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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석류나무 잎사귀는 몇 장이었을까

감자를 볶았다

by 이우기, yiwoogi 2015. 6. 22.

저녁 설거지를 한 뒤 일없이 감자를 볶고 싶어졌다. 텔레비전에서 감자볶음 요리하는 것을 본 덕분일 것이다. 가끔 직접 해먹곤 하는데 머릿속에서 상상하던 맛 또는 어릴 적 먹던 맛이 나오지 않아 어쩐 일인지 궁금하던 차에 텔레비전을 보며 나름대로 비법을 배웠다. 감자볶음 하나를 두고 비법운운하는 게 격에 맞을지 모르겠지만 이 반찬을 좋아하는 사람은 내 심정을 조금 이해해 주지 않을까 싶다.

먼저 아기 주먹만 한 감자 다섯 개를 깎았다. 채칼을 쓸까 하다가 그냥 부엌칼을 두들겼다. 제각기 굵기와 모양이 다르게 되었다. 생각보다 좀 굵게 된 것 같았으나 그걸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채 썬 감자를 끓는 물에 넣어 삶았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데치라고 한 것 같았다. 이게 비법이었다. 보통 기름 두른 궁중팬에 바로 올려 볶기 시작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소금도 조금 넣었다. 감자가 보글보글 끓을 때 자색양파 하나를 다듬었다. 최대한 얇고 가늘게 썰었다. 호박도 채 썰고 약간 매운 풋고추도 잘게 썰어 준비를 마쳤다.

감자가 살짝 익어가는 동안 양파를 먼저 볶기 시작했다.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더 좋은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최대한 오랫동안 푹 고다시피 볶으라고 하였다. 처음엔 달착지근한 양파 맛이 나다가 시간이 더 지나면 양파가 뭉크러지면서 더 깊은 단맛, 더 풍부한 구수한 맛이 난다고 했다. 양파가 어느 정도 볶아졌다 싶을 때 감자를 건져 찬물에 살짝 헹군 뒤 호박과 풋고추를 한 번에 털어 넣고 본격적으로 볶기 시작했다.

소금을 다시 조금 넣었고 다 볶았다 싶을 때 후춧가루를 뿌렸다. 붉은 고춧가루도 보일락 말락 할 만큼 흩었다. 감자의 노르스름한 빛깔과 양파의 보랏빛과 호박의 연둣빛이 어우러져 보기엔 그냥저냥 괜찮았다. 감자 하나를 집어 먹어보니 딱 알맞게 익었다. 양파는 아주 조금만 더 볶을 걸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전체적으로 약간 맵고 고소하고 달달하게 잘된 것 같다. 물론 이건 순전히 내 입맛이다. 먹어보니 막걸리 안주로도 괜찮을 듯하다. 그러니 일단 성공이라고 할 수밖에.

그런데 너무 많이 한 것 같다. 며칠 동안 감자볶음이 끼니마다 상에 오르게 생겼다. 무엇이든 내가 한 것은 맛있게 잘 먹는 아내와 아들이 감자볶음도 잘 먹어주면 좋겠다. 혹시 입맛에 안 맞으면 어떡하나 걱정하는 내 마음을 조금 이해하여 주면 좋겠다. 잘못된 음식을 해 먹일 생각 같은 것은 아예 없으니, 그리 알고 웬만하면 함께 한두 젓가락씩 먹어주면 좋겠다. 모처럼 일찍 퇴근한 저녁, 설거지하다 문득 생각나서 그냥 해버리고 만 감자볶음에 담긴 내 마음을 조금만 알아주면 좋겠다.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하거나 섭섭하지는 않을 테지만. 2015. 6.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