도 모른다. 맑은 하늘 아래에서 그럴 리가 없을 것이라고 일단 생각해 둔다.
한 시의원을 두둔하거나 편들거나 변호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그동안 해온 의정활동에 좋은 점수를 주어 그 시의원에게 투표한 유권자들이나 그를 공천한 정당의 처지에서 본다면, 그 상대편에 서서 정치적 편향성 운운하는 사람들 역시 또다른 정치적 편향성을 갖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것이다. 한 시의원을 편향성 운운하면서 어떤 정책이나 사업에서 배제하려고 했을 때, 그 판단을 내리는 쪽 역시 지독한 편향성을 갖고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다. 그리하여 새롭게 추천받아 임명되는 시의원은 과연 정치적 편향성이 전혀 없는, 중도, 중립, 중용의 태도를 완벽하게 갖춘 사람일 것인가 묻고 싶은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 편향성이라는 것은 이쪽에서 보면 저쪽이 편향된 것이고, 저쪽에서 보면 이쪽이 편향되게 보이는 것 아닌가. 정치라는 무대에서 무대의 왼쪽에서 보면 오른쪽이 우편향이고, 오른쪽에서 보면 왼쪽이 좌편향인 것 아닌가. 무대 한 가운데에서 보면 양쪽 다 편향되어 있는 것 아닌가. 지극히 당연한 상식 아닌가. 애초에 그렇게 꾸며진 무대인데 정치적 편향성이라면서 상대방을 공격하면 좀 곤란할 것 아닌가. 서로 서 있는 지점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다만 상대방을 공격하고 깎아내리려고 할 때 객관적ㆍ합리적 근거를 갖고 해야 할 것 아닌가.
따라서 한 시의원에 대하여 정치적 편향성 운운하면서 어떤 정책이나 사업에서 배제하려고 한다면 그가 그동안 해온 많은 일과 써 온 글, 해 온 말을 종합 분석하여 객관적인 결론을 내어 보여주든지 아니면 많은 자료 중 구체적으로 근거없이 비합리적ㆍ비논리적으로 일관한 사례가 있으면 그것 몇 가지라도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정치적 편향성 운운한 쪽의 객관성을 조금이라도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시 쪽은 ‘어떤 까닭으로’ 평소 마음에 들지 않았거나 밉보인 시의원 한 명을 여론재판에 올려놓고 막무가내로 깎아내리려 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어떤 까닭이란, 평소 시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하여 돋보기를 들이대 놓고 세심하게 관찰하고 비교ㆍ분석하고 문제점을 들추어내어 비판해 온 것을 말할 것이다. 그 어떤 까닭이란, 그러한 관찰과 분석과 비판을 전혀 두려움 없이 타협 없이 일관되게 해온 것을 말할 것이다.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는 이라면 누구든지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라고 본다.
생각을 조금 다르게 해 본다. 국회의원이 정부의 정책에 대하여 비판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당연하듯이, 시의원은 시정에 대하여 비판하고 견제하는 것이 또한 지극히 당연하다. 아니 그들의 본래 의무이자 존재 이유이다. 평소 시정에 대하여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는 쪽을 편향적이라고 몰아세운다면, 반대로 평소 시정에 대하여 거수기 노릇을 하는 쪽도 편향적인 것은 마찬가지 아닌가. 앞의 경우에는 시의원으로서 역할을 다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뒤의 경우는 자신이 왜 시의원이 되었는지조차 모르는 것이라고 시민으로부터 비난받을 일 아닌가.
한쪽이 다른 한쪽을 향하여 “편향되었다”라고 말하는 순간 자신도 편향된 인식을 갖고 있음을 자백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간혹 이러한 비판이 필요한 때가 있다. 어느 쪽으로든지 지나치게 한쪽으로만 나아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새가 좌우의 날개로 날고, 수레에 오른쪽과 왼쪽 두 바퀴가 있듯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에서 상대방을 향하여 편향되었다고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중요한 것은, 무엇이 얼마나 편향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편향이라는 말에 대하여 이러저러하게 생각을 붙여 나가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나 또한 이 글이 가진 편향성을 부정할 수 없다. 지나치게 중도, 중립, 중용을 지키려고 한 말이나 글은 소의 하품이나 개의 날구지보다 못할 수도 있다. 특히 정치적 입장이 개입되는 말이나 글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정치적 입장이 개입되는 말이나 글에서는 중도, 중립, 중용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는 게 맞다. 그러니 나는 이 글을 쓴 것에 대하여 소 하품이나 개 날구지보다는 훨씬 값어치 있는 노동을 하였다고 스스로 위안 삼는다.
2017.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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