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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즐거움

디테일은 강하다, 무섭다, 위대하다

by 이우기, yiwoogi 2015. 3. 4.

디테일’(detail)을 우리말로 뭐라고 할까. 첫 번째 뜻은 작품 전체에 대하여 세부적인 부분을 이르는 말이고 두 번째 뜻은 자세하고 빈틈없이 꼼꼼하다는 뜻이다. 미술에서는 작품 전체에 대하여 세부적인 부분, 또는 세부적인 묘사를 디테일이라고 하는가 보다. ‘디테일하다를 우리말이라고 하기엔 좀 뭣하지만, ‘(내용이나 구조, 활동 따위가) 자세하고 빈틈없이 꼼꼼하다는 뜻으로 널리 쓰고 있다. 우리말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게 된 것이다.


 

중국사람 왕중추(王中求)가 짓고 허유영이 옮긴 <작지만 강력한 디테일의 힘>(올림, 304)을 읽어 나간다. 2005년 처음 나온 이 책은 2009년에 25쇄를 찍었다. 그걸 6년이나 지난 지금 읽는다. 3분의 1정도 읽었다. ‘우리에게 부족한 1%는 무엇인가!’라는 부제에 걸맞게 우리에게 부족한 1%는 디테일이라는 것을 들려준다. 풍부한 예화가 읽는 맛을 더해준다.

 

233년 역사의 영국의 베어링스 은행이 1파운드라는 상징적인 가격에 네덜란드 ING그룹에 매각된 이유는 경영진이 디테일에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한 직원의 잘못된 장난으로 은행이 망한 것이다. 중국의 한 냉동새우 판매 회사는 유럽의 수입업체에 냉동새우 1000톤을 수출하기로 했다가 통관 직전에 거부당했다. 냉동새우에서 항생물질의 일종인 클로람페니콜 0.2그램이 발견된 것이다. 전체 물량의 50억분의 1 때문에 수출이 좌절된 것이다. 새우껍질은 보통 사람이 직접 손으로 벗기는데 일부 직원이 손에 습진이 생기자 클로람페니콜이 함유된 소독약을 바르고 일을 하다가 새우에 그 성분이 묻게 된 것이라고 한다. 이것이 디테일의 힘이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거대한 그 무엇을 한번에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천리 둑도 개미구멍에 무너진다는 속담이 있는가 보다. 빌 게이츠는 “MS는 늘 파산과 18개월의 거리를 두고 있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말한다고 한다.

 

반대로 사소해 보이는 부분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가 크게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도 많다. 1961년 구 소련의 우주비행사 가가린은 어떻게 세계 최초의 우주비행사가 될 수 있었나. 20명의 지원자들은 우주선 보스토크 1호에 직접 타볼 기회가 있었는데 가가린은 신발을 벗고 양말만 신은 채 우주선에 오른다. 이것을 눈여겨 본 비행선 설계사는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우주선을 아끼는 것을 보고 그에게 인류 최초로 우주를 비행하는 신선한 사명을 부여했다고 한다. 장루이민 하이얼 회장은 간단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 간단한 일을 모두 잘 해내는 것이 바로 간단하지 않은 것이다. 평범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 평범한 일을 모두 잘 해내는 것이 바로 평범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일을 하다 보면 조금 애매한 상황이 생긴다. 이렇게 하는 것이 맞을까, 저렇게 하는 것이 맞을까. 그럴 때는 앞서 일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든지, 관련 자료를 뒤져봐야 한다. 이만하면 되겠지 하고 넘어가면 반드시 그것으로 인하여 일이 어그러지기 십상이다. 글을 쓸 때 애매한 단어를 써야 할 상황이 되면 두 번 세 번 확인해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대충 넘어가면 전혀 다른 뜻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막역하다막연하다가 그렇다. ‘곤욕곤혹은 다른 말인데 확인하지 않으면 뜻이 변해 버린다. ‘다르다틀리다도 잘못 쓰는 수가 많다. 잘못 쓴 글을 내보이다간 망신당한다. 디테일은 모든 일에서 대단히 중요하고 글쓰기에서도 당연히 아주 중요하다.

 

어떤 행사를 앞두고, 지난해에는 행사 소개를 어떻게 했나 싶어 참조하기 위하여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글을 찾아본다. 그런데 틀린 글자가 보인다. 지난해 글을 썼을 때 분명히 여러 차례 확인했고 틀린 글자가 안 보였는데 1년이나 지난 뒤에 드디어 눈에 띄는 것이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얼른 수정해 놓지만 입맛이 여간 씁쓸한 게 아니다. 그 사이 수많은 사람이 내가 올려놓은 글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찼을 것을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낱말 하나하나 문장 한 줄 한 줄 꼼꼼히 읽어보고 두 번 세 번 확인해야 하는 까닭이다.

 

고개를 끄덕여가며 책을 읽어 나가니, 지난날 저지른 수많은 실수와 잘못이 떠오른다. 20043월 지금의 일자리에 발령받았다. 두 달에 한 번씩 소식지를 내는데, 본문 사진 밑 조그만 글 속에 총장이라고 적혀 있어야 할 것이 초장으로 인쇄되어 있는 게 아닌가. 그 뒷일은 말하기 부끄럽다. 그보다 먼저 신문사 교열부 수습기자 시절 이야기 한 도막. 신문 창간 83주년 특집호를 만들 때다. 유명한 시인으로부터 축시가 들어왔다. 본문에 여든세 해라는 말이 있었는데, ‘여는 새해로 인쇄되고 있었다. 11시쯤 되었을까. 편집국이 발칵 뒤집혔다. 그 원고의 초교를 내가 봤었다. 잘리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였다. 그것도 수습이... 지금은 간혹 추억으로, 안주삼아 이야기하곤 하지만 디테일, 마지막까지 꼼꼼하게 살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거창하게 벌여 놓은 이런저런 큰 행사장에 가보면, 몇 날 며칠 동안 행사를 준비한 사람들의 노고가 눈에 보인다. 그런데 행사가 진행되면서 허점이 드러난다. 태극기와 교기의 깃봉이 바뀌어 있는 경우도 있고, 단상에 올려져 있어야 할 원고가 온데간데없는 경우도 있다. 원고를 읽어야 할 사람은 난감하기 이를 데 없게 된다. 참석하겠다고 알려온 인사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거나 아예 오지 않았는데 소개하는 것은 애교에 속한다. 세밀한 부분을 끝까지 살피고 확인하여야 하는데, 준비를 해나가다 어느 순간이 되면 이만 하면 됐겠지라고 생각해 버리기 쉽다. 그건 곧 디테일을 포기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부족한 1%는 디테일이다. 이 책에서는 디테일에 관한 부등식을 소개하고 있다. ‘100-199, 100-1=0’ 공들여 쌓은 탑도 벽돌 한 장이 부족해서 무너지고, 1%의 실수가 99%의 실패를 부를 수도 있다. 마지막 1%까지 꼼꼼하고 세심하게 확인하고 또 확인하여야겠다. 책을 3분의 1까지 읽고 반성되는 게 이만큼인데 다 읽으면 어째야 할까. 날마다 쓰는 글, 나에겐 간단한 일이고 평범한 일일지 모른다. 그것을 간단하지 않게 평범하지 않게 잘 해내야겠다.

 

2015. 3. 4.