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모여 한 달이 되고 달이 모여 한 해가 된다. 순간순간 힘들고 고달픈 삶인 것 같아도 지나고 보면 모든 게 아름답고 따뜻한 추억이 된다. 추억은 알록달록하고 향기롭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고 했다. 추억은 기억하는 자의 몫이고 기억은 기록에 의존한다. 스페인 철학자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기록은 기억을 남긴다.”고 말했다.
철들 무렵부터 요즘까지 겪은 일 가운데 기억나는 몇 가지 추억과 하고 싶은 말을 적었다. ‘글을 쓰면 생각이 가지런해지고, 기억이 되살아나게 된다.’는 지론으로 꾸준히 썼다.
대략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쓴 것이다. 내용을 보면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가 대부분이고 우리 사회의 어떤 현상에 대하여 하고 싶은 말을 쓴 것도 있고 요즘 쓰는 말에 대하여 시비를 건 것도 몇 있다. 그러니까 잡스런 생각을 잡다하게 늘어놓은 수다라고 할 만하다. 책상 서랍에 넣어 두어야 할 일기에 가깝다.
가치 없는 이 글을 책 모양으로 내고자 마음먹은 것은, 이렇게 해 놓지 않으면 아주 나중에 나를 기억하고 싶어 하는 ‘어떤 사람’이 무엇을 근거로 나를 추억할지 걱정되어서이다. 물론 그 어떤 사람은 ‘가족’이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아버지는 2012년 9월 13일 돌아가셨다. 아들은 아버지를 잘 안다고 생각해 왔다. 아버지와 살아온 세월이 50년 가까이 되었으니까. 무릎 아래에서 기어 다닌 시기와 결혼하여 분가한 이후 기간을 빼더라도 당신의 그늘에서 몸과 마음을 키운 게 도대체 몇 해이랴. 그러나 아버지 돌아가신 뒤 생각해 보니 아는 게 별로 없었다. 남겨진 사진 몇 장과 머릿속에 든 기억 몇 가닥으로 아버지를 안다고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울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만큼 기억을 더듬었고 글로 적었다. 내 기억에 의존한 것인 만큼 사실과 다른 것도 있을 수 있고 더러는 희망이나 상상이 기억으로 변질되었을 수도 있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도 적었다. 하잘것없고 보잘것없어 보이던 자잘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되었고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조용필은 노래했다. “소중한 건 옆에 있다고 먼 길 떠나려는 사람에게 말했으면 좋겠네.”
세상 돌아가는 일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어처구니없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꼭뒤가 돌아버릴 만한 일도 예사롭게 일어난다. 이런 세상에 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장으로 달려가 몸으로 싸우는 일은 자신이 없었다. 우리말에 대한 생각도 썼는데 논리가 부족하고 비약이 심하여 꾸지람 듣기 딱 좋을 만큼 되었다.
아직 적지 못한 이야기는 많다. 대학 시절과 첫 직장에서 멋모르고 설치던 시절의 이야기는 많이 남겨 두었다. 어린 시절보다 더 부끄러운 짓을 많이 저질렀고, 그래서 아직은 남들에게 내놓을 마음의 준비가 덜 되었다. 한 십 년쯤 더 살면 그때는 부끄러움도 이겨낼 만큼 용감해지지 않을까 싶다.
몇 해 전 어떤 교육을 받으러 갔을 때다. 강사는 소원을 한 가지씩 적으라고 말했다. 나는 ‘내 이름으로 된 소설책을 내고 싶다’고 썼다. 그것이 반드시 소설일 필요는 없지만, 어떤 형식이든 내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이다. 강사는 많은 사람의 소원 가운데 내 것을 읽어주며 꼭 소원을 이루길 빈다고 했다. 침을 꿀꺽 삼켰다.
처음에는 에이포(A4) 종이에 딱 두 권만 제본하여 보관하려고 했는데, 생각을 거듭하다가 ‘부크크’(http://www.bookk.co.kr)라는 데를 알게 되었고 이렇게 일이 커지고 말았다. 부끄럽다. 혹시 책을 읽고 싶은 사람은 ‘부크크’ 누리집에 가서 주문하면 된다. 단 한 권도 주문받아 인쇄하여 보내준다. 여기서는 책 주문을 받은 뒤 비로소 인쇄에 들어가기 때문에 재고로 인한 종이 낭비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아니면 블로그(http://blog.daum.net/yiwoogi)에 가면 애초에 쓴, 교정하기 전의 글을 볼 수 있다. 굳이 그럴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마는….
일찍 들어온 밤에는 거의 컴퓨터 앞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무던히 바라봐 주고 글도 읽어 준 사랑하는 아내 박옥희와 자주 어깨 주물러 준 아들 다을에게 많이 고맙다. 쓴 글을 블로그와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같은 데 올렸을 때 좋은 말씀을 해준 분들에게도 감사드린다. 아주 큰 응원이 되었다. 마지막 교정 볼 때 뛰어난 실력과 감각으로 힘을 보태준 후배 함안 칠원초등학교 성선희 선생에게 마음 깊이 고마운 뜻을 전한다.
12월 1일은 쉰 번째 생일이다. 이 책은 아직 철들지 않은 내가 지천명(知天命)인 나에게 주는 인생 첫 선물이다.
2015. 12. 1.
이우기 쓰다.
'그 석류나무 잎사귀는 몇 장이었을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저의 책이 완성되었습니다 (0) | 2015.11.20 |
---|---|
[석류나무 목차] (0) | 2015.11.20 |
나도 햄토리 한 놈 갖고 싶다 (0) | 2015.08.24 |
죽장망혜로 ‘담양’을 다녀오다 (0) | 2015.08.16 |
실망스러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상선약수’ 액자 (0) | 2015.08.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