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저녁 6시쯤 업무와 관련한 일로 소주를 3잔 마셨다. 야근한 뒤 밤 9시 퇴근할 때 차를 운전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일로 고민하는가. 고민한다면 당신은 소심하거나 술에 약한 사람일 것이다. 고민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술에 아주 강한 체질이거나 우리나라 경찰을 과신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이런 건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어서 이러다가 이런 일을 당하거나 저러다가 저런 일을 당한다고 하여도 괜찮다.
당신은 정치적으로 진보 성향이 강하다. 페이스 북에 올려진 진보 성향의 어느 글을 보고 ‘좋아요’를 누르면서 께름칙함이나 부담이 전혀 없는가. 없다면 당신은 간이 크거나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일 것이다. 그 글에 동조하는 댓글을 달고 싶어졌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편안하게 글을 올렸다면, 당신은 털어 먼지 하나 안 나는 사람일 것이다. 2015년 현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직접 올릴 수 있다면, 당신은 정말 대단한 분이다. 이런 일은 술 몇 잔 마신 것으로 대리운전기사를 부를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와 차원을 달리한다.
개인 블로그나 페이스 북, 트위트, 카카오스토리 같은 데 글과 사진을 올릴 때 내가 생각하는 것대로 아무런 고민이나 두려움 없이 올릴 수 있는가. 진보 성향의 시민사회 단체 홈페이지에 그 단체를 응원하는 글을 쉽사리 올릴 수 있는가. 반대로 수구보수 성향의 단체 홈페이지에 그 단체를 비판하는 글을 자신 있게 올릴 수 있는가. 나는 이런 문제를 가끔 생각한다.
공개된 일기장이라고 할 수 있는 블로그에 글을 써 올릴 때도, 그 글을 페이스 북이나 카카오스토리에 연결할 때도 나는 내 글을 두 번 세 번 검증한다. 사실관계에서 오류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하여 정당하게 비판하는 글이라고 하더라도 누군가 시비를 걸 만한 곳은 없는지 몇 번이나 검증한다. 시비가 아니라 막무가내로 왜 이따위 글을 썼느냐고 윽박지를지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또는 누군가, 어디에선가 평소 써온 글을 차곡차곡 모아놓았다가 그것을 근거로 나를 곤경에 빠뜨리지 않을까 염려한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무시무시한 권력기관에서 어느 날 호출할지 모른다는 걱정도 하고, 그런 생각을 이어가다 보면, 처음 쓴 글의 많은 부분을 삭제하거나 표현을 완곡하게 바꾸게 된다. 스스로 생각을 검증하고 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희미하다. 그런 무시무시한 권력기관이 나 같은 조무래기까지 감시할 겨를이 있기야 하겠는가마는 ‘미네르바’ 사건은 그것이 전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님을 보여준다. ‘설마’하다가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해진다.
지극히 개인적인 대화가 오고가는 카카오톡도 들여다보고, 공개된 토론방인 아고라에서 주고받는 대화도 검색해 보고, 멀쩡히 보도된 신문기사를 퍼 나르는 것도 사시 눈을 하고 지켜보는 세상이다, 라고 생각한다. 쓴 사람은 까맣게 잊어버린 5년 전, 10년 전의 글과 말도 들추어내어 시비곡직을 가리려는 세상이다. 그러니 현 정부를 비판하거나 비난하거나 욕하는 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손가락 끝을 까딱 잘못 놀렸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갈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그런 무서운 꿈을 꾼다. 영화를 많이 본 탓이 아니다. 2015년을 살아내기 힘들어서 그런 것이다, 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사상의 자유, 생각의 자유, 대화의 자유, 시위의 자유, 집회의 자유, 글 쓸 자유, 출판의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에 살고 있는가, 자꾸 물어보게 된다. 스스로 내린 대답은 ‘아니다’이다. 양보하여 표현하자면 ‘아니라고 생각한다’이다. 더 양보하자면 ‘아니라고 판단된다’이다. 이렇게 거듭 양보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사회가 얼마나 민주화, 자유화하여 있는지 가늠하는 잣대가 아닐까.
2015.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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