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줄기를 반찬으로 먹으려면 껍질을 잘 벗겨야 한다. 얇디얇은 껍질을 벗겨내지 않으면 좀 질기다. 껍질 벗기는 기술은 별것 아니다. 잎이 있는 윗부분이나 뿌리에 가까운 밑동을 조금 분질러서 조심스럽게 벗겨내면 된다. 어쩌다 보면 줄기를 자꾸 분질러야 하는 일도 생긴다. 아깝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맛난 고구마줄기를 먹기 힘들다.
양파도 마찬가지다. 톡 쏘는 매콤한 맛과 달달한 향기가 일품인 양파를 젓가락으로 쉽게 집어먹으려면 양파 밑동을 싹둑 잘라버려야 한다. 그래야 먹기 편하다. 안 그러면 아랫부분이 붙어 있어서 먹기 귀찮아진다. 알뿌리를 감싸고 있는 껍질도 벗겨야 하는데, 약간 노르스름하거나 파르스름한 부분까지 과감하게 버려야만 제대로 된 양파 맛을 볼 수 있다. 버리는 것을 아까워하면 안 된다.
대부분의 채소가 그렇고 과일도 그렇다. 껍질째 먹지 않는 과일은 껍질을 잘 깎아 버려야 한다. 배 껍질을 깎을 때 과육이 잘려 나가는 것을 아깝다고 너무 얇게 깎으면 퍼석한 맛을 보게 된다. 감도 그렇다. 단감 속은 달달하지만 껍질은 질기다. 이런 과일의 껍질을 깎을 때는 아깝다 여기지 말고 조금 과감하게 칼을 놀려야 한다.
시골학교 가을 운동회 때 군고구마, 군밤을 먹어본 이라면 껍데기에 벌레 구멍이 있는 밤은 생각할 것도 없이 던져버려야 함을 알 것이다. 벌레가 먹다 남은 부분이라도 어떻게 먹어볼 요량으로 잔꾀를 부리고 애를 써봤자 결국은 반 토막만 남은 벌레를 보기 일쑤다. 복숭아도 벌레가 잘 먹는 과일인데 벌레 먹은 부분을 아예 넓게 도려내지 않으면 복숭아보다 더 물컹한 벌레를 씹게 된다.
윗자리에 앉은 사람이 아랫사람을 쓰는 것은, 어쩌면 채소나 과일을 먹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사람의 관계를 채소나 과일에 빗대는 게 적절하지는 않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연결해 본다.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믿고 일하려면 통하는 게 있어야 하고 통하는 게 있으려면 아무래도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맞춰가야 하지 않을까. 코드가 맞아야 하니까. 그러자면 자연스럽게 자기가 갖고 있던 이런저런 성격이나 버릇 따위 안 맞는 것은 버려야 한다.
반대로, 윗사람이 볼 때 아랫사람이 가진 좋은 기질은 그대로 잘 발휘하도록 뒷받침해주되 그렇지 않은 부분은 과일 껍질 깎듯 과감하게 깎아주거나 깎도록 유도해야 한다. 엉겨 있어서 잘 풀어 헤쳐지지 않는 옹고집 같은 성격이 있다면 양파의 밑동을 자르듯 싹둑 잘라줘야 한다. 도무지 어찌해 보기 힘든 단점이나 잘못이 있다면 벌레구멍 난 밤을 버리듯 던져버려야 한다. 밤은 겉에는 아주 작은 구멍이 있을지라도 속에는 이미 다 늙은 굼벵이가 들어앉아 있을 위험이 아주 높다. 그것도 모르고 구멍이 작으니까 애써 외면해가며 이리저리 깎아 먹으려 했다간 분명히 나중에 후회하게 된다.
며칠 전 양파를 썰다가 문득 생각난 것이다. 고구마 줄기 볶음을 먹다가, 아, 이것이 그런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서 하는 이야기다. 결론을 지어 보자면 깎아 먹을 건 잘 깎아 먹어야 하고 애당초 버려야 할 것은 미련 없이 후회 없이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맛난 반찬을 만들어 먹기 위해, 달콤하고 고소한 과일을 즐기기 위해…. 속이 썩었을수록 겉은 더 번들번들 윤이 나는 것도 많다. 밤은 특히 그렇다. 이런 단순한 원리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국무총리 청문회를 염두에 두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2015.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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