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 플레이스’라는 말이 자주 보이고 자꾸 들린다. 영어를 잘 못하는 나도 딱 알겠다. ‘핫’은 ‘hot’으로서 ‘뜨거운’이라는 말이고, ‘플레이스’는 ‘place’로서 ‘장소, 곳’이라는 말이다. 즉 ‘뜨거운 곳’이라는 뜻이렷다. 뜨거운 곳이라….
뜨거운 곳은 어디인가. 적도 근처인가. 용광로 옆인가. 어디 화산이라도 터졌는가. 설마 그런 뜻이겠는가. 그러면 뜨거운 곳은 어디겠는가. 사람이 많이 모여드는 곳이겠지. 사람은 어디에 모여드는가. 진주남강유등축제처럼 재미있는 일이 많은 축제의 현장이겠지. 소문난 맛집도 사람이 많이 모여드니 뜨거워진다. 아파트 분양 현장, 초등학교 운동회, 선거 유세 현장 등등 뜨거운 곳은 많다.
그런데 핫 플레이스라는 말이 쓰이는 것을 가만히 보노라면, 초등학교 운동회나 선거 유세 현장을 가리키는 경우는 아주 드물고 주로 소문난 맛집, 유명 관광지 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다음은 어떤 이들이 블로그에 올린 글의 제목이다. ‘대구 대봉동 핫플레이스 카페 방문기’, ‘서촌의 핫플레이스 떡볶이 맛집’, ‘[핫플레이스] SNS에서 소문난 갤러리 닮은 가평 카페 Best 4’, ‘‘숨겨진 핫 플레이스’ 성북동 데이트 코스 완전 정복!’ 이렇다.
언론 보도 제목을 찾아보면 이러하다. ‘용산상가 전체를 유커 핫플레이스로…놀며 쉬며 쇼핑한다’, ‘광주 유커 핫플레이스 방안은…국제포럼 `성황'’, ‘“광주를 요커 핫플레이스로 만들 것”’, ‘야밤의 음식 잔치…젊은층 ‘핫 플레이스’’ 대체로 맛집이나 관광지를 가리키는 듯하다.
‘핫 플레이스’처럼 두 낱말로 쓴 곳도 있지만 숫제 ‘핫플레이스’처럼 한 낱말로 쓴 것도 많다. 한 낱말로 쓰고 읽는 사람들은 핫 플레이스라는 말을 ‘요즘 한창 인기 있고 따라서 사람이 많이 모여드는 어떤 장소, 특히 소문난 맛집이나 관광지, 데이트 장소를 가리키는 신조어’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핫 플레이스’가 이렇게 많이 쓰일 정도가 되었는데 국립국어원이 가만히 있었겠는가. 국립국어원 말다듬기위원회(이런 위원회가 있는지 솔직히 잘 몰랐다)에서는 핫 플레이스를 ‘뜨는곳’, ‘인기명소’로 다듬어 쓰자고 제안하였다. ‘뜨는곳’은 두 낱말이 아니라 한 낱말로 제안하였고, ‘인기명소’는 ‘인기’와 ‘명’의 뜻이 겹치는데도 ‘인기명소’라고 제안하였다. 이렇게 제안하였다고 보도자료를 국립국어원 누리집에 올려놓았는데, 그게 2013년 9월이다.
그러면 ‘뜨는곳’과 ‘인기명소’라는 말은 요즘 얼마나 쓰이고 있을까. 국립국어원에서 제안한 것이 언중 사이에 어떻게 얼마나 받아들여지고 있을까. 궁금하다. 그래서 검색해 보았다. ‘뜨는곳’이라는 말은 ‘해 뜨는 곳’, ‘달 뜨는 곳’, ‘회 뜨는 곳’은 많이 보이는데 ‘핫 플레이스’라는 말을 대신하여 쓴 ‘뜨는곳’은 찾기 어렵다. ‘부동산투자법 “지역마다 뜨는 곳이 다르다”’라는 것을 겨우 찾아냈을 정도이다.
‘인기명소’라는 낱말로 검색해 봤더니 더러 나온다. ‘봄나들이 인기 명소는?’, ‘사진작가의 인기 명소’, ‘지역별 인기 명소 방영’, ‘유럽에서 자연을 즐길 수 있는 인기명소 10곳’과 같은 글이 보인다. 하지만 ‘인기명소’라는 말도 ‘핫 플레이스’에 견주면 새발의 피만큼 보일 뿐이다.
핫 플레이스는 인터넷 사이트 제목, 식당 이름, 애플리케이션 이름, 신문 고정난 제목, 각종 광고 제목 들을 거의 장악해 버렸다. 놀랄 노자다. 국립국어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뜨는곳’이나 ‘인기명소’는 생명력을 이어가기 쉽지 않아 보인다. 특히 ‘뜨는곳’은 더욱 그렇게 보인다. 안타깝다.
요즘은 한술 더 떠서 핫 플레이스를 줄여 ‘핫플’이라고도 쓴다. 나는 이를 ‘대단한 창의력’이라고 불러주고 싶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핫플’이라는 말 정도 쉽사리 해줘야 대화에 끼일 수 있는 것 같다. 말이란 이렇다. 어떤 말이 널리 쓰이고 나면 새롭게 가지를 치면서 무궁무진 번져나가는 속성이 있다.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 이렇게 생각해 본다. ‘핫 플레이스’라는 영어를 그대로 우리말로 바꾸어 ‘뜨거운 곳’으로 바꿔 쓰면 어떨까 하고…. 뭔가 흥미로운 일이 벌어지는 곳이거나, 구미를 확 당길 만한 맛집이 있는 곳이거나, 누구든 한번 가보고 싶을 만한 장소를 가리킬 때 ‘뜨거운 곳’이라고 말하면 어떨까. 눈과 귀가 쏠리는 곳, 자기도 모르고 발길을 옮기게 되는 곳, 그래서 뜨거운 관심이 쏠리는 곳을 그냥 ‘뜨거운 곳’이라고 하면 어떨까.
‘뜨는곳’이라는 말도 참 좋은데 ‘이미 뜬 집’이라는 뜻이 엷어져 보여 좀 심심하고, 인기명소라는 말도 솔직히 말맛은 별로이다. ‘뜨거운 곳’이라는 말이 영어를 그대로 되친 것 같아 꺼림칙하긴 하지만, 핫 플레이스를 그대로 쓰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좀더 나아가 ‘핫 플레이스’를 줄여 ‘핫플’이라고 하듯이 ‘뜨거운 곳’ 또는 ‘뜨는 곳’을 줄여 ‘뜨곳’이라고 하자고 하면 다들 웃겠지. 아니면 비웃겠지. 나는 좀 진지한데….
2016. 5. 30.
(사진은 인터넷 이곳저곳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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