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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즐거움

깊은 밤보다 더 깊은 갈등

by 이우기, yiwoogi 2015. 3. 27.

소설가 김주영이 있다. 김주영 선생님이라고 부를까 하다가 존칭 따위는 생략하기로 했다. 그의 소설을 읽어보면 이런 정도는 충분히 이해할 만한 작가라는 걸 알 수 있다.

 

김주영이 쓴 대하소설 <객주>를 비롯해 <홍어> <멸치>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빈집> <잘가요 엄마> <아들의 겨울> <천둥소리> 따위 작품을 읽었다. 나름 팬이다. 그의 작품은 질박하다. 민중적이라고 할까, 서민적이라고 할까. 아무튼 내 입맛에 잘 맞다. 믿고 찾아 읽는 작가 가운데 한 명이다.

 

물론 내용을 기억하는 건 거의 없다. 그저 재미있게 잘 읽었다는 것뿐. 책들도 대부분 딴 데로 이동했다. 좋은 책이니 선물할 수밖에. 그렇지만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캐릭터)이나 장면들, 구수한 대화, 배경을 이룬 역사, 빼어난 문장, 탁월한 묘사, 우리의 고유어나 옛말 같은 단어들이 내 말투와 글속에 조금씩은 녹아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문학의 힘이고, 책을 읽는 이유이다.

 

대표작 <객주>창작과비평판이었던 것 같은데 작은형 집으로 가 있다. 돌려달라고 하기도 그렇고 준다한들 다시 읽기나 할까 싶던 차에 원래 9권이던 <객주>10권으로 나왔다. 작가가 애프터 서비스를 하는 것인지 노욕을 부린 것인지... 많이 망설였다. 살까 말까, 읽을까 말까. 결국 포기했다. 읽어야 할 양서가 도처에 너무 많이 깔렸다는 게 지어낸 핑계였다.

 

<임꺽정>이 초록색 표지에서 총천연색으로 탈바꿈했을 때 서슴없이 사서 읽고 소장하게 된 것과 비교하면 내가 많이 좀스럽게 변한 것이다. 부끄럽다.

 

오늘 인터넷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던 중 우연히 이두호가 그린 만화 <객주>를 다시 내놓는다는 소식을 보게 됐다. 예약 판매 중이다. 나는 정통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문청이었으므로, 이므로... 당연히 만화 <객주>는 안중에 없었었었다.

 

그런데 이번엔 좀 끌린다. 허영만의 <식객> 27권을 사 읽고 윤승운의 <맹꽁이서당> 5권 정도는 쉽게 사 읽는 편인 내가 만화 <객주> 10권을 사 읽고 소장한들 누가 뭐라 할 것인가 하는 생각을 서서히 하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이희재의 만화 <삼국지>나 박시백의 만화 <조선왕조실록>도 사 볼 만하지 않느냐는 변명거리도 준비하게 되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 고민 중이다. 소설 <객주> 10권이냐, 만화 <객주> 10권이냐를 놓고 깊은 밤 혼자 궁시렁궁시렁 좌고우면 고민 중이다. 사놓고 읽지도 않을 거면서... 아니, 연봉 동결된 이후 새 책보다는 사 놓은 헌 책부터 읽어야겠다고 다짐한 게 얼마나 지났다고......ㅠㅠ

 

2015. 3.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