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태료’는 공법상의 의무 이행을 게을리 한 사람에게 물게 하는 돈이다. 벌금과 달리 형벌의 성질을 가지지 않는 법령 위반에 대하여 물린다. ‘과징금’은 행정기관이 일정한 행정상의 의무를 위반한 사람에게 제재(制裁)로 부과하는 금전적 부담이다. ‘벌금’은 규칙을 위반하거나 잘못을 했을 때 그에 대한 징계로 물리는 돈이다. 내가 보기엔 그게 그것이다.
며칠 전 신문에서 본 내용이다. “지난해 정부가 징수한 과태료ㆍ과징금ㆍ벌금 규모가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교통법규를 위반하거나 세금을 체납했을 때 부과하는 각종 과태료 징수액이 4년 새 3배로 늘면서 1조 원에 육박했다.”(<경남도민일보> 6월 18일치) 기사를 보다가, 지난해 교통법규를 몇 번 위반하여 과태료를 얼마나 내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과속하다가 사진에 찍히거나 주차를 위반하여 더러 과태료를 무는 편인 나로서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기사를 읽어나가다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발견했다. “지난해 과태료 수입은 9491억 원으로 목표치인 예산액(8695억 원)보다 800억 원 가까이 많았다. (…) 작년에는 과징금도 목표치(311억 원)보다 24배 가까이 많이 들어왔다.”(같은 신문) 우리 국민들이 워낙 바쁘게 살다 보니 과속하게 되고, 전국적으로 주차공간이 크게 부족하다 보니 주차위반을 많이 하게 되고, 또 어쩌다 보니 안전띠도 안 매고 다니게 되는 것을 알겠다. 9491억 원이라…. 그러나 그보다 더 먼저 내 눈길을 확 붙든 것은 ‘목표치’라는 말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한 해 동안 국민으로부터 거둬들일 과태료에 목표치가 있다니. 이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가령 한 해 동안 100명이 교통법규를 위반한다고 치자. 한 건에 과태료 1만 원을 물린다고 하자. 그러면 100만 원의 과태료를 거둬들이게 되겠지. 이때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최선(또는 최악)의 말은, “교통법규를 위반한 사람을 모두 잡아내어 한 해 동안 100만 원의 과태료 수입을 올리겠다.”이다. 교통법규를 위반한 운전자를 단 한 명도 놓치지 않고 모두 붙잡아 과태료를 물리겠다는 의지를 나타낼 수는 있겠지. 물론 현실적으로는 가능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올해는 과태료를 90만 원을 거둬들이는 게 목표다.”라고 말하는 건 이상하다. 100만 원을 거둬들일 것을 90만 원이 될 때까지만 단속하고 나머지는 봐주겠다는 것인가. 평균 60만 원이나 70만 원 정도 거둬들여 왔는데 올해는 특별히 아주 열심히 단속하여 20만~30만 원어치를 더 거둬들이겠다는 것인가. 그렇다고 치자. 그렇다면 교통경찰들은 추우나 더우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길거리에 서서 오고 가는 차들을 죄다 눈이 빠지도록 쳐다보며 행여나 교통법규를 위반하지나 않는지 신경 쓸 것 아닌가. 그러자면 지역별로, 경찰서별로 목표 금액을 나누어주어 닦달을 하게 되겠지. 이게 정상인가.
과태료, 과징금, 벌금에 목표치가 있다는 게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한 해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과태료, 과징금, 벌금을 내게 될지 누가 알겠나. 작년보다 많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겠지. 목표를 달성하도록 행정의 맨 앞에 서 있는 공무원을 닦달하고 실적을 서로 견주어 상을 주고 또는 벌을 주고 하는 게 잘하는 짓인가. 가령, 내어야 할 세금을 안내고 버티는 국민(같지 않은 국민들)이 많은데 그 세금이 1억 원이라고 치자. 그것을 한 번에 다 거둬들이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올해 목표는 얼마라고 정할 수는 있겠지. 그건 충분히 이해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통법규를 위반하지 않도록 도로환경을 개선하고 주차장을 늘리는 일을 먼저 해야 할 것 아닌가. 과징금을 물지 않도록 관련 민원인에게 미리미리 알려주고 안내해주고 이끌어주어야 할 것 아닌가. 모든 국민을 잠재적 죄인으로 보고, 국민들이 죄를 짓도록 기다렸다가(또는 유도하거나 함정을 파거나) 과태료, 과징금, 벌금 고지서를 냅다 보낼 게 아니라 어지간하면 법규를 위반하지 않도록 해줘야 할 것 아닌가. 그게 제대로 된 정부, 국민을 위하는 행정이 할 일 아닌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2015.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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