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판도라>를 보았다. 생각이 몇 가지로 모아졌다.
첫째, 핵발전소는 폐기되어야 한다. 지금부터 폐기 절차에 들어가도 몇 십 년이 걸릴지, 아니 몇 백 년이 걸릴지 모른다. 핵발전은 값 싸지도 않고 편리하지도 않으며 특히 전혀 안전하지 않다. 우리나라는 단위 면적 대비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발전소를 보유하고 있으며, 몇몇 개는 사용 연한을 계속 늘려왔기 때문에 노후화로 인한 사고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현재도 몇 기는 만들고 있고 몇 기는 추진 중이라고 한다. 오래된 발전소는 언제 터질지 모른다. 끔찍한 영화 장면보다 더 참혹한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기우가 아니다. 어쩌면 경주 지진은 그 전조가 아닐까.
둘째, 정부는 국민이 위기에 처했을 때 국민을 구할 매뉴얼을 갖고 있어야 한다. 하늘에서도, 바다에서도, 땅속에서도, 핵발전소에서도 대형 재난은 발생할 수 있다. 그에 대한 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 컨트롤 타워는 당연히 청와대여야 한다. 우리나라의 모든 권한은 대통령에게 집중되어 있으니까. 세월호가 침몰할 당시 “청와대는 컨트롤 타워가 아니다”라고 헛소리를 지껄인 당시 비서실장 김기춘은 나쁜 놈이다. 영화에서도 대통령이 제 위치에서 정상적으로 상황을 장악하고 구체적인 지시를 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비로소 실마리를 찾아갔다. 세월호 침몰 당시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나쁜 청와대를 비판하는 것이다.
셋째, 원전 주변 사람들에 대해 객관적이고 항구적인 역학조사를 벌일 민간기구가 필요하다. 현재는 가해자라고 할 수 있는 정부 또는 한국수력원자력이 역학조사의 주체이기 때문에 피해자에 대한 믿음직한 조사결과를 내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넷째, 전세계 최다 핵발전소 보유국의 국민으로서 핵발전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을 모든 국민이 좀 알아야겠다. 재난이 발생할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등의 극한상황뿐만 아니라 평소에 핵발전소는 무엇이며, 그것을 짓고 운영하고 폐기하는 데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가는지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게 좋겠다. 체르노빌, 후쿠시마 등 해외에서의 핵재난이 얼마만큼 큰 피해를 끼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상식적으로 배워야겠다. 그리하여 기본적으로 ‘탈핵’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확고한 신념을 모든 국민이 가져야겠다. 핵발전소를 유지시켜야만 이익을 얻는 무리들이 누구인지도 깨달아야 한다.
다섯째, 우리나라도 재난 영화를 이렇게 실감나고 흥미진진하게 만들 수 있을 만큼 기술이 발전하였다. 배우들의 연기도 일품이었고 컴퓨터 그래픽이나 촬영기법 같은 게, 비록 나는 비전문가이지만 내가 보기에 제법 훌륭하였다. 여주인공 연주(김주현)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면서 주민들의 대피상황을 이끌어간다. 대형버스도 척척 운전할 수 있다. 이런 점은 좀 비현실적이긴 하지만, 전쟁영화에서 모든 총알이 주인공만 피해가는 것에 견주면 새발의 피다.
여섯째, 가족의 중요성을 다시금 절실히 깨달았다. 두 말 하면 잔소리다. 넋을 놓고 있던 대통령에게 일갈하는 사람은 그의 부인이다(우리 대통령이 7시간 동안 사라졌을 때와 비교하는 듯했다. 우리 대통령에게는 일갈을 날려줄 애미에비도, 남편도, 자식도 없었다는 게, 참 그렇다). 주인공들이 상황을 판단하고 구체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데는 가족이라는 존재가 있다. 핵발전소 폭발 지점으로부터 멀리멀리 달아나던 가족들이 다시 발길을 돌려야 했던 계기도 가족 때문이다. 고부간의 갈등도 자식(손자)이라는 존재 앞에서는 맥없이 무너진다. 가족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이다. 가족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가 일어서야 하는 까닭이다.
영화 <판도라>는 단순한 오락영화, 재난영화, 블록버스터라고 할 수 없다. 현재 우리 앞에 서서히 다가오고 있(을지 모르)는 핵발전소에서의 대형 사고 상황에 대한 예고편이라고 할 만하다. 너무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게 아니다. 영화를 보기 위하여 읽기 시작한 김익중 교수의 <한국 탈핵>에 나오는 많은 객관적인 자료와 근거들은 그것을 설명해주고 있다.
세월호가 자꾸 떠올랐다. 배가 침몰하여 기울어질 때 “가만 있으라”고 말한 놈들에 대한 분노가 겹쳐졌다. 거꾸로 처박힌 배 안에서 바닷물이 차 오를 때 연결되지 않는 전화기에 마지막 인사말을 남기던 사람들, 특히 꽃다운 학생들의 모습이 스크린에 그려졌다. 눈물이 났다. 참을 수 없었다. 숨이 막혔다. 갑갑했다. 심장이 터질 듯했다. 지나치게 몰입한 탓일까. 하지만 영화를 직접 보게 된다면, 그리고 그 영화 속의 주인공이 나였다면, 내 가족이었다면, 내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나는 어찌하면 좋을까, 나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하다 보면, 스스로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게 되어 있다. 그런 영화이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고, 배우도록 이끌어주며, 우리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길러주기도 하고, 그리고 카타르시스마저 느끼게 해주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2017. 1. 1.
(사진은 영화 판도라 홈페이지에서 가져 왔습니다.)
'우리 사회에 대한 내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민의례’ 유감 (0) | 2017.01.16 |
---|---|
‘편향’이라는 말에 대하여 (0) | 2017.01.13 |
인간 능멸의 극치 (0) | 2016.12.15 |
대학 홍보가 필요 없는 사회를 꿈꾸며 (0) | 2016.11.23 |
필리버스터 (0) | 2016.03.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