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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과 글을 보는 내 눈

‘역대급’이라는 말 써야 할까, 말아야 할까

by 이우기, yiwoogi 2015. 5. 26.

역대급이라는 말을 많이 듣고 많이 본다. 무슨 말일까. 먼저 사전을 뒤져본다. 없다.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도 않았다. 다음 국립국어원(http://www.korean.go.kr) 누리집으로 가서 온라인 가나다에서 검색해 본다. 두 번 질문했고 두 번 답했다. 답은 이렇다.

 

역대은 의미적 호응이 부자연스러우므로 역대 최악의 한파등으로 표현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다만, 이 표현은 최근에 널리 쓰이는 신어로 판단되는데, 이 말은 지속적으로 쓰이는지 시간을 두고 관찰해야 할 듯하다.

 

역대급이라는 말이 아직까지는 사전에 오를 만큼 일반 사람들에게 널리 쓰이지 않지만 더 많은 사람 즉, 언중(言衆)이 더 자주 쓰게 되면 생명을 얻어 사전에 오르게 된다는 말이다. 사전에 오른다는 말은 표준어로 대접받는다는 뜻이다. 표준어가 되면 교과서나 공문서에도 쓰게 된다는 말이다. 언론도 원래는 표준어를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할 텐데, 새로운 말을 제멋대로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데는 선수들이니 달리 언급할 필요가 없겠다.

 

그러면 이 말을 써야 할까, 쓰지 말아야 할까. 국립국어원에서 지적했듯이 이 말은 짜임이 잘못 되었다. ‘의미적 호응이 부자연스럽다는 말이다. ‘역대’(歷代)라는 말은 이어져 내려온 여러 대라는 뜻으로 역대 최고’, ‘역대 최악의 참사’, ‘역대의 시가’, ‘역대 선거에서 보면등으로 쓴다. ‘’()은 자립명사 또는 의존명사로 쓴다. 자립명사로 쓸 때는 계급이나 등급, 계단의 하나하나, 직급이나 그 직급의 역할의 뜻으로 쓴다. 의존명사로 쓸 때는 운동선수의 체중 등급의 단위를 나타내는 말이다.

 

역대라는 말과 급이라는 말은 역대+으로 바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이어져 내려온 여러 대에서 가장 어떠하다’, ‘여러 대에 걸쳐 드러난 내용이 어떠하다라는 의미로 써야 한다. , 역대 최고급, 역대 최저급, 역대 최강자급, 역대 최고 수준급 따위로 쓰면 된다. ‘역대사이에 어떠하다는 내용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다.

 

왜 이런 말을 아무렇게나 쓰는 것일까. 방송, 신문 따위 언론에서 자주 쓰기 때문이다. 모두 다는 아니지만, 많은 신문과 방송 프로그램은 우리말과 글에 대한 철학이 없어 보인다. 사람들의 말초 감각을 자극하는 표현을 어디서 듣거나 보면 남보다 먼저 갖다 쓰지 못해 안달한다. 인터넷 언론 매체가 더 심하다. 내가 보기엔 그렇다.

 

어떤 말을 몇몇 사람이 쓰기 시작하여 몇몇 동아리에서 자주 쓴다고 해도 이를 언론이 베껴 쓰거나 퍼 옮기지 않으면 곧 사어(死語)가 되고 만다. 어법에 맞게 잘 만든 말이라도 언중이 널리 쓰지 않으면 얼마 못 가 죽은말이 되고, 잘못 만든 말이라도 언중이 자주 쓰면 살아남아 버젓이 표준어 반열에 오르게 된다.

 

먹거리라는 말은 먹을거리의 잘못된 표현이었다. 이 말을 표준어로 만들기 위해 나선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먹거리 연구회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먹을거리, 즉 음식을 연구하는 게 아니라 낱말 먹거리를 표준어로 만들기 위한 방안을 연구하는 단체라고 들었다. 1980년대 중반의 일이다. 그러다가 2011년에 현실적 쓰임을 고려하여 먹거리를 표준어로 등재하게 됐다. 먹거리는 먹을거리의 상위개념이라고 뜻을 구분해 놓았지만, 일반적으로 먹을거리보다는 먹거리를 더 자주, 똑같은 뜻으로 쓰는 게 현실이다. 이를 표준어로 인정한 것을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학자들은, “그러면 씹을거리씹거리라고 하고 '읽을거리'는 '읽거리'라고 할 것이냐라고 주장한다.

 

역대급이라는 말도 이대로 가면 앞으로 표준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요즘 신문이나 방송, 특히 인터넷 언론에 쓰이는 것을 보면 알 만하다. 역대급이라는 낱말로 기사를 검색해 보면 놀라자빠질 지경이다. 이미 대중화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인위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말을 쓰는 언론인들은 과연 이 말이 제대로 만들어진 것인지 꼼꼼히 따져보았을까 하는 의문은 든다. 누가 어떻게 이런 말을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말을 만들고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따라 쓰고 그러한 현실을 받아들여 표준어로 인정해 주고 하는 게 과연 타당한가 하는 의문도 든다. 나는 이 말을 표준어로 인정하는 데 반대한다. 나에게 물어보지도 않겠지만.

 

2015. 5.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