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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과 글을 보는 내 눈

‘엄지척’이란 말에 엄지 척!

by 이우기, yiwoogi 2016. 9. 2.


 

영화배우 황정민이 새영화 아수라제작 발표회에서 양손 엄지손가락을 위로 치켜세우는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그만큼 새영화에 대한 자신감이 넘친다는 뜻이다. ‘이번 영화 정말 잘 만들 테니 많이 보아 달라는 바람이 담겼을 것이다. 배우니까 연기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이라고 말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이 모습을 보도하는 언론의 제목은 황정민 엄지척’’이다. ‘엄지척이 한마디에 모든 것이 담긴 것 같다.

 

김해에 가야 테마파크라는 게 있는가 보다. 가보지는 않았지만 외국인들의 한국문화 체험 공간으로 아주 인기 있는가 보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의 세종학당 수강생 등 50명이 이곳을 찾았다는데, 이를 보도한 언론의 제목은 김해가야테마파크 외국인도 엄지척’’이다. 뭐라고 중언부언 설명할 것 없이 아주 좋다’, ‘최고다’, ‘멋지다’, ‘훌륭하다’, ‘잘했다라는 느낌이 팍 다가온다.

 

엄지척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아는 바와 같이 엄지는 다섯 손가락 가운데 첫 번째 손가락이다. ‘은 무엇일까. 사전에 나와 있는 뜻으로만 따라가면 좀 애매해진다. ‘11가지 뜻이 있다는데 엄지척과 관련 있어 보이는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몸가짐이나 태도가 천연덕스럽고 태연한 모양이고 다른 하나는 전혀 서슴지 않고 선뜻 행동하는 모양이다. 뒤엣것이 더 가까워 보인다. 그러니까, 엄지척은 엄지손가락을 서슴없이 위로 치켜세울 만한 일이나 행동, 또는 그런 상황을 가리키는 것 같다.



나날살이에서 엄지손가락을 위로 치켜세울 만한 일은 아주 많다. 가령 축구 경기에서 상대방 골대 앞에서 이리저리 공을 주고 받고 하다가 힘껏 찼는데 골인되지 않았을 경우에도 그래 그렇게 하는 거야라는 표정을 지으며 엄지손가락을 척 올려세운다. ‘더 잘해보자, 다음에는 골인을 넣자는 뜻일 것이다. 그 손가락 하나에서 무한한 믿음과 에너지가 샘솟는 듯해 보인다. 공부하는 아들이 비록 만족할 만한 점수를 받아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동안 고생한 노력에 대하여서는 엄지손가락을 세워 줄 수 있다. ‘그래, 최선을 다했으면 됐어. 다음에 더 열심히 하면 되지. 최선을 다한 네가 멋져!’라는 믿음을 심어준다.

 

이러다 보니 이런 유행어를 그냥 놓칠 리 없는 가요계에서 나섰다. 대충 검색해 보니 엄지척이라는 제목의 노래가 3곡이나 나온다. 하나는 홍진영이라는 가수가 불렀다. 가사는 내가 보기엔 좀 촌스럽다. “엄지 엄지 척 엄지 엄지 척 / 자상하고 다정다감해 / 보면 볼수록 알면 알수록 / 매력이 넘쳐요 / 엄지 엄지 척 엄지 엄지 척 / 천생연분 내 사랑이에요 / 그냥 좋아요 왠지 좋아요 엄지 척다른 하나는 세븐틴이라는 가수가 부른 모양이다. 이 가수이름 처음 본다. 가사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또 하나는 스쿠터 다이어리라는 가수가 부른 모양이다. “엄지척 엄지척 엄지척 / 엄지척 엄지척 (엄지척) / 내 사랑 너에게 / 엄지척 엄지척 사랑해 / 내 모든 걸 다 주고 싶어 / 사랑해 그대 엄지척대강 이렇다. 어떤 가사를 쓰다가 엄지척이라는 말을 써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진 게 아니라, 이 유행어에 얹혀 노래를 좀 알리고 싶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부터 든다.

