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몸무게 이력을 살펴본다. 대학교 다닐 때는 물찬제비였다. 날렵하고 가느다랬다. 볼 살은 거의 없었고 눈은 퀭했다. 밤길에 나를 만난 사람은 조금 무서워했음 직했다. 그때 54kg 나갔다. 근육도 없었고 뱃살은 당연히 없었다. 잔병은 없었고 어쩌다 한 번쯤 감기를 앓는 수준이었다. 장이 좋지 않아 술을 마시거나 맵고 짠 것을 먹으면 화장실을 자주 들락날락했다. 1989년 6월 군대 가기 전까지 54~55kg을 오르내렸다. 발목과 무릎이 편했다.
군대 가니 배가 고팠다. 아침밥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점심밥을 아무리 빨리 많이 먹어도, 저녁밥을 아무리 맛있게 많이 먹어도 다음 끼니는 멀었고 피엑스도 멀었다. 반찬으로 돼지고기나 닭고기 또는 소고기가 끼니마다 나왔는데도 배는 금방 꺼졌다. 방귀를 많이 뀌긴 했던 것 같다. 그런데도 허벅지에 살이 올랐다. 내복이 잘 입히지 않음을 스스로 느꼈다. 첫 휴가 나오니 58kg이었고, 두 번째 휴가 나오니 60kg이었고, 제대할 적엔 몸이 아팠는데도 62kg쯤 되었던 것 같다.
나머지 대학생활 1년 동안 술과 안주로 연명하다 보니 금방 56kg 정도로 쫙 빠졌다. 군대에서 찐 살을 국가에 반납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몸이 가벼워졌다는 것을 스스로 느꼈다. 다리가 편했고 잠자리도 편안했다. 걷는 것은 뛰는 것처럼 느껴졌고 뛰는 것은 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스물대여섯 나이니까 한창때 아닌가.
취직을 하였는데, 오전엔 집에서 엎어져 자고 오후 두세 시쯤 출근했다. 마치면 저녁 열한 시는 넘었다. 저녁으로 먹은 회사 식당 밥은 식은 방귀 사이로 다 빠져나가 버리고 뱃속엔 거지가 들어앉았다. 눈 맞고 마음 맞는 선수들끼리 실비집으로, 포장마차로 달렸다. 새벽 두세 시쯤 집으로 가면 그냥 널브러지거나 과한 날은 화장실에서 토했다. 몸무게는 59~60kg에 머물렀다.
2014년 중반까지 내 몸무게는 61~62kg 사이에 고정됐다. 명절이다 뭐다 해서 아무리 잘 먹어도 62kg을 넘긴 적이 없고, 아무리 바쁘고 아프고 설사하고 해도 61kg을 내려간 적이 없었다. 거의 20년 넘게 그 몸무게를 유지했다. 살이 갑자기 찌거나 빠지거나 하지 않으면 일단 건강하다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뱃살이 조금 나오긴 했지만 아주 못나 보이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말부터 이상하리만큼 입맛이 좋아졌다. 아침밥은 두세 숟가락 들고 말던 것인데 네댓 숟가락까지 늘었다. 오전 11시까지 소화가 안 돼 더부룩하던 것이 12시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배가 고파진다. 배꼽시계의 정확도가 놀랄 만하다 싶었다. 저녁밥도 맛있게 먹는다. 예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반찬들도 맛있게 보인다. 술자리에서도 안주를 많이 먹는다. 이상하다. 기가 찰 일이다. 이러면 안 되는데…. 엊그제 기어이 ‘64’라는 숫자를 보고야 말았다. 역대 최고다.
배가 더 나오고 살이 찐다는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스스로 몸 관리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여 보여주는 것밖에 더 되겠는가. 제 몸의 건강관리는 자기가 알아서 해야 한다. 배가 나오면 건강의 적신호다. 각종 성인병의 전조다. 혈압이나 당뇨나 또는 그 무엇이든 불길한 징조이다.
그리고 또, 살이 찐다는 것은 대단히 부끄러운 일이다. 아이들 학교 급식 문제 때문에 온 세상이 시끄러운 이때에 입맛이 돈다는 것은 모순이다. ‘세월호’ 유가족의 절절한 외침을 잡아가두는 엄혹한 세상에서 혼자만 입맛 좋다며 아무 음식이나 아귀아귀 먹어대는 것은 죄짓는 일이다. 뇌물 먹은 정치인들이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고 누가 옳으니 그르니 싸우는 틈바구니에서 두 눈 부릅뜨고 바른 길을 찾고자 뛰어다니기 바빠야 할 시절에 살이 뒤룩뒤룩 찐다는 것은 정말이지 경계해야 할 일이다.
그러므로 살이 찐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살찔 일 말고도 할 일이 얼마나 많은 세상인가. 책 읽어야 하고 글 써야 한다. 그러자면 많은 사람과 만나고 이야기하고 느껴야 한다. 소통해야 한다. 산에도 가야 하고 강에도 가야 한다. 여행을 가야 한다.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고 어른들도 더 자주 찾아뵈어야 한다. 밥 먹고 드러누워 잘 시간이 어디 있으며, 기름진 안주 놓고 소주 마시며 시시덕거리고 놀 시간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2015.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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