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스터를 본떠 만든 인형 ‘햄토리’가 있다. 햄토리라는 이름은 원래 있던 것인지 우리가 지었는지 모르겠다. 햄토리는 아들이 태어난 2000년 어느 날 아내의 친구 음영미 씨가 선물한 것이다(첫돌 무렵 받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2000년 7월 8일생인 아들과 같이 태어났다고 보면 되겠다. 아들이 엄마 뱃속에서 열 달 동안 있었듯이 햄토리도 공장에서 우리 집까지 오는 데 그 정도는 걸리지 않았을까.
아들은 채 기지도 못하던 갓난아기 시절부터 이 햄토리와 함께 했다. 햄토리도 아들과 나이를 함께 먹어가고 있다. 아들이 중학교 3학년이 되는 동안 변성기를 거치고 몸에 털도 더 시커매졌듯이 햄토리는 군데군데 닳아 떨어지고 팽팽하던 가죽은 흐물흐물해졌다. 등에 나 있는 검은 줄도 실밥이 닳아 희미해져 가고 있다.
아들은 햄토리를 애지중지한다. 친동생이라도 되는 듯이, 가장 친한 친구라도 되는 듯이 늘 끼고 산다. 잠잘 때는 기본이다. 겨울에야 그것이라도 있으면 좀더 따뜻하니 그러려니 하겠는데 푹푹 찌는 삼복더위에도 아들의 잠자리에는 햄토리가 함께한다. 어깨 옆, 옆구리 옆, 배 위, 머리맡, 무릎 가운데…. 햄토리는 아들의 베개이자 여자 친구이다.
어쩌다 장난삼아 잠이 들락 말락 하는 아들로부터 햄토리를 뺏는 척하면 아들은 기겁을 한다. 오늘은 내가 끼고 자야겠다고 짐짓 호통을 치면 자지러질 지경이다. 한 번은 아내가 어떤 일로 화가 나서 햄토리를 창밖으로 던져버린 적이 있다. 우리 집은 2층이다. 아들은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도 엄마의 서슬에 눌려 감히 햄토리를 주우러 바깥으로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내가 주워왔다.
가족끼리 며칠 여행을 가려고 하면 아들은 햄토리를 챙긴다. 매번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지금 당장 어느 여행이 가장 편하고 즐거웠느냐 묻는다면 아마 햄토리를 데리고 간 여행이라고 답할 것만 같다. 차 안에서 꼭 껴안고 있는 것은 물론 여행지에서도 끼고 잔다. 사내 녀석이 꼴사납다고 지청구를 주어도 듣지 않는다. 참 대단한 햄토리 사랑이다.
아들의 나이는 열여섯이다. 햄토리도 열여섯 살인 셈이다. 사람의 열여섯이야 청소년 시기로서 꽃으로 치자면 자그맣게 꽃봉오리를 맺고 있는 정도이겠지만, 애완동물 햄스터의 열여섯은 환갑, 진갑, 칠순 다 지난 나이가 아닐는지. 실제 이마트에서 햄스터를 한 마리 사와서 키워본 적이 있다. 똥냄새와 바퀴 굴리는 소리 등등은 모두 참을 만한데 자꾸 커다란 쥐만 하게 또는 작은 고양이만 하게 커가는 녀석이 징그럽고 무서워 다시 이마트에 갖다 주었다.
아파트 1층과 4층에서 개를 키우는가 보다. 어떤 날엔 아래위층에서 스테레오로 짖어댄다. 출근할 때나 외출할 때 아래층 개와 마주치면 이 녀석은 그때마다 마치 나를 처음 본다는 듯이 사납게 짖어댄다. 주인이 곁에 없으면 걷어차 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아파트에서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것은 이웃들에게 결례되는 일이다. 그래도 애완동물(요즘은 반려동물이라고 하지) 한 마리쯤 키우는 것은 어린 아이들의 정서에 꽤 좋다고들 한다.
우리 아들에겐 햄토리가 살아있는 고양이이고 강아지일 것이다. 채 이십 년도 안 된 녀석의 인생이지만, 햄토리는 자기에게 커다란 위안과 편안함과 다정함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좀 문학적으로 표현하자면 고독을 함께 나누는 사이였다고 할까…. 어쩌면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꾸지람을 들었을 때,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했다고 느꼈을 때(실제 그런 일은 없었겠지만), 혹은 동생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너무 강하게 들 때 햄토리와 마주이야기를 하며 마음의 동요를 달래곤 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열여섯 해를 지나오지 않았을까.
며칠 전 아들에게 “햄토리 이제 지겹지도 않니? 낡아서 보기 흉하다. 버리자.”고 했더니 대뜸 “그럼 새것으로 똑같은 걸 하나 사 주세요.”라고 말했다. 기가 차서 웃고 말았다. 속으로는 ‘네가 인생을 좀 더 살아 봐라. 요 녀석아. 그까짓 게 뭐라고? 흥!’ 코웃음을 쳤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짠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그런 한편으로 ‘나는 과연 무엇 하나라도 저렇게 애지중지 간직하는 게 있는가? 목숨만큼 소중한 나만의 보물은 무엇일까?’하는 생각마저 들어 잠시 울컥했다.
정말 생각해 보니, 나의 보물 1호는 무엇인지 퍼뜩 떠오르는 게 없다. 1992년이던가. 내가 번 돈으로 LG 286 AT 컴퓨터를 샀을 땐 그게 보물 1호였다. 3년쯤 썼던가 보다. 1997년 LG PCS 전화기를 처음 샀을 때 그것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 되었다. 작은 손바닥에 착 안기는 그 감촉에 황홀했다. 1년도 채 쓰지 못했다. 1997년 난생 처음 내 자동차를 샀다. ‘아벨라’였다. 기아자동차가 부도난 탓에 싸게 샀다. 10년에 5개월 모자라게 끌고 다녔다. 고마운 차였다. 작은 사고가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내 생명을 태우고 20만km 가까이 돌아다닌 애마였다. 아내를 처음 만나 결혼하고 아들을 낳던 모든 순간을 기억하던 자동차였다. 지금은 동남아 어디쯤에서 쿨럭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지나 않을까. 사진기 캐논 EOS 650D는 산 지 삼 년쯤 됐다. 정이 많이 가지만 보물 1호라고 하기엔 어쩐지 좀 모자란 듯하다. 스마트폰 카메라를 더 많이 쓰는 탓이겠지.
늘 안고 자고 끼고 사는 아들의 햄토리 같이, 그렇게 애지중지 간직하는 보물이 나에겐 없는 듯하다. 열여섯 해는커녕 한 해, 두 해도 알뜰히 간직한 나만의 보물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살아온 인생이 조금은 허무하다. 가슴 한 구석에 구멍이 난 듯하다. 휑뎅그렁하다. 이제부터라도 그 무엇이든 나만의 햄토리를 만들어볼까 싶다. 지금부터 죽을 때까지 십 년이든 이십 년이든, 운 좋으면 삼십 년쯤 나와 함께 울고 웃고 할 햄토리 하나 간직하고 싶다. 속 좁은 나의 길고 긴 하소연을 아무 대꾸 없이 들어주고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한숨을 무작정 안아주며 난폭하지는 않지만 꼴사나운 술주정마저 즐겁다고 히히거리고 웃으며 받아줄 그런 그 무엇을…. 2015.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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