 

아무튼 엄지손가락을 보란듯이 척 들어올려서 긍정, 희망, 기대, 인정, 믿음 따위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보기에도 좋고 듣기에도 좋다. 쉽고 간단하다. 이렇게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올리는 것은 모르긴 해도 조선시대, 아니 삼국시대 이전부터 있었을 것 같다. 엄지손가락에는 최고, 가장, 먼저, 상급, 1, 첫째, 우두머리, 신뢰 같은 의미가 담겨 있으니까.


 

우리가 엄지척이라는 말을 지금처럼 유행어로 쓰게 된 건 어인 연유일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가운데 하나로서 마크 주크버그라는 미국 사람이 개발한 페이스북’(facebook)의 영향이라고 본다. 페이스북에는 어떤 사람이 올린 글에다가 좋아요라고 간단하게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기능이 있는데, 그것을 나타내는 기호가 엄지손가락을 위로 올려세운 모양새다. 지금은 여러 가지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바뀌었지만, 처음에는 좋아요하나밖에 없었다. 이 엄지손가락은 페이스북에서만 주로 사용하는 기호였다가, 지금은 온갖 곳에 두루 널리 쓰이는 만국공통어처럼 되어 버렸다. 물론 페이스북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게 뭔가?’하면서 신기한 듯 바라보겠지만.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건, 이전에는 엄지손가락을 위로 올려세우더라도 지문이 있는 부분이 상대방에게 보이도록 하는 게 보통이었다. 지금은 페이스북에 나오는 손가락 모양으로 보이게 치켜세운다. 의식하고 그러는지 아니면 자기도 모르는 새 그렇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엄지척은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아 표준어로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다만, 신어 목록에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thumb up’(동의하다, 격려하다)를 순화한 신어로 볼 수 있을 듯하다. 이건 내가 하는 말이 아니다. 국립국어원의 (공식)설명이다. 아직은 표준어로 대접하기 어렵지만 나중에는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말은 국어학자가 책상머리에 앉아 궁리하고 고민하여 뚝딱 만들어낸 게 아니라, 많은 누리꾼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익숙해진 말을 바깥세상(오프라인)으로 끌어낸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새로운 말은 이렇게 만들어지는 게 아주 좋다고 본다. 학자보다는 대중이, 전문가보다는 일반인이 두루 널리 아무곳에서나 쓰는 말이 점점 대중성’(大衆性)을 얻어 신어로 대접받다가 다시 신어에서 표준어로 등급 상승해가는 과정은 멋지고도 훌륭하다.

 

엄지척은 아직까지는 표준어도 아니고 신어도 아니고 그냥 유행어일 뿐이므로, 엄밀하게 말하면 엄지처럼 띄어써야 한다. 한 낱말이 아니라 두 낱말이라고 봐야 한다. 관용어처럼 보면 된다. 그러나 앞으로 점점 이 말의 쓰임은 늘어날 것이고, 결국 엄지척이 한 낱말로 굳어지는 날도 오리라 본다. 아니, 빨리 왔으면 좋겠다.



 

얼마 전 KGC인삼공사는 추석을 앞두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응원과 격려의 마음을 전달하는 올 추석엔 어떤 말보다 엄지척대국민 캠페인을 진행했다고 한다. 고생 많이 하신 부모님께, 고생 많이 하는 여성들에게(주로 며느리들이겠지만),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 많이 받는 학생 조카들에게, 취업결혼 때문에 고개 숙인 가족들에게 백 마디 말보다는 그냥 엄지손가락 하나 척 세워 보여주자는 뜻이다. 좋다. 마음에 든다. “너를 믿어, 당신 고생했어, 너는 잘할 거야, 너는 최고야, 너는 더 잘할 수 있어, 너는 최선을 다했어이런 말을 손동작 하나로 나타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엄지척이라는 유행어에 엄지 척해 준다.

 

2016. 9.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