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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아직은 살 만한 세상이라고 믿는 작은 이유

by 이우기, yiwoogi 2015. 3. 28.

몇 해 전 우리 동네에 있는 <보현갈비>에서 있었던 일이다. 우리 일행은 다섯 명인가 여섯 명인가 그랬다. 예약을 하지 않고 갔더니 자리가 없었다. 자리가 없다기보다는 일행이 나란히 앉기가 맞춤하지 않았던 것이다. 셋씩 떨어진다면 앉기는 할 만한 상황이었다. 모처럼 겨냥하고 간 것이라 적잖이 실망스러웠다. 벗들을 우리 동네로 초청한 날이어서 미안하기도 했다.

 

어쩔까 하고 섰는데, 두 테이블을 붙여 놓은 곳 가운데 한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던 중년 부부가 일어나 테이블 하나가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 주었다. 우리도, 주인도 그래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지만 그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하겠는 상황이었는데 제 스스로 그렇게 움직여 준 것이다. 얼마나 고맙던지, 얼마나 미안하던지...

 

오늘 <청진동>이라는 아귀찜 집에 갔다. 우리가 앉은 테이블 하나, 예약되어 있는 테이블 두 개, 나머지 따로 떨어져 있는 테이블 각 하나씩 그랬다. 따로 있던 테이블 하나에 손님 두 명이 들었다. 테이블 두 개를 예약한 손님 다섯이 들어왔다. 또 남자 사람 한 명이 들어와 남은 테이블 하나를 독차지하고 앉더니 동료 두 명이 더 온다며 아귀찜 작은 것을 시켰다.

 

한참 뒤 전화가 왔다. 주인의 대화 내용으로 보아 단골인 듯했다. 서너 명이 금방 오려 하는 듯한데 앉을 자리가 없다.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묻어난 통화가 끝났다. 주인은 홀로 앉은 남자 손님에게, 자리를 좀 옮겨줄 수 있느냐 물었다. 두 테이블 예약 손님이 좀 비좁게 앉고 그 옆에 붙어 앉으면 안 되겠느냐 물은 것이다.

 

그러자 남자 손님은 사정이 그러면 딴 데로 갈 테니 다른 손님을 받으라.”하고 일어섰다.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시켜놓은 아귀찜도(손님이 거의 동시에 들이닥쳐 아직 요리를 하지 못한 상황!) 취소했다. 미안함과 고마움을 동시에 드러내어야 하는 상황을 난생 처음 겪은 듯한 주인의 표정이라니... 아무튼 뒤이어 전화를 한 손님이 들이닥치고, 아귀찜 집은 조용해졌다.

 

세상을 살다 보면 아주 작은 일을 겪으면서도 살 만한 세상인지, 정말 막돼먹은 세상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전번과 오늘 겪고 본 일을 생각하면 아직은 우리 세상이 살 만한 곳’이라고 믿게 된다.

 

<보현갈비><청진동>은 부자 사람이 가는 곳이 아니다. 신안동 숯골 좁은 길 귀퉁이에 자리한 <보현갈비>는 하루 노동의 고단함을 달래려는 노동자나 모처럼 가족끼리 외식을 하려는 서민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연탄가스 마셔 가며 삼겹살이나 돼지갈비를 구워 먹는, 전형적인 주택가 고깃집이다. <청진동> 또한 이현동 시내버스 정류장에 붙어 있는 콧구멍만한 식당이다. 손님이랬자 중년 남녀들이 계모임하자고 드나들며 봄 입맛을 되찾으려 하거나 우리처럼 색다른 무엇을 먹기 위해 어쩌다 찾아온 사람들뿐이다.

 

만약 1인분에 2만 원을 훌쩍 넘는 고급 식당이었거나 입구에서부터 이탈리아제 대리석이 깔려 있는 레스토랑이었으면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었을까 싶다. 그렇지, 그런 식당이라면 아예 이런 난처하고 당혹스런 상황 자체가 일어나지 않겠지. 철저한 예약제로서 손님이 손님으로서 충분히 대접받는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은 기본이고,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 내놓는 사람, 왔다 갔다 하며 심부름 하는 사람, 계산하는 사람이 각각이어서 서비스에 빈틈이 없게 마련이겠지. 그렇지만 인간미가 없어 보이거나 너무 딱딱하여 기계처럼 보이기도 하겠지.

 

아무튼 아직은 우리 세상이 살 만하다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고마운 봄밤이다.

 

2015. 3.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