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편한세상 동래명장’ 아파트 입주자 모집 공고>가 신문에 났다. 부산일보 12월 14일자 7쪽이다. 읽을 수 있는 글자는 큰 제목과 맨끝에 있는 ‘12.16(금) 모델하우스 오픈’이라는 것밖에 없다. 그래도 사람들은 16일 모델하우스를 찾아가긴 하겠다.
같은날 <산업통상자원부 공고 제2016-643호 2017년도 산업기술혁신사업 통합 시행계획 공고>가 신문에 났다. 조선일보 20쪽이다. 이 분야에 관심 있거나 관련 있는 사람에게는 꽤 중요한 정보이지만 읽을 수 있는 글자는 제목밖에 없다. 4개 기관이 합동으로 공고를 냈는데 꼬라지가 이렇다.
사람 놀리는 일이다. 안하무인이다. 인간 모독이다. 능멸이다. 사람 무시하고 희롱하고 업신여기는 짓이다. 사람 억장 무너지게 하는 일이다. 왜 이런 식의 공고를 굳이 신문에다 하는지 알 수 없다. 전화하여 욕을 해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같은 놈 될까 봐. 신문을 확 찢어버리려다가, 참았다. 화 내면 나만 바보 되니까.
아마 어떠어떠한 내용은 일간신문에 반드시 공고하여야 한다는 규정이 있겠지. 반드시 공고하라고 하니까 하긴 하는데, 돈이 많이 드니까 읽을 사람이야 눈깔이 빠지든 말든 깨알보다 작게 박아 넣은 것이겠지. 읽어야 할 사람이 읽었든 말든 공고는 했으니까 말이다.
일간신문에 공고하라고 한 것은, 1960~70년대 또는 1980년대 인터넷도 없고 당연히 홈페이지같은 게 없던 시절 관공서에서 하는 일을 일반 국민이 잘 알아볼 수 있도록 안내하기 위해서 만든 제도일 것이다. 그때 시청이나 동사무소, 경찰서 같은 관청 앞에는 게시판이 있어서 이러저러한 공고문을 다닥다닥 붙여놓곤 했다. 거기에 붙여 놓은 것만으로는 모자란다 싶어 신문을 활용한 것일 테지. 신문을 읽는 집이 몇 집이나 되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안 하느니보다는 나앗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세상인가.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미국, 영국에서 일어나는 일도 실시간으로 찾아볼 수 있는 세상 아닌가. 아무리 많은 문서라도 깨끗한 흰종이에 원본대로 출력하여 볼 수 있는 시대 아닌가. 이런 시대에도 신문 공고라는 게 굳이 필요할까 싶다. 보지도 않고 읽지도 않을 내용을 빽빽하게 박아 놓고는 공고하는 의무를 다했다고 하게 해주려는 것 말고 무엇이란 말인가. 신문사로서는 돈벌이가 되겠지.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관공서 게시판에만 붙여 놓거나 인터넷 홈페이지에만 올려 놓는 것보다는 그나마 더 많은 사람이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길일 수는 있겠다. 그리고 중간에 어떤 까닭으로 공고 내용을 바꿔치기할 여지를 사전에 막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증거가 있으니까. 큰글씨로 적힌 제목만으로도 정보를 알리는 효과가 없다고 할 수는 없겠다. 많이 봐주는 거다.
그러던 중 오늘 신문에 <서울주택도시공사 공고 제43호 오금지구 1단지 분양주택 입주자 모집 공고>가 났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에 났는데 무려 6쪽이다. 그 내용이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이 공고에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이라면, 좀 귀찮더라도 작정하고 읽기 시작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수는 있다. 이런 분량을 신문 한 면에다 밀어넣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아찔하다. 끔찍하다. 6쪽에 달하는 공고를 싣느라 다른 중요한 기사가 빠지지는 않았을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그럴 수는 있겠다. 광고에 기사가 밀리는 시대이니까. 그렇다면 이런 날은 신문 쪽수를 좀 늘려야 하는 것 아닐까 싶어졌다.
생각을 정리해 본다.
첫째 21세기 정보화 시대에 신문에 공고를 내도록 한 규정이나 법률을 그대로 둘 필요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둘째 신문에 내도록 한 규정을 그대로 둔다면 글자 크기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해 주어야 할 것 아닌가 싶다.
셋째 이런 공고 하나에서도 사업을 하려는 쪽이 국민을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것이 드러난다. 앞의 두 개는 모든 국민이 눈깔에 돋보기를 달고 다닌다고 생각하는 것 같고, 뒤의 하나는 국민에게 친절하게 다가가 다정하게 손잡고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것 같다.
넷째 신문사들은 이런 공고 하나 실으면서도 광고비를 받을 텐데, 공익적(아파트 분양 공고는 공익은 아니다) 공고에 대해서는 광고비를 절반 이하로 깎아 주어 한 쪽에 실을 것을 두 쪽, 세 쪽에 나눠 실을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다.
다섯째 공고할 양이 많아서 여러 쪽에 걸쳐 실을 상황이라면 아예 신문의 쪽수를 더 늘려서 중요한 정보(기사)가 누락되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 신문값 내는 모든 사람이 이따위 공고를 보고자 하는 것은 아닐 테니까. 내 생각은 그렇다.
2016.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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