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의 노동 덕분인지 저녁 반주로 몇 잔 마신 술 탓인지 저녁 9시를 못 넘기고 잠들었다가 새벽 2시 30분에 깬다. 꿈자리가 뒤숭숭했는데 눈 뜨자마자 머릿속은 백짓장처럼 하얘진다. 온갖 잡념이 스멀스멀 뒤통수로 기어든다. 동서고금의 기기묘묘한 이론과 사건과 사연들이 뒤죽박죽 섞여 든다. 다 쓸어버리고 몇 가지 생각만 적어 둔다.
뇌물 준 놈과 받은 놈이 있다. 준 놈이 뇌물 주었다고 자백한다. 그런 뒤 자살한다. 검찰은 뇌물 받은 것으로 드러난 놈부터 잡아다가 죄를 물어야 한다. 준 놈 주변 사람을 불러다가 정황증거를 묻고 캐는 것도 필요하다. 그런데 어찌 된 것이 준 놈 주변 사람을 불러다가 조사하는 척하더니 증거인멸 어쩌고 하며 잡아가둬 버린다. 그럼 돈 받은 놈들은 그사이 아무 짓도 하지 않고 놀고 있나. 살아남은 놈들끼리 입을 맞추고 증거를 인멸할 줄 모르나. 이게 상식인데, 우리나라 상식은 거꾸로다.
아침 7시 30분쯤, 한 신호가 열리자 버스가 달려온다. 인도에서는 무거운 가방을 멘 여고생이 달려온다. 여고생은 이 버스를 타야 한다. 번호를 보니 자주 다니는 버스가 아니다. 여고생은 이 버스를 놓치면 지각할지 모른다. 지각까지는 아니더라도 다음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할 것이다. 버스 기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여고생을 기다리는 시간은 20초쯤 될 것이다. 그러나 버스 안에는 ‘이 버스가 이번 신호를 통과해야 지각을 하지 않는데’라고 생각하는 승객이 가득하다. 버스 기사는 달려오는 여고생을 기다려야 하는가, 아니면 이미 타고 있는 승객의 출근과 등교 시간을 지켜줘야 하는가.
아파트 건설업자들은 왜 집도 다 짓지 않고 소비자들에게 돈을 받을까. 계약금, 중도금, 잔금으로 나눠 치러지는 아파트값 제도는 왜 생겼을까. 돈도 없는 건설업자들이 소비자의 돈을 긁어모아 아파트를 짓도록 하기 위한 것 아닌가. 아파트가 잘 안 팔리거나 다른 문제가 생기면 부도나는 것 아닌가. 건설업자들의 부도 때문에 얼마나 많은 서민들이 피눈물을 흘렸던가. 요즘도 그런가?
새벽 세 시를 넘은 시각. 우리나라 최고의 엘리트 국가정보원 요원들은 어디에서 말도 안 되는 댓글을 달며 시시덕거리고 있을까. 여배우 장자연 사건의 피의자들은 지금은 어디에서 어떤 여배우와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성완종으로부터 뇌물 받아 먹은 정치인들은 어디에서 증거를 인멸하고 조작하고 있을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로 따따부따 다투고 미주알고주알 씨부렁대는 우리나라를 보면,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은 뭐라고 할까 문득 궁금해진다.
“지구는 우주라는 광활한 곳에 있는 너무나 작은 무대이다. 승리와 영광이란 이름 아래, 이 작은 점의 극히 일부를 차지하려고 했던 역사 속의 수많은 정복자들이 보여준 피의 역사를 생각해 보라. 이 작은 점의 한 모서리에 살던 사람들이, 거의 구분할 수 없는 다른 모서리에 살던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잔혹함을 생각해 보라…. 우리의 작은 세계를 찍은 이 사진보다, 우리의 오만함을 쉽게 보여주는 것이 존재할까?”(<한겨레신문>의 기사를 재인용) 2015.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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