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건’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나 요인이라는 뜻이다. 한자로는 ‘關鍵’이라고 쓴다. [관껀]이라고 읽기도 하는데 [관건]으로 읽어야 한다. 발음은 조금 어렵고 한자는 많이 어렵다. 관은 빗장이라는 뜻이고, 건은 열쇠라는 뜻이다. 빗장은 여닫이문을 잠그기 위하여 안으로 가로질러 잠그는 막대기나 쇠장대를 말하고, 열쇠는 다 아는 말이다. 잠그는 도구와 여는 도구가 합쳐진 말이다.
① 메르스 확산 이번 주가 고비, 국내 감염자 수 18명으로 늘어…“3차 감염 막는 것이 관건” ② 최강희 감독 “베테랑의 활약, 몸 관리가 관건” ③ 논란의 국회법 개정안, 강제성 유무가 관건 ④ 굳어지는 한반도 사드 배치…비용 분담이 관건 ⑤ 5월 전력 질주한 1위 NC, 이제 관건은 ‘체력’… 이렇게들 쓴다. 그런데 이런 말을 쓰는 사람이나 보고 듣는 사람은 과연 ‘관건’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을까. 정확한 뜻은 몰라도 어림짐작으로는 알고 말하고 알아듣기도 하겠지. ‘관’과 ‘건’은 몰라도 관건이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 그래도 한 걸음 더 나아가본다.
어려운 이 말을 좀 쉽게 바꾸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본다. ‘관건’도 쉬운 말인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가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건 할 수 없다. 관건은, 어떤 일이 꽉 막히느냐, 아니면 술술 풀리느냐 하는 갈림길에 서 있는 상황을 말하는 것 같다. 위의 보기글을 보면, 메르스라는 전염병이 확산되는 것을 막느냐, 아니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느냐의 갈림길은 3차 감염을 막을 수 있느냐 여부에 달렸다. NC가 1위를 유지하며 승승장구하느냐, 아니면 1위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무너지느냐 하는 것은 체력을 어떻게 잘 관리하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즉, 3차 감염을 잘 막는 것이나 체력을 잘 관리하는 것이 ‘관건’이다.
‘관건’이라는 말을 ‘열쇠’라는 말로 바꿔 써 본다. 열쇠는 ‘관’과 ‘건’ 가운데 ‘건’에 해당하는 것이다. 관건은 잠그는 것과 여는 것이 꽉 맞물려 있어 어디로 넘어가느냐, 즉 잠기느냐 열리느냐 아슬아슬한 경계처럼 보인다. 그러한 상황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말 같다. 하지만 말 자체가 어렵다(적어도 내가 보기엔). 열쇠는 잠기는 걸 여는 도구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고 따져보면 여는 행위 하나만으로도 열리느냐 잠기느냐 하는 고비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열쇠를 왼쪽으로 돌리는 순간 문은 열리게 돼 있으므로. 따라서 위 보기글에 나오는 ‘관건’을 ‘열쇠’로 바꿔서 한번 써본다.
① 메르스 확산 이번 주가 고비, 국내 감염자 수 18명으로 늘어…“3차 감염 막는 것이 열쇠” ② 최강희 감독 “베테랑의 활약, 몸 관리가 열쇠” ③ 논란의 국회법 개정안, 강제성 유무가 열쇠 ④ 굳어지는 한반도 사드 배치…비용 분담이 열쇠 ⑤ 5월 전력 질주한 1위 NC, 이제 열쇠는 ‘체력’…. 어떤가. 사람에 따라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르겠지만, 관건이라고 쓸 때나 열쇠라고 쓸 때의 느낌과 상황이 완전 똑같이 받아들여진다. 자물쇠와 열쇠로 이루어진 낱말이 관건이고 널리 잘 쓰여 왔지만 열쇠라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관건이라는 말은, 자물쇠와 열쇠라는 두 물건을 각각 가리키는 아주 특별한 경우를 빼면, 거의 대부분 ‘열쇠’라는 뜻으로 쓰인다. 주변에서 신문, 방송을 보고 들을 때마다 ‘관건’ 대신 ‘열쇠’를 넣어보면 알 수 있다. 아무런 어려움 없이 잘 쓰고 잘 알아듣는 사람에게는 굳이 바꿔 쓰자고 하기 좀 그렇지만, 이게 무슨 뜻일까, 좀 쉽게 바꿔 쓸 수 없을까 하는 고민을 잠시라도 해본 사람에게는 그냥 ‘열쇠’로 쓰면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2015.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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