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올해 중학교 3학년이다. 2014년 4월 16일 수요일 버스 타고 수학여행 갔다가 전국을 돌아 18일 금요일 돌아왔다. 16일 오전부터 18일 오후 다시 만난 순간까지 문자를 몇 번 보내고 전화를 몇 번 했는지 모른다.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달랠 길 없었던 것이다. 문자에 답을 안 하거나 전화를 안 받으면 오만 가지 상상을 하곤 했다. 3일이 3년 같았다. 아들은 수학여행 중 ‘세월호’ 사고를 알았을 테지만, 그것이 얼마나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일인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18일 오후, 기껏 수학여행 며칠 다녀온 아들이 집에서 10분 떨어진 길가에 내리는데 조퇴하고 마중 갔다. 버스에서 해맑은 표정으로, 더러는 조금 피곤한 표정으로 내리는 우리들의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울었다. 무사히 돌아와 준 것, 그것이 그렇게 고마웠다.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의 부모와 가족들은 그 4월 18일 금요일에 돌아와야 할 아이들의 마중을 멀고 먼 전라남도 진도 팽목항으로 가야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끝없이 번져가는 불안감과 한없이 터져나오는 울음을 삼키면서…. 그리고 1년이 지났다.
아들은 아침 7시 20분쯤 내가 출근하려고 현관을 나서면 그제서야 부스스 일어난다. 그때부터 세수하고 머리 감고 밥 먹고 옷 입고 가방 챙겨 자전거 타고 등교한다. 엄마는 밥 좀 많이 먹어라, 지각할라 서두르라고 채근할 것이다. 학교에서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는지 수업시간에 졸지나 않는지 배는 고프지 않은지 하는 것은 잘 모른다. 그저 낮 동안 학교로부터 아무런 문자나 전화가 오지 않으면 모든 게 순조롭게 잘 지나가고 있으리라 믿는다. 오후 5시쯤 집으로 온다. 일주일에 하루쯤은 세 가족이 모여 저녁을 먹는다. 부모가 다 바쁜 날엔 혼자 라면 삶아 밥 말아 먹는다. 어떤 때는 달걀 구워 밥 비벼 먹으며 인증 사진을 찍어 보내준다. 걱정하지 말라는 신호다. 혼자 있다 보면 컴퓨터 게임으로 시간을 보내거나 텔레비전을 보겠지. 간혹 소설도 읽고 자습서 문제도 풀겠지. 그러다가 11시 넘으면 이 닦고 인사하고 잔다. 금요일이나 토요일 저녁엔 12시 넘게까지 텔레비전을 보기도 하고 게임을 더 많이 하기도 하는 것 같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하루 종일 스마트폰 게임을 하고 친구들과 카톡을 한다.
평범하고 단조로운 일상이다. 평범하고 단조롭고 무의미한 일상은 가장 큰 행복이고 기쁨이며 희망이다. 갑작스런 전화나 문자 없이, 일상을 파고드는 목소리나 사진 없이, 텔레파시로 연결된 가족들의 평범한 하루는 무척 소중하고 매우 귀한 것이다.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은, 그 일상이 깨졌을 때 알게 된다.
세월호 사고로 사망한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 250명의 부모와, 살아남은 학생들과 그들의 부모, 안산 시민들은 평범하고 단조로워서 더 큰 행복과 기쁨 그리고 희망을 눈앞에서 잃었다. 텔레비전으로 중계되는 세월호 침몰 장면을 속수무책 애타는 심정으로 바라보며 생때같은 자식들이 죽ㆍ어ㆍ가ㆍ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교실에는 학생들의 가방과 책과 공책, 볼펜, 연필, 지우개 대신 흰 국화와 그들이 평소 아무 생각 없이 즐겨 먹었던 주스와 빵, 과자들이 놓였다. 교실에는 참새 같은 재잘거림과 티 없는 웃음소리 대신 무섭고 무거운 침묵과 그리움 그리고 아픔과 고통, 슬픔이 가득 찼다. 아이들의 집에는, 방에는…. 일상은 깨졌고 평화는 무너졌으며 행복은 끝났다. 2015. 4. 16.
'그 석류나무 잎사귀는 몇 장이었을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이 찐다는 것 (0) | 2015.04.21 |
---|---|
동문회에 가는 까닭 (0) | 2015.04.19 |
두 번째 4월 16일① (0) | 2015.04.15 |
동동주 냄새만 맡으면 (0) | 2015.04.12 |
‘측은지심’의 반대말 (0) | 2015.04.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