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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아주 많이 설레는 만남-내 새끼 홍보대사들

by 이우기, yiwoogi 2015. 4. 18.

내가 일하는 경상대 홍보실에는 학생 홍보대사 <개척나래>가 여남은 명 있다. 남학생도 있고 여학생도 있다. 올해 17기가 활동 중이니 내가 홍보실에 발령나던 2004년에는 6기가 있었던 것 같다.(그 전에는 기획과에서 운영했다) 모두 11기수, 100명 넘는 친구들이 홍보실을 거쳐 졸업하여 사회로 나갔거나 현재 활동 중이거나 졸업을 앞두고 있다. 처음엔 1학년 또는 2학년을 뽑아 3학년, 4학년 때까지 활동하도록 했다. 지금은 2학년, 3학년만 뽑아 1년 동안 활동한다. 아무튼 홍보대사 덕분에 홍보실이 그럭저럭 굴러가는 측면도 있다.

 

이들은 학교를 대표하여 홍보영화에 출연하고 홍보책자 사진 모델도 한다. 홈페이지 이곳저곳에 얼굴이 나온다. 진주남강유등축제 또는 창원, 부산, 통영 등 딴 데서 홍보박람회를 하면 며칠씩 묵으면서 일을 돕는다. 깔끔한 유니폼 입고 열심히 설명하고 자료 나눠주고 하는 그들을 보면, 고맙고 대견하다. 학교에 귀빈이 찾아올 때는 현관에서 단정하게 인사한다. 큰 행사 할 때는 방명록 받고 손님을 자리에까지 안내하고 무대 위에서 상장, 꽃다발을 전달한다. 직접 몸을 움직여 도움 될 때도 있고 가만있기만 해도 행사가 살아난다. 중고등학생들이 떼거지로 학교를 찾아오면(이를 대학탐방이라고 한다) 이들을 안내해 주며 이것저것 설명도 해준다. 겉으로 보면 멋지고 아름답고 재미있는 게 홍보대사 활동이다.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일도 참 많이 한다. 아침 830분까지 홍보실에 와서 그날 신문에서 중요 기사를 스크랩한다.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하는 스크랩도 있지만 우리는 구석기시대처럼 칼, , , B4로 한다. 칼날에 손을 베이는 학생도 나온다. 스크랩한 것을 윗분들 사무실로 배달한다. 두 달에 한 번씩 소식지 <경상맨이야>가 나오면 하나하나 주소 붙여 우체국까지 보내는 작업을 한다. 8000부가 넘는다. 10명이 다 달라붙으면 너덧 시간 걸리고, 어쩐 일로 몇이 빠지면 너덧 명이 저녁 늦게까지 노가다를 한다. 아예 주말이나 휴일을 반납하는 일도 잦다. 하루 종일 두세 명은 홍보실 지키며 당번을 한다. 전화 받고 자잘한 심부름을 다 한다. 손님 오면 차 내와야 하고 가고 나면 씻어야 한다. 퇴근 무렵엔 청소하고, 금요일 오후엔 대청소한다. 홍보실뿐만 아니라 다른 사무실 일도 도와달라면 달려간다. 몸이 약하거나 약삭빠른 학생은 못 견딜 만큼 바쁘고 힘든 일이다. 그래도 재미있게, 즐겁게 하려고 한다.

 

배우는 것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어른들과 술 한 잔 할 때는 주도(酒道)를 배운다. 손님 접대할 때 찻잔 놓은 방향과 순서를 배우고 전화 받는 예절을 배운다. 인사는 어떻게 하고 말은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 배운다. 심지어 복사기 사용법, 팩스 사용법도 배운다. 보통 학생들은 대학 4년 동안 복사기나 팩스를 한 번도 못 써볼 테지만 홍보대사들은 웬만한 고장도 고칠 줄 알게 된다. 엑셀이나 파워포인트 같은 것으로 우리를 돕기도 하는데, 그것도 공부다. 어쩌다 마주앉으면 대학생활, 취업준비, 사회현상, 역사문제 같은 주제로 짧은 대화를 하는데 그것도 공부다.

 

혜택은 별로 없다. 다달이 장학금을 지급한다. 요즘은 정확히 얼마인지 모르겠다. 최저임금제에 따라 달라지는데 20만 원 넘을는지. 바깥으로 활동을 나가면 예산 범위에서 활동비를 지급한다. 졸업한 뒤 취업 원서 넣을 때 활동 확인서를 발급해 준다. 학생들은 이것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동아리활동보다 대학생활을 더 훌륭하게 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으로 여기는 듯하다. 가장 큰 것은 그들의 가슴에 가득 차게 될 자부심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좀 색다르면서도 의미 있는 활동을 했다는 것은 보람도 되고 멋지고 자랑스러운 추억도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해마다 3월 말쯤 홍보대사 선발 공고를 내면 문의 전화도 제법 오고 실제 원서 넣는 학생도 쉰 명쯤 된다. 경쟁률이 51은 된다.

 

학생들은 의리가 있다. 졸업 후에도 꾸준히 찾아온다. 홍보실 직원 2명이 인사이동 없이 말뚝으로 박혀 있는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그들이 심성 곱고 착한 학생들인 덕분이 더 크다. 명절에 선물을 사 들고 오는 졸업생도 있고, 더운 여름 냉커피 한잔 뽑아 들고 웃으며 들어서는 학생도 있다. 문자나 카톡으로 안부 묻는 졸업생도 있다. 생일에도 잊지 않고 문자가 온다. 스승의 날에는, 우리가 무슨 스승이라고, 케익을 사오기도 한다. 결혼하게 되면 어김없이 찾아와서 청첩장을 수줍게 내민다. 웬만하면 우리는 간다. 생각해 보면, 홍보대사와 홍보실 직원의 사이라기보다 부모 자식만큼 가깝고 정겹고 그렇다.

 

홍보대사 9기부터 17기까지 대표들의 모임이 잠시 후 630분에 열린다. 기수별로 꼭 한 명이 오는 것은 아닌 듯하다. 연락이 닿지 않았거나 닿았지만 시간이 안 되는 친구들은 빼고, 소문 듣고 나도나도! 하며 따라붙은 친구도 있어 대략 열너덧 명쯤 모일 듯하다. 식당에 모여 얼굴 보고 웃고 떠들고 술 마시고 밥 먹고 그렇게 놀겠지만, 실제로는 올 가을쯤엔 기수별로 더 많이 모여서 체육대회라도 한번 하자는 뜻이다. <경상대 홍보대사 기별 친선 체육대회>를 개최하기 위한 준비위원회 발족식이라고나 할까.

 

8년 전이던 20079기 홍보대사로 활동하던 녀석들은 얼마나 변했을까. 그 사이 결혼식이다 뭐다 해서 몇 번 만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또 모르지. 여학생들은 더 많이 변했을 텐데... 결혼하여 아기를 안고 오는 녀석도 있을까. 이름을 한 번에 맞힐 수 있을까, 기수는 일일이 기억하지 못할 거야, 그래도 이해해 주겠지. 오늘 모임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가 내려왔다가 하는 여행이 될 것이다. 즐겁고 유쾌하고... 그러니, 술병+몸살로 뼈마디가 분해되는 듯한 지난밤을 보내놓고도, 아침 일찍 링거 한 대 맞고 약 먹고 기력을 회복하여 설레는 마음으로 이런 글을 쓰고 있을 수밖에...











2015. 4. 18.

사진은, <개척나래>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것 중 대강 몇 장 골랐으니 기수별로 정리된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