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국민이 초등학생이 되었다. 밖에 나갔다 오면 손을 씻어야 한다는 기본 생활습관을 배운다. 손을 씻지 않으면 무서운 전염병에 걸릴지 모른다는 경고를 눈 크게 뜨고 보고 귀 쫑긋 세우고 듣는다. 심지어 손등은 어떻게 씻고 손가락 사이사이는 어떻게 씻고 손바닥마저 잊지 않고 씻어야 한다는 것을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비누로 자주 씻고, 씻지 않은 손으로는 눈ㆍ코ㆍ입을 만지지 말아야 하며, 기침할 때는 입과 코를 휴지로 가리고, 발열이나 기침이 있는 사람과는 접촉을 피하여야 한다는 것도 배운다. 이걸 지키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여 열심히 익히고 배우고 따라 한다. 중동 지역을 여행할 때는 낙타와 접촉을 피하라고까지 일러준다. 이 와중에 중동에 갈까 보냐. 보고 듣고 있자니 화가 난다. 누가 그걸 모르나. 국민들을 초등학생 수준으로 보고 있는 게 분명하다. 국민들이 이런 생활 속 예방수칙을 지키지 않아서 전염병이 창궐했나. 나중에 국민들이 외출 후 손을 씻지 않아서, 비누로 씻지 않아서 전염병이 감당 못하게 번졌다고 핑계대려고 그러는 게 아닌지 의심해 본다. 분명한 건, 나라에서부터 초등학생처럼 기본을 착실하게 준비하고 대처했더라면 이런 난리는 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모든 국민이 죄인이 되었다. 나라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은 이야기를 퍼뜨리면 유언비어 유포죄로 고발당한다. 그것이 아무리 사실이고 진실이더라도 나라에서 높은 분이 나와 마이크 앞에 서서 카메라 조명 받으며 근엄하게 읊지 않은 것을 이리저리 옮기면 처벌받는다. 괴담이라는 말로 죄주며, 더 심하면 종북이나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여줄지 모른다. 국민이 알아야 할 이야기이긴 하지만, 꼭 그래야만 할 이야기이긴 하지만 나라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다. 그러지 않고 나불나불 입을 놀렸다가는 언제 어디에서 잡혀갈지 모른다. 페이스북 같은 데다 이러쿵저러쿵 보고 들은 이야기를 마음대로 썼다가는 언제 출두명령서가 날아들지 모른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엄연한 사실을 사실이라고 외쳐도 잡혀가고, 나라에서 발표한 내용에 대하여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의문을 제기하더라도 잡혀가고, 나라에서 아니라고 하는데 자꾸 옳다고 대들다가도 잡혀가는 세상이다. 다행히 잡혀가지 않을지라도, 언제 잡혀갈지 몰라 전전긍긍하거나 스스로 자기를 검열해야만 하는 세상이다. 고발하고 고소하고 기소하고 재판하고 잡아가두는 게 능사인 세상에서 모든 국민은 죄인이다.
국민은 초등학생처럼 얌전하고 조용히 나라님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 모든 국민은 죄인처럼 고개 숙이고 무릎 꿇고 앉아 지시를 따르고 가리키는 방향을 일제히 바라보며 나라님이 연주하는 풍금소리에 따라 교가도 부르고 애국가도 불러야 한다. ‘앞으로 나란히’ 하라고 하면 팔을 앞으로 쭉 뻗어 앞 사람과 간격을 맞춰야 한다. ‘앉으면서 번호’를 하라고 하면 맨 앞줄부터 하나, 둘 하면서 순서대로 앉아야 한다. 왼쪽가슴에 손수건을 달고 다니라고 하면 옷핀으로 찔러 바람에 나부끼면서 그렇게 하고 다녀야 한다. 조용히 불러주는 말을 받아 적으라고 하면 연필 끝에 침 묻혀가며 꼭꼭 눌러가며 받아써야 한다. 받아쓰기는 초등학생의 기본 아닌가. 온 국민이 그렇게 착하게 말 잘 들으면 메르스도, 사스도, 신종플루도 모두 물러날 것이다. 엊그제 나라님은 서울 어느 초등학교에까지 직접 왕림하시어 그것을 몸소 보여주셨다. 태평성대는 그렇게 오는 것이다. 2015.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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