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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대한 내 생각

백담사와 조계사

by 이우기, yiwoogi 2015. 12. 7.

전두환은 1979년 박정희가 부하 김재규에 의하여 시해당한 사건을 계기로 권력의 전면에 등장했다. 19805월 광주민중항쟁을 피로 짓밟고 5공화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이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한국정치의 파행을 불러왔다. 자유를 억압하고 민주화 운동을 탄압했으며 인권을 유린하는 등 군사독재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반란의 수괴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로써 우리나라 정치는 크게 퇴보하였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를 포함한 국민들의 개헌요구와 민주화 요구를 묵살한 ‘4·13 호헌조치로 국민의 거센 저항을 받았고, 이는 ‘6월 민주화운동을 낳았다. 전두환이 물러난 뒤 노태우가 대통령이 된 뒤 여소야대상황에서 국회 청문회가 진행되면서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과 제5공화국 권력비리에 대한 진상 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국민적 요구에 직면하였다. 이를 무마하기 위해 대 국민 사죄와 함께 재산헌납을 발표하고 백담사에 은둔하였다가 21개월 만인 19901230일 하산하였다.(다음 백과사전 참조)



백담사는 어떤 절인가. 백담사는 독립운동 승려 만해 한용운이 머물면서 불교유신론(佛敎維新論)십현담주해( 十玄談註解), 님의 침묵을 집필하는 장소가 되었고 만해사상의 고향이 되었다.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러한 백담사가 반란의 수괴로서 헌정을 문란하고 수많은 국민을 학살한 자를 받아들인 것이다. 대학 3학년이던 나는 백담사 스님의 뜻을 알 수 없었다. 전두환은 어느 절이든 어느 교회이든 어느 성당이든 받아주지 않아 길거리를 바장이다가 지나가는 아이들의 돌멩이를 맞아 피를 흘리며 죽어가야 했다. 그러나 백담사는 학살자 전두환을 아무 말 없이 받아주었다. 백담사 신도회가 전두환을 거두어들이지 말라고 시위를 했다거나 강제로 끌어내려 했다는 이야기는 듣도 보도 못했다. 그렇게 역사는 흘러왔다. 이러한 일을 잘된 것으로 보지는 않지만, 이해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부처님의 뜻이라고 여기게 됐다.

 

조계사에 몸을 의탁하고 있는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이 20일 넘게 머무르고 있는가 보다. 경찰도 종교시설 안으로 쉽사리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조계사 스님들은 화쟁위원회를 열어 일단 한상균 위원장을 받아들이기로 한 모양이다. 민주노총이 주장하듯 지금 이 정부는 노동법을 개악하려 한다는 데 대해 나는 동의한다. 그리고 민주노총이 폭력시위를 주도했다는 데 대하여는 어느 정도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거대한 국가 폭력 앞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오늘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 아니다.

 

국가 폭력에 맞서 싸우던 노동운동 지도자가 몸을 피하여 부처님 품안으로 들어왔는데, 조계사 신도회에서 한상균더러 당장 나가라고 시위를 하는 모습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한상균은 수많은 노동자를 조직하여 길거리 시위를 주도한 사람이지만, 그는 그 노동자의 노동권을 지키기 위하여 한 몸을 내던진 사람이기도 하다. 어느 판단이 옳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그러한 과정에서 국가 권력의 올가미를 피하여 부처님 품안으로 숨어든 것이다. 만일 정말 부처님이 있다면 어떻게 할까. 빙그레 웃으며 몰래 가사 아래에 감추어 주지 않을까. 모른 척하며 등 뒤에 숨겨주지 않았을까. 신도들로서는 경찰이 삼엄하게 경계를 하고 있고 출입할 때마다 신분증을 일일이 확인한다고 하니 여간 귀찮은 게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한상균이 전두환처럼 반란을 주도하였나, 국민을 학살하였나,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였나. 전두환처럼 조계사에 의탁하여 21개월 동안 머무르기야 하겠는가.

 

산골에 사는 가난한 사람이 산토끼와 노루와 꿩을 잡아먹으며 눈 내린 길고 추운 겨울을 나고 있었다. 겨울은 3월이나 4월쯤 끝날 것이어서 하루하루 먹고 사는 일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어느 날 꿩 한 마리가 추위를 피하고 모이를 찾아 처마 밑으로 날아들었다. 꿩은 얼어 죽기 직전에 그나마 따스한 온기가 있는 인간의 집으로 의탁하여 들어온 것이다. 이 집의 남자 어른이 옳다구나 하면서 꿩을 잡아먹으려고 하자 할머니가 점잖게 타이른다. “냅둬라. 제 스스로 날아 들어온 날짐승, 길짐승은 잡아먹는 게 아니다. 헛간에 짚을 좀 깔아 주고 강냉이나 좀 뿌려 주거라.” 이게 사람 마음이고 부처님 마음이다. 백담사 스님과 신도들은 사람 마음, 부처님 마음을 가졌다. 조계사 신도들은 사람 마음도, 부처님 마음도 가지지 못한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된 까닭은 민주노총 때문도 아니고 부처님 때문도 아니다. 누구 때문일까.

 

2015. 1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