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보슬보슬 소리도 없이 내리던 날 저녁을 덜 슬프게 또는 더 즐겁게 보내는 일곱 가지 방법...
첫째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깔끔하게 사무실을 나선다. 물론 컴퓨터 같은 건 그 전에 미리 끈다.
둘째 귀갓길에 보이게 마련인 식당이나 술집은 철저히 외면한다. 그중에는 단골집도 있을 테지만 이날만큼은 “언제 봤더라?”하는 표정을 지어 보여준다.
셋째 차 안에서는 딱딱한 뉴스보다 에프엠 음악방송을 듣는 게 좋다. 간혹 아는 노래가 나오면 소리를 좀더 높여도 된다.
넷째 집에 도착하면 잽싸게 옷을 갈아입고 양말을 벗고 손발을 씻는다. 혹시 누가 연락해 와도 안 나갈 이유를 만드는 것이다.
다섯째 배가 고파지면 아침에 먹던 찌개나 국, 그리고 냉장고에 있게 마련인 반찬들을 꺼내 저녁을 먹는다. 가능하면 배가 많이 부르도록 먹는다. 누가 연락해도 못 나갈 이유가 추가된다.
여섯째 밥을 먹을 때는 가족과 함께 음악을 듣는다. 음악은 시디보다 그 시간과 분위기에 맞는 것을 틀어줄 가능성이 높은 에프엠 음악방송을 듣는 게 좋다.
일곱째 삼십 분쯤 지난 뒤 거실이나 방에 앉거나 누워 책을 읽는다. 소설도 좋고 시도 좋다. 읽던 책을 펼쳐도 좋고 새 책을 펴 보아도 좋다. 가능하면 텔레비전은 안 보는 게 좋다. 바보상자니까.
세상에 배부르고 등 따신 것만 해도 그만인데 정신까지 배부르게 해주니 이보다 나은 게 있을 수 없다. 그럼 날씨는 무슨 상관이냐고? 보슬비는 어떡할 거냐고? 나중에 열 시쯤 되어 출출해지면 동네 구멍가게에 가서, 오늘만큼은 날씨도 그렇고 하니 막걸리를 한 병 사 먹으면 된다. 그러고서 잠자리에 들면 백 점 만점에 백 점 아니겠나.
말해 놓고 보니 정말 시시껄렁한 잡담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나에겐 소중한 글이다. 행복이 뭔지 조금 알려주니까. 삼월도 갔다. 사월아, 내일 보자.
2015.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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